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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교사의 혼맥으로 살려낸 우리교육 숨결

교사의 혼맥으로 살려낸 우리교육 숨결

 

- 교육부 48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299회) -

회유와 탄압 이긴 지성의 고통은 방벽

현장의 젊은 피 끓어 스승자리 지켜

80년대 신군부 독재 맞서 민주화 지켜

- 권력의 무리 총동원 농간에도 굽히지 않았던 투쟁-

○… 본고는 지난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8년 째가 된 본지 김병옥(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30대 정원식 문교장관

<1988. 12. 5~ 90. 12. 26 재임>

<1988. 12. 5~ 90. 12. 26 재임>

24년 전 우리 교육의 모습

<전호에서 계속>

 

▲서울 이문초등학교의 정명원 교사는 남편마저 “전교조 활동을 계속하려면 이혼을 각오하라”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5월이지만 밤바람은 싸늘했고 하늘에 별만 총총한 것에 눈물이 솟구쳐 뺨 위에 흘렀다.

결국 밤잠을 설치고 생각한 끝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 교사는 탈퇴각서를 쓰고 말았다.

 

▲공립과 달리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법인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전교조 가입을 막거나 탈퇴가 쉽지 않은 것에 일부 시·도교육청은 “국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으며 끊기도 했다.

 

이에 대부분의 사립학교 법인들은 “최대한 협력하겠다”며 “징계완화 내지 철회 허용을 재량에 맡겨 주면 그만한 성의를 보이겠으니 재고하라”면서 여유를 요청했다.

 

이유는 유능한 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스카웃 등 애쓴 것에 반해 전교조 가입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교육청은 “학교분회 전교조 조합원 수를 다만 몇 명이라도 줄여 달라”는 것으로 양보했다

 

▲1989년 5월에서 6월까지 사이에 서울시내 공립학교에서는 전교조가입교사를 탈퇴시키기 위해 벼라별 일들이 속출했다.

 

관악구 신림본동에 살았던 김원호 초등교사에게 느닷없이 시청의 김 모 운영과장이 찾아왔다.

 

김 과장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고 관악구청의 직원 한 명을 데리고 방문했다.

 

처음 만난 사이라 김 교사가 “누구시냐?”고 묻자 명함을 내밀면서 “선생님과 제가 같은 고향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보라며 향우의 불리한 징계처분을 막아 구제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져 왔다”고 대답했다.

 

이에 김 교사는 구청에서 안내하고 온 직원에게 “이 분(김과장)과 제가 같은 고향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고 모시고 왔느냐?”고 묻자 “향우회 명부를 보고 알게 된 것 같다”면서 “저도 윗분께서 안내하라는 지시를 해서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가 막힌 김 교사는 시청에서 온 과장에게 “제가 고향 분에게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저 오늘 출장명령으로 나왔기 때문에 들어가면(시청에) 복명을 해야 하는데 종친(김교사)께서 탈퇴할 의향만 보여줘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김 교사는 “의향은 제 마음인데 아직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단정하시면 곤란하다”고 역정을 내자 “그 정도면 제 입장은 곤란을 면한다”고 말해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돌아가 달라”고 했는데 뒷날 교육청에서 “어제 고향분에게 탈퇴의사를 밝혔느냐? 확인해 보는 것”이라며 전화로 물어 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김 교사는 “그렇게도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자라”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 화근으로 징계 받았다.

 

▲같은 때에 서울 구로구 시흥1동에 사는 박 모 교사의 집에도 동장이 찾아와 “상부의 지시로 왔다”면서 “전교조 탈퇴를 권고하라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호소했다.

 

이에 박 교사는 “제가 탈퇴하지 않으면 동장님 목이 날리게 되는 거냐?”고 물은 뒤 “나설 일이 아니니까 그냥 돌아가라”며 타일러 보냈다.

 

▲같은 날 영등포여고의 송 모 교사는 사복경찰관 한 사람이 찾아와서 “마포경찰서 대공계 소속인데 선생님 행적을 조사해 봤더니 과거 학생운동 경력도 없으신 분이 왜 전교조에 가입해서 노조운동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이에 송 교사는 “꼬옥 학생운동을 했어야 전교조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학생들이 보고 있으니 죄없는 사람 오래 붙들고 이런말 저런말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돌아가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난들 이러고 싶겠느냐”면서 “나도 둘째 남동생이 고등학교 교사”라고 말한 뒤 발길을 돌렸다.

 

▲서울 성북구 장위1동에 살던 박 모 교사의 집에 “종암경찰서 정보과 소속 이 모 경장”이라며 찾아와 “정부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왔다”면서 “전교조에서 탈퇴하면 이런 일도 없을 테니 알아서 처신하라”고 했다.

 

▲서울 태릉고교 이계림 교사는 수업을 막 끝내고 교무실에 돌아오자 고교와 대학교 동창인 중앙정보부의 임 모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만나 반갑고 옛 생각이 나서 동창 가운데 맥주홀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묻던 중 “같이 있는 동료(중정직원)인데 인사 나누라”며 동행한 사람을 소개했다.

 

서로 첫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그는 “함께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나누며 애기하자”고 했다.

이 교사는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교문밖에 나가려면 교감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주저하자 동창께서 “벌써 다 얘기 해뒀으니까 지금 퇴근해도 된다”고 했다.

 

마침 교감이 다가와 “이 선생! 가도 돼요”하면서 허락함으로 세사람은 학교 인근 괜찮은 음식점에 들어가 술잔을 나누었다.

 

이때 동창은 “전교조 까짓 것 탈퇴해버려! 그게 그렇게도 좋은 것이냐”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게들 사는 거라”고 빈정거렸다.

 

그날은 그냥 가볍게 한 잔씩 나누고 헤어졌으나 뒷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일 집으로 이른 아침과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고 그 때마다 “탈퇴했느냐?”고 확인한 것에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참다 못한 이 교사는 “이런 얘기 그만 하자”고 말하자 “그래도 교사라면 다 들 알아주는 직업인데 왜 그걸 놓치려고 그러느냐”면서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지금 내가 탈퇴하지 않으면 너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거냐?”고 묻자 “남의 직장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며 “넌 구제불능이야! 이젠 나도 모르겠다”고 짜증섞인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뒷날 학교에서 교감이 “서로 형편을 봐주면 든든한 빽이 되는 건데 왜 동창하고 등지고 살려고 그러냐”면서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같은 학교(태릉고교)의 유용태 교사도 고교 1년 후배인 중정직원 2명이 가끔씩 찾아와 전교조 탈퇴를 종용했으나 이계림 교사와 함께 굽히지 않고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 학교의 김현주 여교사는 아버지가 대한전매공사 신탄진담배공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사장실에서 부른다기에 들어갔더니 “지금 막 중정분실에서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당신 딸이 서울 태릉

고등학교 교사가 맞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하자 “거 왜 하필이면 딸이 전교조에 가입해서 속을 썩히게 하느냐”면서 “당장 서울에 올라가서 탈퇴시켜버리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에 아버지는 “듣던 중 처음”이라며 “전교조가 나쁜 것이냐?”고 묻자 “거 참 몰라도 너무 모르네. 빨갱이들이니까 중정분실까지 나서는 것 아닌가. 일 커지기 전에 당장 탈퇴시켜야지 안 그러면 당신과 내가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에 놀란 아버지는 그 길로 기차를 타고 서울 태릉고등학교에 쫓아와서 딸에게 “아버지가 죽고 사는 것은 너 하기에 달렸다”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탈퇴했다.

 

▲서울 난우중학교 김정림 여교사는 국가보훈처에서 친척인 김 모 사무관이 집으로 찾아와 “전교조에 있지 말고 탈퇴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김 교사는 며칠 전에 출신 고교인 광주 대성여고에서 “국가보훈처 직원이 찾아와 신원조회를 하고 갔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이 사무관에게 “왜 이러시는 거냐?” 물었다.

 

그러자 “몰라서 묻느냐?”고 반문하면서 “가족 중에 공무원도 있고 국영기업체 직원도 있는 선생님이 알아서 할 일인데 어쩌자고 전교조는 탈퇴하지 않고 버티느냐”고 책망까지 했다.

 

이에 미모의 김 교사는 “사무관인데 생각이 고작 그 수준이냐”면서 “아닌것 같아 실망했다”고 안타까워하자 말없이 돌아섰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