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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바꾼 교육정책”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바꾼 교육정책”

- 교육부 48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279회) -

○… 본고는 지난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8년 째가 된 본지 김병옥(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 ○

○…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른 민주화 열기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주체” 선언

역사의 필연이며 막을 수 없었던 대세

- 교육 바로 세울 최소한의 조건 5개항 구체 제시 -

29대 김영식 문교장관

<1988. 2. 25~ 88. 12. 4 재임>

 

 

교육민주화 선언 전문

 

‘오늘날 우리 사회에 요원의 불길로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는 역사의 필연이며 각 부문의 민주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교육부문의 민주화는 사회전체의 민주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육의 민주화는 사회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은 전 민족의 노예화를 획책하던 일제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시류에 따라 부침한 정치권력의 편의대로 길들여진 충직한 시녀로 전락하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누더기 같은 헌법 속에 그나마 사문화된 채 보장받지 못했고 식민지하에서 구조화된 교육행정의 관료성과 비민주성이 온존되어 왔다.

 

그 결과 민족운동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였던 교사들은 국민의 교사가 아니라 극도로 통제된 관료기구의 말단으로 떨어졌고 교직은 성직이란 미명 아래 점수 매김과 서열 짓기에 급급한 사이비 교육의 굴레 속에서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당했다.

 

참다운 교육을 위한 교사의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력과 자율성도 배척되고 있다.

 

힘써 진리를 탐구하고 심신이 건전한, 인간미 넘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비정한 점수경쟁과 물질만능적 상업주의 문화의 홍수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방황하고 있다.

비민주적 교육현장은 일방적으로 선정된 경색된 가치만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뿐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모순에 찬 사회구조와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교육제도로 말미암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여유도 없이 당면한 과열경쟁 속에 자신과 사랑하는 자녀의 인간다운 삶을 저당 잡혔다.

 

산적한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당국의 행정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음은 이미 증명되지 않았는가.

 

조령모개(朝令暮改)는 한국교육정책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소외된 상태에서 추진되는 이른바 교육개혁이란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절차상의 손질일 뿐,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국민에게 또 하나의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교육개혁은 교육, 인간, 사회를 보는 관점의 개혁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주체의 자리에 확고하게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교육의 민주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교육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사들의 역할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의 무기력한 말단관료, 역사 속의 방관자의 위치를 탈피, 새로운 교사로서 참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교육의 주체로서 국민의 교육적 요구를 올바르게 실천할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교육의 민주화는 민주사회의 이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바탕이라는 자각에서 새로운 교육건설의 역사적 과제를 짊어지고 모든 장애와 고난을 이기며 민주교육을 실천해 나갈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교육민주화의 최소 조건

 

이에 우리는 교육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5개항을 천명하는 바이다.

1.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중립성 보장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정치에 엄정한 중립을 지켜 파당적 이해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2. 교사의 교육권과 제반 시민적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3. 교육행정의 비민주성 관료성이 배제되고 교육의 자율성이 확립되기 위해 교육자치제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4 . 자주적인 교원단체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전면 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간섭과 탄압은 배제되어야 한다.

5.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하는 온갖 비교육적인 잡무는 제거되어야 하며 교육의 파행성을 심화시키는 강요된 보충수업과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심야학습은 철폐되어야 한다.

1986년 5월 10일

한국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교육민주화 투쟁 험난

 

1986년 5월 10일 Y중등교사회의 교육민주화 선언을 막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5공 전두환 정권과 당시 손제석 문교장관 및 김찬제 차관은 대책을 강화하고 전국적인 차단 정책을 수립했다.

 

이는 노태우 정권 이전이었고 때문에 노 대통령은 취임하기 무섭게 “불법조치”를 엄명한 것이다.

특히 1986년 전국 Y교사회장이었던 윤영규 교사는 그 해 5월 10일 교육민주화선언으로 해임되었으며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해임 전 그의 신분은 전남 고흥군에 있는 공립 백양중학교 교사였다.

법원은 윤 교사에세 교육민주화선언을 한 죄를 물어 2년을 선고하면서 3년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

 

이에 힘입어 1987년 상급법원의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로 복직되어 교단에 되돌아 왔다.

전남도교육청은 윤 교사의 선고유예에 따라 1987년 담양에 있는 공립 고서중학교 교사로 발령했다.

고서중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인접해 자택(광주시내)에서 버스로 출·퇴근이 가능했다.

 

이날 이후 고서중학교장은 전남에서 가장 힘든 최악의 근무여건에 시달려야 했다.

윤 교사가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동태를 감시해야 하고 잠시만 눈에 안보여도 군교육장과 도교육청에 직보한 것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윤영규 교사가 수업이 없는 것을 기회로 교무실에서 사라졌고 옆자리에 앉은 교사에게 “화장실에 좀 다녀와야겠는데 설사가 심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지 말아달라”고 해놓고 종무소식이었다.

 

교감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안심한 것도 잠깐, 30분 이상 지나도 나타나지 않은 것에 화장실에 급히 가서 찾아 보면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학교안의 이곳 저곳을 이잡듯 뒤졌어도 보이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묻게 되고 이 때 “뒷문으로 나가시더니 택시를 잡아타시고 서울방향으로 가시더라”는 말에 낙심천만이었다.

 

이런 날은 대개 토요일이었고 학교에서 사라진 윤 교사는 서울로 직행하여 Y교사협의회를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로 확산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1987년까지 결성에 필요한 준비작업을 끝낸 뒤 이듬해(88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로 변모했다.

 

윤영규 교사는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2대까지 중임했으며 전남도교육청은 그해(88년)학년초 인사 때 윤 교사를 광주체육고 교사로 전보시켜 학교일로 바쁘게 해서 바깥일에 열중할 수 없도록 외부와 차단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