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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고교 졸업 해외유학 대학생 과외도 허용

고교 졸업 해외유학 대학생 과외도 허용

- 교육부 49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04회) -

○… 본고는 오는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9년 째가 될 본지 김병옥(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 ○

○…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농어촌 출신 대학생 학비조달 길 열고

고등학교 직업교육 위탁과정 신설

대졸 미만도 유학갈 수 있게 학벌타파

- 관공서 공휴일 줄이면서 한글날 국경일서 빼버려-

30대 정원식 문교장관

<1988. 12. 5~ 90. 12. 26 재임>

 

<전호에서 계속>

노 대통령은 그 이후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대중 총재는 그날 회담 준비를 치밀하게 해왔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내가 말한 것을 일일이 메모하며 빠짐없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김대중 총재는 매우 현명하고 듣던 대로 머리가 치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국정 전반에 걸쳐 의견을 제시하고 거기서 얻게 되는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을 정리해서 회담이 끝난 후에 국민들에게 발표할 것으로 보였다”고 회고했다.

 

이후에 노태우 대통령은 민정·공화·민주당 등 3당이 합당한 통합신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을 1990년 2월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창당했다.

 

이로써 민자당은 국회의석을 민정계 129석과 민주계 54석, 공화계 34석 등 217석으로 거대 여당이 되었고 그 이전의 4당 체제에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민당과 양당구도로 달라졌다.

 

 

장관 재임 2년21일의 영욕

 

이렇듯 1990년은 정계개편과 국회의석이 여대야소 정국으로 바뀌면서 정원식 문교부장관의 관운도 상승했다.

 

1988년 12월5일 취임하여 1990년 12월26일 개각으로 퇴임하기까지 2년21일간 재임하면서 전교조 창립에 따른 가담교사의 대량해직으로 오명을 남겼고 국무총리 내정 후 외대 강의에 나갔다가 학생들로부터 계란세례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모습이 TV에 비쳐지는 등 국무총리 재임기간 중 9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여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김영삼 총재로부터 경질요구 기자회견으로 위상이 훼손되는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서울사대 교수 출신으로 문교부장관 재임 기간은 영욕이 반반이 되는 것으로 재6차 교육과정 개정 방향제시 등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 교육은 최근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란이 멈출길 없어 보인 것에서 당시를 재조명하게 된다.

 

이런 기회에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 대한 추적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 같다.

 

이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1894년부터 1910년까지 갑오경장과 신교육 및 통감부시대에서 근원을 더듬게 된다.

뒤이어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통치시대의 교육을 들 수 있고 1945년부터 1954년까지 미군정청의 과도기와 교수요목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제1차 교육과정 시기(1954~1963)와 제2차 교육과정 시행기간(1963~1973)의 군사정권 때의 교육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제3차 교육과정 시기(1973~1981)는 유신시대로 꼽히게 되면서 제4차 교육과정 시기(1981~1987)의 신군부시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제5차 교육과정 시기(1987~1992)는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노태우 대통령의 재임기간이었고 제6차 교육과정 시기(1992~1997)는 김영삼 정부의 문민시대였다.

 

제7차 교육과정 시기(1997~2007)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 시대이며 2007년부터 교육과정 차수가 없어지면서 수시개정체제로 2009년까지 노무현 정부가 주도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2009교육과정’이 예행된 것으로 명맥을 이었고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 및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교육과정 교과서제도 손질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정원식 문교부 장관의 재임 기간 중 교육과정과 교과서 제도에 끼친 영향과 업적을 추적해 본다.

 

1989년 1월6일 고교졸업자의 해외 유학을 전면 허용한 지침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대졸미만 고졸자의 해외유학은 금지된 상태에서 풀어준 것이다.

그해 2월2일 대학생 과외를 전면 허용해서 학비조달을 도왔고 중·고교생의 학원수강은 방학기간만 허용했다.

 

4월13일 “고교 학군제를 광역학군으로 전면 개편할 방침”이라고 발표했으며 6월16일 학원법을 개정해서 규제사항 일부를 완화했다.

 

완화된 주요 사항은 재학생 학원수강을 자율에 접근시킨 수준이었다.

 

7월27일 문교부 직제를 개정하고 장학편수실을 유지시켰다.

 

10월16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7차)하고 발행자의 이윤을 25% 인상 조정 하는 등 기타 경비의 계산법을 확정했다.

 

1989년 11월 당시 문교부 교과서 발행 현황은 초등학교 146종, 중학교 127종 중 1종(국정)28종, 2종(검정)99종이었다.

고등학교는 781종 가운데 1종 445, 2종 336종으로 총합계 1054종이었으며 이 중 1종도서는 619종, 2종도서는 435종이었다.

 

정원식 장관이 마지막 재임한 1990년은 1월3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문화부가 신설되어 문교부 편수관리관의 국어 및 한글에 관한 연구기관의 지도·감독권이 문화부로 이관되었다.

 

1월20일 문교부 고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부분 개정해서 ‘직업교육 위탁과정’을 신설했다.

4월7일 독학에 의한 학위취득법을 제정하고 독학자에게 처음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8월11일 고등학교 평준화제도의 개선방안을 확정, 발표했고 9월10일 문교부 훈령 제473호로 교과용도서의 주문과 공급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11월1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1991년 1월1일부터 적용되면서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시켜 빼버렸다.

 

이때 학계의 반발이 극에 달했고 한글학회는 삭발·단식투쟁으로 반기를 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원식 장관의 기억에서 가장 아픈 대목이다.

 

12월12일 문교부 직제를 개정해서 장학편수실에 ‘교육방송 관리관’을 신설했다.

EBS 교육방송에 대한 지도·감독이 주무였다.

그리고 2주일(14일)이 지난 12월26일 개각으로 교육부에서 떠났다. 떠나면서 재임 중 해직시킨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얘기는 자제했다.

 

자신이 서울사대 교수로 있으면서 직접 가르쳤던 제자들도 해직의 아픔을 겪고 있었지만 한마디 하게 되면 상처만 건드린 것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에 유의한 것 같았다.

 

누구나 어떤 자리에 들어오면 언젠가는 나가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새삼 실감되었다.

정 장관 재임 때 해직된 교사들은 그 이후 다음 정권에 의해 대부분 복직되었고 정년까지 교단에 머물다가 정 장관보다 더 오래 재직한 뒤 떠날수 있었다.

 

이들이 복직 되었을 때 김영삼 정부는 “지난날의 아픔을 잊고 함께 교육을 발전시키고 개혁하자”고 위로 격려했을 정도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