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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과기부를 합쳐 교과부로 개칭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5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사료가 되고 있다. 〈편집자〉○

 

이명박 대통령 MB정부 출범 때 시행

교육·과학전담 차관 임명 장관 보필

인문 사회과학 조율 자연과학과 형평

 

- 이공계 대학 교육 새 지평 열고 융합형 인재 시도 -

 

이명박 MB정부의 처음

51대 김도연 교과부장관

 

<2008. 2. 9~ 2008. 8. 5 재임>

 

일본 문부과학성 닮아 뒷말

 

<전호에서 계속>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008년 1월로 5년 임기가 끝나 일몰되면서 제10대 이명박 대통령이 이끈 MB정부가 뒤이어 출범했다.


이는 1945년 8월15일 해방될 때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들어와 일본의 조선총독부에서 한반도남반부를 접수하고 1948년 7월까지3년간 군정을 실시한 뒤 건국한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한 이래 60년 만의 일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허정 수반) 이래 윤보선(장면 내각),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으로 이어져 통치했고 교육장관은 문교부에 이어 교육부가 2008년 2월9일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제51대 김도연 장관이 임명되어 취임한 것에 맞춰 차관도 교육 및 과학전담으로 ‘2차관제’를 도입, 장관을 보필하게 되었다.


이에 교육계 일각에서는 “2007년도에 일본 정부가 문부성과 과학성을 통합, 문부과학성으로 개편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뒷말이 따르고 우리 교과부의 두 차관도 기존의 교육부와 과학기술부 출신으로 통합 전 업무를 분담한 모양새였다.


그 이후 일본은 지금까지 문부성 및 과학성의 통합을 지속, 변동 없이 이어온 것에 반해 한국은 2013년 3월, 이명박 정부가 떠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과부를 재분리해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임기 5년 동안 교과부 수장은 김도연, 안병만, 이주호 장관 등 3명이며 차관은 8명으로 1차관 5명, 2차관 3명이다. 김도연 장관을 보필한 첫 1차관은 교육부출신 우형식, 2차관은 과학기술부 출신 박종구, 두 번째 1차관은 이주호(후에 장관), 2차관은 김중현, 세 번째 1차관은 설동근(부산시 교육감 출신) 2차관은 김창경, 네 번째 1차관은 이상진, 김응권(이상 교육부출신)차관이었다.

 


과학도 출신 장관의 교육관


김도연 장관은 1952년 3월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백천으로 197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공대 재료공학부에 입학해서 전공했고 1976년 한국과학기술원대학원의 재료공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 블레이즈파스칼대학에 유학, 1979년 재료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국립RENAULT 자동차회사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 이후 귀국해서 1982년까지 아주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거쳐 모교인 서울공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강단을 지켰고 1990~91년은 미국의 표준연구소(NIST) 초빙연구원으로 재임했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2002년 세라믹학회 Fellow, 2004년 WAC(World Academy of Cerami cs) 정회원, 2005~2007년 서울대 공과대학장 등 일본의 도쿄대 펠로교수, 2008년 울산대 총장, 교과부장관을 거쳐 2013년 서울공대 재료공학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현재 포스택 총장이며, 신앙은 기독교이다.


김도연 장관이 2008년 2월9일 취임해서 그 해 8월5일 떠나기까지 6개월 동안 애를 쓴 것은 대학의 이공계 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MB정부가 지향한 인재대국의 디딤돌을 놓는 일이었다.


또 초·중등·대학에 이르기까지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와류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이 살아나도록 조율하는 방안이었다.


이는 당시의 정치권이 장악한 기류에서 실현하는데 쉽지 않은 정책이었고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길잡이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역대 교육부장관의 발자취에서 드러난 일들 가운데 과학도 출신이 자신의 교육관을 정책에 접목하고 초·중등·교육을 통해 움트게 하는 것이야 말로 산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는 것처럼 난제였다.

 


이공계 교육 미래 대안 제시


이는 김도연 장관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서 떠난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이공계 교육의 미래를 제시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지난 5월14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시론에서도 ‘작고 강한 지방대학 육성책’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에서 “재정 파탄을 눈앞에 둔 사립대학이 지방에 많다”고 우려한 것이다.


대학 정원이 20만 명이던 1985년 대입학력고사 응시자는 73만명에 달했고 김영삼 정부는 누적된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부지와 건물 등 기본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했으며 이에 따라 개교한 많은 사립대학은 늘어나는 학생들 덕분에 급성장했고 그 결과 350여개 대학 가운데 300여개교가 사립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세계 평균보다 비싼 것으로 국·공립대학 등록금은 사립의 절반 수준이지만 그만큼 국민이 낸 세금에서 정부가 보조한 것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OECD 회원국 대부분은 국·공립 중심 대학 체제를 운용하므로 우리보다 대학의 학비가 싸다는 것이다.


특히 2001년 69만 명이었던 대학 입학생은 출생인구가 줄어 2017년엔 55만 명이었고 당초 70만 명을 염두에 두고 시설과 교수진을 갖춘 많은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등 10여 년 전부터 정치적 이슈로 등장한 ‘반(半)값 등록금’은 최근 들어 일종의 사회규범이 된 것으로 난제이다.


또한 이들 대학을 위한 적정한 보상 방안조차 국회에서 10년 넘게 토론만 거듭되고 있는 현실을 거듭 개탄했다.


이밖에도 학령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해서 앞으로 5년 후에는 대학 입학생이 매년 30만 명 수준으로 줄게 되어 폐교위기를 맞게 되고 이에 지방의 전문대학이 어려워진데 이어 수도권의 전문대학과 지방 4년제 대학들이 무너지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 문제의 해결은 대학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고 생존을 위한 작고 강한 대학으로 거듭나는 노력과 함께 정부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 방안을 서두르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정부 주도 통폐합으로 대학의 숫자만 줄이는 것은 최선이 될 수 없고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한 해 약 100만 명의 고교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대학 진학은 50여만 명임에도 우리 나라의 두 배가 넘는 750여개 대학이 운영되면서 30%는 재학생 수가 1천명도 안 되는 소규모 사립대학으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차별화 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에 교직원 인건비의 절반과 운영비를 지방정부가 지원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점이며 진실한 강소형 사립대학을 키운 것으로 거울이 되고도 남을 해법이다.

 


손으로 경험 과학교육 심화


김도연 전 장관은 교육부에서 떠난 뒤에도 이공계 대학의 현장을 지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린 것에 대응책을 제시했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