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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OECD 한국의 대입시제 3불정책에 우려

OECD 한국의 대입시제 3불정책에 우려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88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연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노무현 대통령 EBS특강 고수 의지

후임 장관의 정책인수 이행 부실 드러나

교발협 사정관 활성화 못해 패인 초래

-위기에 몰리면 위계 규제적 접근으로 구차한 모습-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두 제도의 중요성 강조 당부

입학사정관제


<전호에서 계속>

그래서 안병영 장관은 그 기회에 이 제도를 정착시킬 뜻을 세웠다.


따지고 보면 그간 우리나라 대학들은 발전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바르게 선발하기 위한 꾸준한 자체적 노력없이 수능점수와 같은 객관적 수단에 의존하여 대학서열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이제 대학 내 행정조직으로부터 독립한 전문 보직으로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고, 그를 통하여 전형기관과 무관하게 연중 입학관련 업무를 보다 전문적이고 독자적으로, 그리고 책임있게 수행할 때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입학사정관을 통해 지망학생들의 점수뿐만 아니라, 그가 이수한 교과, 비교과의 교육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지니게 된 다양한 능력과 성장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고교와 학생들에 대한 자료를 장기간 분석·축적,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비단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운영의 개선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제도가 바르게 정착되는 경우, 앞으로 대학입시 자율화를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축적된 교육과정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고교 등급제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는 2008년 대입시가 시행되는 2007년 11월까지 만 3년이 남았었다.


안 장관이 위의 두 제도를 강조한 것은, 그 때까지 이 제도, 특히 ‘교육발전협의회’가 내신-수능-논술 간의 상대적 관계를 사회적 협의를 통하여 바르게 설정하고, 아울러 고교 교육과정의 개선을 통하여 내신제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높이지 않으면 새 입시안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안 장관은 2004년 10월 28일 ‘2008 대입시안’이 발표된 시점에서 그간의 청와대와 잦은 갈등 때문에 이른 퇴임이 기다릴 것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발전협의회의 발족을 서둘렀던 것이다.


고심 끝에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온건 개혁론자인 동덕여대 손봉호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대학, 고교, 학부모, 시민단체, 언론, 교육부 등을 망라한 20명의 위원을 엄선, 그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


그 때가 2004년 12월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인 2005년 1월4일 개각으로 경질되어 장관직을 떠났다.


떠나면서 교육부 고위직들에게 이 두 제도의 중요성과 특히 ‘교육발전협의회’의 의미를 누누이 설명했다.



발표 후 계속된 사회적 논란


‘2008 대입개선안’은 최종 확정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학생부 위주 전형에 따라 내신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고, 수능의 변별력 약화를 이유로 논술과 심층면접 등에 대한 비중 전망이 높아지자, 새 제도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고조되면서 사회적 불만과 반발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우선 ‘2008 대입제도’의 최종 대상자인 당시 고등학교 1학년들을 중심으로 거센 저항이 시작되었다.

2005년 5월 7일, 고교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입시경쟁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가 열렸고, 그 배경에는 내신등급제를 도입한 2008년 대입제도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그 다음 날인 2005년 5월 8일 서울대가 통합형 논술 전형안을 발표하자 이를 본고사로 판단할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논술고사가 뜨거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05년 12월 28일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의 7개 대학이 ‘2008 대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자 정시모집에서의 학생부 반영비율을 둘러싸고 이들 7개 대학들과 교육부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듬 해 3월, 한 고등학생이 대입시에 멍든 교육현실을 비관하며 만든 ‘죽음의 트라이앵글-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극적인 제목의 동영상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내신-수능-논술, 세 가지 요소가 빚어내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리면서 회자하게 된다.


2007년 2월 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고등교육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검토과정에서 이른바 ‘3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및 기여입학허가제의 금지)이 대학의 독자적인 입학 절차를 개발하는데 제약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동안 잠잠했던 ‘3불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재점화한 것으로 주목됐다.


좌, 우의 교육시민단체들과 대학들, 교육부 등이 참여하여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진화에 나섰다.


2007년 4월 6일 노무현 대통령은 EBS(교육방송)에서 ‘본고사가 대학 자율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여 3불정책 고수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이어 당시의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전국을 돌며 3불 정책유지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호소하는 이른바 ‘3불 투어’를 5월까지 20여 차례 걸쳐 계속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7년 6월, 연세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들이 200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내신 4등급 이상 만점 처리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교육부는 내신 1~4등급 만점처리를 강행하거나 실질반영률을 50%까지 확대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을 대폭 줄이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노무현 대통령도 “내신 무력화는 고교 등급제로 가는 길이다”라며 강도 높은 의지를 보이면서 강력 제재를 암시했다.


이후 한 때 극한으로 치닫던 교육부와 대학들 간의 갈등은, 격돌직전에서 양측이 한 발씩 물러남으로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2007년 6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총장단과의 토론에서 2008학년도 입시안의 내신반영 비율문제와 ‘3불’ 등에 재차 언급했고 이에 대한 대학 및 교수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등 확전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단계적 접근방식’으로 조율하는 선에서 봉합되었다.


이 시기의 사회적 논란은 대체로 진보, 보수 양 ‘진영’으로 나뉘어 전개되는 양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여당, 진보언론, 진보적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되었던 진보진영은 내심 미흡하지만 새 ‘2008 대입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인데 반해, 세칭 일류의 상위권 대학을 비롯한 주류 보수언론과 보수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의 기치를 높였다.


이렇듯 치열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 속에서 안병영 장관이 ‘2008 대입제도 개선안’ 성공의 첫 번째 전제라고 공언했던 ‘교육발전협의회’와 ‘입학사정관제’는 그 어느 것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앞서 김진표 장관이 몇 차례 ‘교육발전협의회’를 개최하였으나 정작 주요 입시 쟁점에 대한 사회적 협의와는 동떨어진 일상적인 보고와 논의에 그쳤고, 2005년 중반 이후 그것은 이른바 ‘식물화’과정에 들어가 완전히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교육주체들 간의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해 <내신-수능-면접>의 3박자를 ‘상생의 트라이 앵글’로 만들겠다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