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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고심 덜고 기능과 역할 존중 감싸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76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교과용도서 규제 전면 손질해서 풀고

학생교육 세계화 정보화 시대 주역 되게

교과서대로 가르칠 부담 벗도록 도와

-실생활과 유리된 교과서 실용·유용성 추구 편찬-

김대중 정부 마지막 지킨

44대 이상주 교육부장관

<2002. 1. 30~ 2003. 3. 6 재임>

역사와 역사교육 대치 극기

<전호에서 계속>

 

…그래서 박정희 정권 유신 때의 역사교육은 ‘역사와 다를 수 있다’고 시작해서 ‘달라야 한다’고 정의했고 신군부에서 노태우 직선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면서 민주화 물결에 밀려 김영삼 문민정부와 김대중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에 ‘역사와 역사교육의 가치 정립’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또 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부하된 기능과 역할은 ‘교과서대로 가르칠 것인가?’ ‘교과서처럼 가르칠 것인가?’에서 고뇌가 따랐으며 책무 수준에서 ‘교과서대로 가르쳐야 한다’ 는 강요의 물결과 맞부딛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 신군부(전두환 대통령)의 청와대 교육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이상주 장관에게 ‘역사와 역사교육은 달라야 한다’는 것과 ‘다를 수 없다’는 대치점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에 무게를 두고 보게 된 것이다.

 

이 장관은 경북 영주(1937년)에서 태어나 부산사범학교를 졸업(1956년)했고 1960년 서울사대와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유학,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공군사관학교 교관, 서울사대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교육연구·기획실장을 거쳐 원장을 역임하는 등 전력에 비추어 평판하기 어려웠다.

 

 

제7차 교육과정기 마무리

 

제7차 초·중등교육과정기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임기인 1997년 12월30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1998년 3월3일 제38대 이해찬 교육부장관과 39대 김덕중 장관, 40대 문용린장관, 41대 송자장관, 42대 이돈희장관, 43대 한완상 부총리 겸 장관에 이르기까지 이상주 부총리 겸 장관의 전임 6명 장관 재임기간 동안 시행된 것으로 맥락을 이어왔다.

 

아울러 제7차 교육과정기의 마무리는 이상주 장관의 몫이었고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교육장관인 점에서 피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국민의 정부 5년은 김영삼 정부의 7차 교육과정 고시 때 목표였던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때문에 주요 내용은 국민공통기본 과정과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의 도입에 걸맞도록 충실하게 이행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출범 첫 해인 1998년은 IMF로 인해 2학기부터 교과서는 재생용지에 인쇄해서 사용했고 그 해 2월에는 교과서의 검인정 업무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넘어갔으며 초등학교 영어교과서를 편찬, 2001학년부터 국정도서로 개발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 초기의 교과서정책은 우선 재생용지에 찍어 썼던 교과서의 지질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했고 질 좋은 교과서를 발행하기 위해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이를 포함했다.

 

또한 2001년 4월부터 12월까지 전임 한완상 장관 재임기에 닥친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태와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빈발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처한 것에 일본정부를 상대해서 시정을 끝까지 요구할 일은 당연히 교육부장관의 몫이었다.

 

이 기간에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방한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일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합의된 것으로 교육부 장관의 책무는 그 만큼 무게를 달리하게 되었다.

 

이상주 장관은 2002년 6월25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전면 손질해서 풀어주고 “시대 발전에 부응해서 질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중등교과서의 연차별 검정 업무를 개선, 차례로 종결했다.

 

이 때 다양화·개방화 추세에 부응해서 검정교과서의 신청자격 및 검정도서를 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교과용도서 발행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급 대행자 지정 제도를 폐지하고 발행사별 자율책임 공급제로 전환시켜 교과용도서의 분류 체계와 용어를 정비하는 등 질적 향상의 길을 열었다.

 

바로 이 시기에 한자 교육과 대안 교과서 및 부교재 시비 등 검정교과서 가운데 ‘한국 근·현대사’ 기술 내용에 대해 야당의 “현 정부(김대중) 편향 교과서”라는 지적과 함께 역사교과서 기술의 관점을 놓고 시비가 벌어졌다.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이상주 장관은 제7차 교육과정에서 설정한 그대로 ‘새천년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과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 방향에 걸맞도록 공급자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체제에서 탈피하여 학생의 건전한 인성 발달을 도모하고 다양한 능력과 적성을 존중, 창의적인 능력을 기르고자 하는 학생 중심 교육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혀 강조하는 등 다짐했다.

 

이를 위해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학습이 수월하도록 수준별 교육과정이 되게 하면서 교과별로 학습내용의 최적화를 도모했다.

 

동시에 단위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해서 지역과 학교의 특색을 살리는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체제를 확립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에 따른 교과용도서의 편찬은 그 목적을 7차 교육과정에서 추구해온 인간상과 교육목표 달성에 적합하도록 총력을 경주하고 편찬의 기본방향을 4개항으로 집약, ①교육과정 정신 반영 ②학교 교육체제에 적합한 편찬 ③학습자 중심의 다양하고 질 높은 편찬 ④연구개발형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편찬이 되게 했다.

 

이 때 기대하는 교과서의 모습을 전통적인 교과서와 바람직한 교과서로 구분하고 교과서관의 금과옥조형인 교과서 중심 학교교육 및 지적영역 중심의 전통적인 교과서로 치우치지 않도록 올곧게 정립하여 교육과정 구현을 위한 다양한 자료 중의 하나(주된 자료)인 교과서가 되도록 바꾸어 학교교육에 적합하면서 기능·태도·영역에 유의해서 창의·사고력이 배양되도록 탈바꿈했다.

 

이에 교과서의 진술형태도 지식 요약형, 개념 압축형, 강의 요강형 등 전통적인 유형에서 탈피하고 다양한 사실과 사례 제시형, 학습과정(절차와 방법) 중시형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쉬운 교과서가 되게 했다.

 

교과서의 단원전개 체제는 모든 교과서에 하나의 전개 체제 적용에서 단원과 주제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체제가 되도록 하고 내용의 선정은 지식 중심, 교사 중심의 원칙에서 교과서 내용이 실생활과 유리된 것을 바로잡아 핵심개념과 관련된 실생활의 경험 및 사례 중심은 물론, 학생 중심 내용으로 바꾸어 실용성과 유용성을 갖추도록 했다.

 

내용의 조직은 지식 체계별 단선형 위주에서 관련 지식과 실생활 경험을 통합하여 반영하되 문장과 삽화의 단조로운 구성 보다 다양한 편집 체제의 도입을 지속했다.

 

이밖에 교과서의 연구개발 과정도 기초연구가 소홀히 된 것을 보완해서 이를 보다 중시한 내용이 되게 한 것으로 전환했다.

 

이는 교육의 본질과 정통성을 재확립한 것으로 학교교육이 제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IMF 사슬 벗고 재기의 발돋움 혼연일체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74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학교로 가야할 돈 새지않은 투명운영

정부 금모으기에 장농속 돌반지 쏟아져

재정운용 대책 시급한 현실과 대조적

-전자교과서 서둘면서 야당의 대안교과서에 진땀-

김대중 정부 7번째 임명

44대 이상주 교육부장관

<2002. 1. 30~ 2003. 3. 6 재임>

연간 22조3천억 규모 예산

 

<전호에서 계속>

불과 13년 전인 2002년도 교육부의 연간 세출예산이 22조3천억 원 규모로 2015년도 교육부 예산 53조3천537억 원의 반액도 안되는 것을 밝힌 지난호의 내용에 독자들로부터 필자에게 “믿기지 않는다”고 재확인을 요청한 전화 문의가 있었다.

 

이는 교육부 관계관에게까지 묻는 것으로 오늘날 교육계의 관심사는 교육재정의 확보가 교육의 성패를 가름할 관건으로 긴요한 것에 공감하게 된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 출범 때는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안기고 간 IMF 사슬에 묶여 국민들은 정부가 호소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서 장농 안에 간직해 두었던 ‘돌반지’까지 내놓을 만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데 혼연일체가 되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이에 힘입어 엄혹한 IMF 속박을 벗고 재기하게 된 시기에 접어들면서 2002년도 교육부예산도 22조 원 수준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5년 임기 가운데 4년차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호전된 것에 힘입어 이 만큼의 교육재정을 확보하게 되었다.

 

당시(2002) 각급학교의 수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두 19,058개교였고 학생수 1천1백93만6천398명으로 교원은 43만4,419명이었다.

 

이에 유치원은 8,407개원 54만5,142명 원아와 2만8,975명의 교원을 두고 있었다.

 

초등학교는 5,322개교에 학생 408만9,569명, 교원 9만3천593명이었고, 중학교는 의무화 진행 단계로 2,785개교에 학생 1백83만5,897명, 교원 9만3천593명이었다.

 

고등학교는 일반계 1,210개교, 실업(전문)계 759, 방통고 40, 고등기술 15, 각종학교 11, 산업체부설 19(학급) 및 일반특별학급을 45개교에 두는 등 모두 203개교였다.

 

이에 고등학교 학생 수는 모두 1백94만1,461명이며, 교원은 10만4,986명이었다.

특수학교는 134개교 학생 23,769명에 교원 4,815명이었다.

전문대학교는 159개교로 학생 95만3,294명, 교원 1만1천904명이었고, 이에 각종학교 1개교 학생 645명과 교원 7명이 포함되었다.

 

대학교는 197개교로 학생 2백30만3,996명, 교원 4만6천628명 교수 충원난이 현안이었다.

 

이 가운데 4년제 162개교, 학생 1백72만9,638명, 교원 4만3,309명, 산업대 19개교 학생 18만68명, 교원 2천456명, 교육대학 11개교 학생 2만1,418명, 교원이 710명이었고 방통대 1개교 학생 37만661명, 교원111명, 기술대학 1개교에 학생 198명, 전임교원은 겸직으로 두었다.

 

이밖에 각종학교 3개교에 학생 2천13명, 교원42명이다. 대학원은 18개 대학에 부설 또는 단설이 인가를 검토 중이었고 학생수 2천13명, 전임 교원은 42명이었다.

 

2002년도 당시 교육부가 확보한 세출예산은 전년보다 3.2% 증액된 것으로 총규모 22조2천7백83억5천8백만 원 가운데 일반회계 18조4천454억1,200만 원(3.7%)이었다.

 

이에 국고 3조4,630억6천100만 원(8.4%)이며, 인건비 1조648억8,300만 원(11.6%) 기본사업비 2천2억1,200만 원(14.3% 감액) 주요사업비 2조1천979억6,600만 원(9.5%)으로 운영했다.

 

그 때나 지금에도 관심의 대상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 징수 총액의 12.98% 적용으로 14조9,823억5,100만 원(2.7% 증액)이었다.

 

이에 봉급교부금 4조3,673억400만 원(11.8%) 경상교부금 10조1,271억2,600만 원(3% 감액) 증액교부금 4,879억2,100만 원(9.4%)이었다.

 

이밖에 특별회계 3조8,329억4,600만 원(1%)으로 재정융자 559억 원(22.4% 감액) 국유재산관리 711억6,500만 원(13%) 농어촌특별세관리 177억3,000만 원(18.3% 감액) 지방교육양여금관리 3조6,726억3,200만 원(1.3%) 책임운영기관 155억1,900만 원(1% 감액)이었다.

 

이와 같이 당시 교육부의 소요예산 등 교육재정 확보는 2015년 현재의 절반수준을 밑도는 실정이었고 학생·교원·학교수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닌 것과 비교하면 교육재정의 운용에서 효율과 지혜를 경주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그 때는 “학교에 가야할 돈이 새고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지금은 교육재정의 누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감사원의 시·도교육청 예산운용 특감이 있었으며 2016년은 교육부가 지방교육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독려하면서 특별대책을 수립한것으로 다른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이상주 장관은 취임 첫 달인 2002년 2월로 접어들면서 “전자교과서 개발 및 보급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엄명에 밤잠을 설치고 준비하느라 바빠졌다.

 

이어서 3월5일 디지털방송이 시작되면서 ‘뉴 미디어시대 개막’을 선포했다.

 

4월이 되자 9일, 역대 교육장관 13명이 초등학교의 한자교육 실시를 건의하면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이에 “정부 방침은 한글전용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검토해 보겠다”고 응수했었지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어서 5월이 되기 무섭게 대안교과서가 범람할 위기에 “이를 학교에서 사용할 경우 의법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대처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을 배수진으로 ‘우리말, 우리글, 살아있는 한국사’등 대안교과서의 출현은 작금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 만큼 논란을 불러 들끓게 했다.

 

교육부는 그해(2002) 6월20일 “2002월드컵 관련 내용을 각급학교의 관련 교과서에 수록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6월22일 경기에서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 진출이 확정되면서 열기에 찼다.

 

뒤이어 6월25일엔 “2003학년 초·중·고교의 교과용 도서부터 공급대행자 지정제를 발행자 자율책임 공급제로 전환,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전문 개정했다.

 

이때 개정이 제19차로 대통령령 제17634호로 공포 시행했다.

 

특히 분류체계와 용어정비 및 전자교과서 도입 근거를 마련하고 가격사정 방법까지 개선했다.

이어서 2002년 7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고등학교용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의 합격본에 대한 물의가 일자 문제가 될만한 부분의 내용 수정 보완 등 개선책을 서둘렀다.

 

당시 수정 보완 대상이었던 부분은 중등검정교과서가 김대중 정부 치적 위주의 저술로 파문이 확산된 것과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편향 시비로 논란이 되어 교육계가 시끌벅적했다.

 

9월8일엔 남북적십자의 합의로 이산가족면회소를 금강산 지역(온정리)에 설치 운영할 것을 합의해 남북한 화해무드가 진일보한 상황이었다.

 

9월30일 교육부는 산하의 ‘한국교과서연구재단’에 맡겼던 교과서 공급 대행 업무를 환수하고 종료했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초등 한자교육 논란 범국민적 합의 요청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71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이웃 현실에서

교육의 시대적 요청 증명할 필요 증대

영어 뒤지지 않는 한자 사용 역할 커

-한자 병기 교과서 유보 전직 편수관들 우여곡절 회고-

김대중 정부 6번째 임명

43대 한완상 교육부장관

<2001. 1. 29~ 2002. 1. 29 재임>

기초 한자 훈과 음 결정 시급

 

<전호에서 계속 이음>

앞으로 교육용 한자 조정 과정에서는 그동안 이룬 실적을 바탕으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문제를 범국민적 합의로 해결하도록 바라는 요청이 점증했다.

 

넷째로,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의 대표 훈과 음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하여 하루 빨리 결정해야 옳다는 요청도 따랐다.

 

전통문화의 창달이라는 측면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중요성은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해서 나온 주장이었다.

 

더구나 세계화, 개방화 시대에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이웃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경제적, 문화적 교류 측면에서 영어에 뒤지지 않게 되는 한자 사용의 역할을 신세대에서 더욱 기대하게 된것이 이유였다.

 

따라서 글로벌화 시대에 문화의 교류나 교육측면에서 대표 훈과 음을 정하고 한자, 한문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교육의 시대적 요청을 증명할 필요가 점증하고 있다.

 

한문전적 독해와 문화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훈과 음을 중시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따른 언어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여 대표 훈과 음을 결정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게 된 것이다.

 

 

미래 문화 자산 영위와 교육

 

한완상 교육부장관 재임 당시의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결정은 1년6개월이 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44자를 추가하거나 제외하는 결과를 도출했고 홍보 자료와 조정백서의 발간으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단순이 한자·한문 교육의 개선과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수행한 조정 작업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조정 과정에 민족문화 발전의 여망과 계획을 담아 본다는 자부심도 작용했었다.

 

우리 민족의 문화 자산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창출, 발전시키고 지켜 나아가 융성되고 민족의 번영은 문화 자산 융성(隆盛)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민족의 문화 자산을 융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위환경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문화의 실체를 풍부하게 해야 하고 문화의 전통 계승이라는 실천적 측면에서만 보면 오히려 문화발전을 저해하고 그 실체를 왜소하게 만들게 마련이어서 그러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역사상 세종대왕이라는 위대한 분을 만났기에 한글(훈민정음)이라는 우리만의 민족유산이 아닌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향유하게 되었음이다.

 

그래서 그 옛날에 대왕께서 현대의 디지털 시대를 내다보고 과학적이면서 우주의 원리가 내재된 글자를 창안하게 되었다는 감탄사를 발하는 것으로는 부끄럽다고 했다.

 

한글은 소리 자질(소리글자)과 뜻의 자질(뜻글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글자이며 앞으로 인류의 언어 사용과 생존에서 순위는 상위권에 들고 한글이 세계적인 언어로 발전한다는 전망 또한 허상이 아니라고 자부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융성도 이러한 세계적인 글자의 사용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하고 분명히 한글이 세계적인 언어로 발전하면 우리는 세계 역사에서 영원히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우수한 민족으로 우뚝 솟을 것이라는 긍지가 용솟음 쳤다.

 

그러나 ‘한글전용’이라는 민족적 숙원의 한 곁가지에서 보면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논의 과정에 있어 안타깝고 ‘한글전용’이라는 민족적 이상이 ‘한자병용’(또는 ‘국·한문혼용’)과 상보적(相補的) 관계냐, 아니면 대척적(對蹠的) 관계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문제는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국민적 관심사로 불식되기 어렵고 지속되어 한자가 우리 문화의 자산이므로 문화적 향유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함께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 것도 의미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한글전용’이냐 ‘한자병용’이냐 하는 양자택일 문제의 해결 방법에서 인위적으로 정책적 차원에만 의지하는 것은 논쟁을 조속히 불식시키기 어렵고 문화적 실체와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법칙에 계합(契合)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이 문제도 문화현상으로 남겨 놓을 방법이라는 것이다.

 

좀 궁여지책(窮餘之策)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문화유산의 향유를 풍요롭게 하려면 어느 문화 자산 하나만 강조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어느 것은 의도적으로 도외시해도 안 되기 때문이어서 그러했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거센 풍랑 사이에서 살아남은 지혜가 다시 발휘되도록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도 변함없는 중론이었다.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을 우리는 민족의 생존전략으로 일찍부터 깨우쳐 받아들여 왔음도 간과할 수 없었다.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이 당시 민족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돌이켜 본다면 그동안 조정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의견과, 또 이를 종합하여 내려진 잠정적 결론은 당시 우리민족의 슬기로운 모습의 재현이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도 초등학교에서의 한자 교육 문제 등 일상에서의 한자사용 논의가 용광로처럼 들끓은 현상은 마냥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각 단계별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조정 작업에 참여하여 바람직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당시의 교수와 교사, 장학사(관), 연구원 여러분들의 노고가 컸음을 새삼 밝히고 있다.

 

특히, 어려운 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었던 이경환 당시 교육부 편수국 과장과 처음부터 끝까지 조정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했던 김상홍 교수, 공간의 변화와 밤샘을 마다하고 정리를 흔쾌히 맡아 고생했던 사람들의 노고에도 경의와 고마움의 뜻이 모아져 전해지고 있다.

 

한국교육이 이분들의 정열(情熱)과 노력에 의해서 본질을 찾으며, 오롯하게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고 상기한 것이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한국교육도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며 문화자산의 슬기로운 영위와 영속(永續)을 위해서 교육에 더욱 관심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회고하면서 자부했다.

 

이상에서 보는 것은 2014년 10월9일 한글날 박삼서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장’이 증언한 것이다.

박삼서는 1994~2006년까지 교육부 국어과 담당 편수관, 교육과정정책과 과장을 역임했다.

 

 

세월이 약이듯 시류에 맡겨

 

올해 들어 지난 10월5일 ‘교과서의 날’ 기념식에 모인 교육부의 전직 편수관 등 교육과정 전문가들은 교육부에 의해 확정 고시된 ‘2015개정 교육과정 및 교과용 도서의 개발계획’발표에서 그동안 논란의 핵심이었던 초등학교 한자 교육의 국·한문 혼용 병기 교과서 발행을 늦춘 것으로 불씨가 꺼진 것에 안도하면서 “세월이 약이 듯 시류가 해결할 또 하나의 진통”이라며 자신들의 편수관 재임시에 겪었던 우여곡절을 한참동안 들먹이며 회고했다.

 

이렇듯 역사는 낮에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밤에 더욱 진통이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교육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한완상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발자취에서 한자·한문교육의 기초한자 조정에 얽힌 사연은 밤이 새도록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오묘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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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교육 담을 교과서 개발 요청 높아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70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학습자 흥미 추장과 체제에 의문 여지

국민의 정부 때 국어과담당 편수관 제언

단일한 교과서 의존 벗고 다양화 시급”

-기초 한자 제정 논란의 반성 교육위상 재정립 갈망-

김대중 정부 6번째 임명

43대 한완상 교육부장관

<2001. 1. 29~ 2002. 1. 29 재임>

교육의 틀 바꿀 교과서 되게

 

다음은 전호에서 이은 것으로 한완상 교육부장관 재임 당시 교육부 국어과담당 박삼서(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장) 편수관이 지난해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펴낸 ‘편수의 뒤안길’ 제13집에 실은 회고와 제언이다.

 

이는 교육의 수난인지 교육사의 악순환인지 가늠해보기 어렵지만 재음미해 볼 여운을 담고 있어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셋째로, 사회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교육의 틀을 바꾸는 미래형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집필상의 유의점, 검정기준 등을 탄력적으로 흡입하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

 

7차 교육과정 이후 한자·한문 교과서는 질과 양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과 변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제재의 선정과 전개, 교수·학습방법, 평가 기제(機制) 도입 등에서 학습자의 흥미를 추장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쉽게 학습할 수 있는 교과서 내용과 체제를 갖추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교과서의 기능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이제는 단일한 교과서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학습 자료를 이용하여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할 시기다.

교과서의 체제도 경직된 구조에서 탈피하여, 다원화된 구조를 흡인하는 등 변혁의 시도가 필요하다.

 

한문과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리면서 학습자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내용을 선정, 조직, 전개하는, 미래형의 ‘내적 체제’를 갖춘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 삽화, 사진, 지면 구성, 표지, 지질, 제본 등 교과서의 ‘외적 체제’를 미학적 공학적으로 구성하여, 교수·학습에 흥미를 유도하고 시각적으로도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한자·한문 교육의 내용이 고전적, 보수적 경향이라고 해도, 교과서의 체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여, 한자·한문 교육의 가치와 위상을 새롭게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21세기 새천년의 사회 변화를 능동적으로 흡인하여 창의력, 사고력을 신장시키고, 전인적 인격 형성을 도모하는 한자·한문 교육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탐구역량을 지원하고, 학습한 결과를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교육과정과, 학습자의 능력과 흥미를 고려한 쉽고 재미있는 교과서 개발을 위해 한자·한문 교육도 부단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한자·한문 교육의 지평 확대

 

당초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은 단순히 한자수를 축소하고 늘리는 작업이 아니라, 기초 한자 제정 이후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한자·한문 교육 제반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반성의 기회도 되었다.

 

제도권 내에서 주어진 시간에 교육한다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한자·한문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여 지평(地平)을 확대할 것인가를 모색하게 하였다.

 

첫째로, 시대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 한국교육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현재, 기초 한자 1,800자 교육을 중심으로 실시한 중·고등학교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은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 필수 선택 교과였던 한문 교과가,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의 경우 교과 재량 활동에서 선택 과목의 하나로 되었고, 고등학교에서는 국민공통 기본 교과가 아닌 ‘선택교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더구나 교육과정상 배당된 시수가 줄어들어, 이 시간에 1,800자를 다 배우고 일상생활에 활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후 한자·한문 교육은 더욱 약화의 일로에 들어선 것이다.

 

따라서 언어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국어교육과 상보적 관계라는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설정하고,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과정상 시간을 충분하게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을 미래 지향적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본질적인 문제이며, 한자·한문 교육의 지평을 자연스럽게 확대하는 초석(礎石)이라 하겠다.

 

둘째로, 한자교육과 한문교육 분야에 대한 학문적이며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기초 연구를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

 

1,800자 조정과정에서 절감한 것은 한자·한문 교육을 위한 기초 연구의 자료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초 연구의 부족은 한문과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했을 때도 꾸준히 제기 되었던 문제였다.

학생들의 한자 인지과정 및 양상, 그 배경의 요인, 한자와 한자어 학습 과정, 한문 독해력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 한문교육의 필요와 요구 등에 대한 과학적인 기초 연구가 자랑할 수 있는 만큼의 학문적 성과로 쌓여야 한다.

 

반복해서 강조하게 되지만, 이제 더 이상 선언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한자·한문 교육의 저변(低邊) 확대와 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자·한문 교육이 현대 또는 미래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기초 한자 1,800자를 어떻게 가르쳐야 학습자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지 등에 대한 연구가 객관적인 자료 분석에 기초하여 이뤄져야 한다.

 

셋째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의 문제는 그 필요성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실질적인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한글전용의 민족적 이상 실현이라는 과제와, 역사적으로 한국문화 형성에 기여한 문자사용의 전통적 이점과의 간격을 좁히는 논쟁이었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현재 매우 민감한 교육 현안이 되고 있다.

문자표기 방식에 대한 학문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과연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어느 학년에서 몇 자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기초 연구가 한층 질을 높여 제공되어야 한다.

 

처음 기초 한자 1,800자의 조정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론을 수렴하고 연구결과를 총집하여, 교육의 체계를 수립해 보고자 하였다.

 

그런데 현재까지 유지해 온 정책의 연속성과 민감한 국민적 관심 때문에, 거시적 방향제시라는 논의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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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한문교육은 國語의 世界化 초석”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69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언어생활 활용 독자적인 교과 교육학

기초 한자 조정 때 주무자 회고와 증언

국가 경쟁력 높여줄 역할과 기틀 되게”

김대중 정부 6번째 임명

43대 한완상 교육부장관

<2001. 1. 29~ 2002. 1. 29 재임>

 

한자 한문 교육의 변화 모색

 

1994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부 국어과담당 편수관으로 교육과정정책과장을 역임한 박삼서 ‘한국교과서·교육과정연구회장’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당부했다.

 

‘새천년 21세기 미래 사회는 지식·정보·스마트·디지털, 다원화·다문화 사회다.

지나친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동북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2000년 12월29일 공표한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를 조정했던 의의와 가치는 이에 상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불어 한자·한문 교육도 언어생활에 활용하는 교과 교육학으로서의 교육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국어교육과의 상보적인 역할 차원에서 그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오로지 한자·한문 교육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어의 세계화와 그에 따른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이 필요했다고 하겠다.

 

나아가 한자·한문 교육은 동양학 등 여타 교육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시각으로 그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던 것이다.

 

즉, 한자·한문 교육의 필요성은 주변 학문과의 환경적 동인(動因)과 연결되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제도적, 의무적인 교육이 아니라 요구와 필요에 따른 자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한자·한문교육의 ‘거시적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첫째로, 한자·한문 교육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문제 해결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제는 한자·한문 교육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을 세부적으로 파악하여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조속히 정립해야 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습목표를 어떻게 수립하고 교수·학습하여, 한자·한문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한자·한문 교육에 대한 기피증을 불식시키기 위해 학교교육을 어떻게 개선하고 수준을 안배할 것인가, 한자의 뜻과 음을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도입하여 가르칠 것인가, 배운 한자를 어떻게 언어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 등, 학습자의 다양성과 수준을 고려한 연구 결과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둘째로 한자·한문 교육을 학교교육 범주 안에서 탈피하여 사회·평생 교육 차원으로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

현대는 스마트폰, 인터넷을 비롯하여 대중 매체의 발달로 사회가 다원화되고 그 변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공교육이라는 제도권 교육만으로는 인간교육의 연속성을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학교교육의 미비점을 사회교육이 보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한문 교육도 사회·평생 교육의 차원에서 인간다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교육적 모델을 상정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의 연속 교육은 국어교육과의 관계를 도외시할 수 없고, 이와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이 달라진다.

 

이에 주도면밀(周到綿密)한 연구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 셋째로, 한자·한문 교육은 스마트·디지컬 시대에 문화의 창조와 융성을 책임지는 문화교육의 일익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현대는 문화의 창조와 융성이 국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화를 융성시키고 그 혜택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한자·한문 교육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연구, 제시해야 한다.

 

선언적 언명과 회고적(回顧的) 이상만으로 한자·한문 교육의 위상을 강화, 확대하기는 어렵다.

과거 문화 융성의 주체가 현재에도 그대로 문화 발전의 중심적 위치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한자·한문 교육이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구체적 상황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즉, 이제부터는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전통문화의 창조적 변하 차원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동양 3국 가운데 동양적 가치관의 원형을 많이 보존한 민족이 바로 우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한자·한문 교육을 민족문화의 창조와 연관하여 교육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한자·한문 교육의 ‘거시적 변화’를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미시적 변화’가 시급하다.

 

첫째로, 한자·한문 교육 나름대로의 여타 교과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교수·학습 방법을 연구, 개발해야 한다.

학생의 학습의욕과 흥미를 자발적으로 유발하여 한자·한문의 학습효과를 어려움 없이 높여야 한다.

 

교육목표를 자연스럽게 달성하기 위해 교수·학습의 과정이 드러나고,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쉽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주는 것도 시급하다.

 

이제는 학습자의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창조적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한자·한문 교육과정의 교수·학습 모형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둘째로, 한자·한문 교육의 교육적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평가 방법과 도구의 개발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수많은 연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자·한문 교육의 평가는 면밀한 계획과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관행을 답습해 오지 않았나 하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

 

훈고주석(訓言古註釋)을 중심으로 많은 전고(典故)를 이해하는 암기 중심 위주의 평가나, 어려운 한문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학습자의 학습과정이나 수행을 중시하는 평가로 관심을 돌리고, 한자어, 한문 학습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평가 도구의 개발도 시급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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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교육이슈 비전 마련 새롭게 출발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68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경쟁력 없는 대학 혈세로 지원 못하게

대학 자율화, 초중등은 교육자치에 맡겨

모든 학생 지구촌 가족되게 역량 배양

-교육용 기초 한자 조정 15년 흘러왔어도 후유증-

김대중 정부 6번째 임명

43대 한완상 교육부장관

<2001. 1. 29~ 2002. 1. 29 재임>

 

 

국민의 정부 첫 교육부총리

 

국민의 정부를 이끈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월 28일 새천년의 첫 해를 맞이하면서 서울대 한완상 사회과 교수출신을 교육부총리 겸 장관으로 임명했다.

 

바로 다음 날(1월 29일) 제43대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한 한완상 교육부총리는 취임식에서 “교육사상 첫 부총리가 된 것에 감개무량하다”면서 “새천년의 교육비전과 이슈에 무게감을 느낄 만큼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중책에 알맞는 교육장관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경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차관은 경질없이 제43대 최희선(2000. 6. 1~2002. 3. 31) 차관을 유임시켜 보필하도록 했다.

 

이처럼 전·후임 장관이 서울대 교수 출신이면서 사범대학의 교수가 이어온 장관자리였기에 교육계 인맥은 평온하기 어려웠고 동요했다.

 

한완상 장관이 취임하기 무섭게 교육부 기자실은 저마다 ‘새천년 교육비전과 이슈’ 타진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이 때 김대중 대통령이 한완상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 임명하면서 당부한 사항이 있었다고 탐문되었다.

 

특히 당부했다는 주요 사항은 진원불명이면서 추론해 보기 어렵지 않았다.

 

첫 당부는 “지금 초등학생들부터 글로벌 시대의 지구촌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길러보도록 강조했다”고 들려왔다.

 

이를 전제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다루는 학생, 영어도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게 하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학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되 국민이 낸 혈세로 경쟁력이 없는 대학까지 무분별 지원하지 말 것이며 이에 국·공립대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할 수 있겠느냐?” 묻고 “할 수 있으면 임명할테니 자리에 앉고 할 수 없으면 장관 발탁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다그쳤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전언은 김 대통령이 취임 후 교육부장관을 98년 3월3일부터 2001년 1월28일까지 3년 동안 5명(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바꾸었고 한완상 장관이 여섯 번째일 만큼 잦은 경질로 이어진 것에 화제가 되었다.

 

특히 2000년 1월부터 8월까지 한 해 8개월 동안 4명이 경질되어 이·취임식을 치른 교육부직원들의 입을 통해 파다하게 퍼져 흘렀다.

 

교육부 사상 전무후무했던 잦은 경질은 기록적이었고 그 뒤 이와 같은 기록은 경신되지 않은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교육용 한자 조정 백서 사연

 

전임 이돈희 장관에 의해 마무리되었던 초·중·고교용 기초한자 조정은 그 후유증이 15년을 맞는 지금도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 반대운동을 보는 것으로 심각하고 올해도 지난 8월13일 청와대 문앞(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까지 한글문화연대와 전교조 등 53개 단체에서 참가한 시위대가 몰려가 “한글이 목숨”이라고 외쳐댔다.<사진 참고>

 

이처럼 세월을 거슬러 타고 되돌아보면 2001년 9월 21일 당시 한완상 부총리 겸 장관에 의해 ‘조정 백서 발간 기본 계획’(교과 81150-1082)이 수립되고 행정 절차를 밟았다.

 

조정 백서 발간의 방향은 ▲어문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 제시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좋게 시각적 체제로 편집·디자인 ▲조정의 취지와 당위성을 홍보하는 자료의 성격 가미 ▲조정된 한자의 자형과 배열을 합리적으로 모색 ▲자료의 활용 방법·구체적 안내 등으로 꾸며졌다.

 

또한 ▲한문교육에 내실을 기하기 위하여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문자 교육 정책수립에 참고 자료로 사용하며 ▲한자·한문 교육의 역사적 자료로 남도록 한다는 등의 활용 방법도 기본 계획에 스며들게 하면서 백서 발간에 대한 제반 업무를 협의·추진하고, 자료 내용에 충실을 기할 수 있도록 조정 업무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 중심으로 ‘발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때 ‘한자 조정 백서’발간위원회의 위원장은 이경환(교육부 교육과정 교과서담당 과장) 위원은 박삼서(간사), 이용부(연구관), 김왕규(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석제(반월정보산업교등학교) 교사에게 맡겼다.

 

이렇듯 백서발간위원회는 2001년 9월 26일 첫 회의를 개최하고, 이후 네번의 회의를 거쳐 조정 백서의 내용을 가다듬었다.

 

그해 10월 9일에는 ▲기초한자 변천 과정에 대한 기술 문제 ▲회의록(1~11차)의 내용 검토와 내용 편집 순서 및 방식 ▲여타 자료 수록 여부 ▲추가 보층 부분과 삽입 부분 ▲편집요원 활용 여부 등에 대하여 논의했다.

 

2001년 11월 6일 집필 과정에 있는 백서 내용을 조감하여 목차를 조정했고, 12월 5일 부록에 홍보 자료 전문, 언론 보도 내용, 시·도교육청의 여론 수렴을 종합하여 싣기로 했다.

 

여러 번의 논의 끝에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조정 배경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조정 경위 및 목적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조정 내용 ▲21세기 지식·정보 사회에서의 한자·한문 교육의 방향 ▲향후 과제 및 제언 ▲부록의 순서로 목차를 확정한 뒤 12월 12일부터 마무리 단계에 있는 원고 내용을 집중검토하고 조정 백서 ‘간행사(刊行辭)’에는 한자·한문 교육에 대한 앞으로의 방향, 백서 간행의 의의와 가치를 압축해서 담도록 했었다.

 

그 때 담은 간행사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민족의 융성(隆盛)과 웅비는 문화의 창달에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시대의 변화에 조화를 이루는 한자·한문 교육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새로운 교육적 도약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한자·한문 교육이 민족 정체성 교육과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학교 교육의 제한된 테두리에서 벗어나 사회교육으로 교육 역량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사회의 변화에 부합하는 교육 방법과 자료 개발에도 연구와 노력을 한층 더 기울여야 합니다.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 백서는 정책 수립의 자료는 물론 한자·한문 교육의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 자료가 한자·한문 교육에 내실을 기하고,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여 민족교육의 지남(指南)으로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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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23일 만에 바꾼 경륜무색 단명 장관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61회) -

서울대 교수 뒤이어 사립대 총장 기용

차관은 머리 무겁고 뒷수습에 바빠

취임후 나돈 3주면 경질설 적중 신통

-교육부 앞지른 서울시교위와 교육청 강팀 포진 압권-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게 한다. 〈편집자〉…○

 

김대중 정부 네번째 임명

41대 宋 자 교육부장관

<2000. 8. 7~ 2000. 8. 29 재임>

서울大서 延大로 權力이동

 

<전호에서 계속>

김대중 정부의 네 번째 교육 각료로 송 자 연세대 총장 출신이 임명되어 2000년 8월7일 취임하자 교육부 안팎에서 “유비통신 만큼 정확한 것이 없다”고 화제로 삼았다.

 

‘유비통신’이란 유언비어를 함축한 소문의 진원불명 상태를 뜻한 것으로 정부 인사 때마다 볼 수 있었고 누구도 예고의 적중력에 놀란다.

 

전임 문용린 장관이 한자교육 때문에 고심하면서 묘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개각이 단행되었고 교육부도 예외 없이 장관이 경질된 것으로 동요가 따르게 마련이었다.

 

특히 전임 문 장관이 서울대(사대) 교수 출신이었던 점에서 신임 송 장관은 사립 연세대 총장 출신인 것을 놓고 교육부 권력이 서울대에서 연세대학쪽으로 이동해간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또 송 장관은 연세대 총장 재임 시에 학교재정이 어려운 것에 발 벗고 나서 수습해서 운영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만큼 열정적인 것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장관으로 천거된 요인인 것처럼 후문이 나돌았다.

 

또한 장관이 바뀌면 가장 머리가 무겁고 아픈 쪽은 교육부차관이었다.

 

당시 김상권 차관은 떠나는 장관(문용린)의 이임식과 들어온 장관(송자)의 취임식을 치르는 일 못지않게 부내 인사 요인을 간파할 예지력이 긴요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8월은 어느 부처를 막론하고 다음 해의 예산안이 정부안으로 확정될 단계이고 1학기가 끝나 여름방학이면서 2학기 대비에 이어 9월 정기국회를 앞둔 때라 밤잠을 설치면서 대처할 시기였다.

 

이미 국회에 넘어가 심의 중인 법안을 비롯해 예산안 부수법안의 처리는 차관의 사전 대비여하에 성패가 좌우되는 것은 여의도 풍속이다.

 

이 와중에 신임 장관이 차관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차관인사가 뒤따르는 특성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고 떠나간 장관의 모습이 어쩌면 차관의 모습까지 예고한 결과가 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전임 장관 때 이미 교육부의 중진들이 대부분 서울시교육청으로 빠져나가 아쉬움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차관이 장관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역능(역할과 기능)은 쉽지 않았다.

 

갓 취임한 송 자 장관의 모습은 취임사가 의외로 간략했고 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난해하다”는 후문이 따른 터이라 “얼마 동안 지켜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격려한 주위의 조언에도 반응하기 어렵게 표정관리가 쉽지 않았다.

새 장관도 “오래 못 간다” 소문

 

그런데 “새 장관도 오래가기 어렵겠다”는 불길한 예언이 하필이면 서울시교육청에서 흘러 나왔고 진원은 시교위 위원들 쪽으로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다.

 

당시 서울시교위 위원과 의장단은 교육부출신이 대부분이었고 “관변 정보에 밝다”는 것이 정평이었다.

교위 의장은 김두선 초등 전문직 출신이었고 이순세 부의장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었다.

 

이밖에 교육위원 13명(김홍열, 신창현, 지용근, 민경현, 정용성, 유해돈, 장창식, 임헌만, 채정묵, 김한태, 공정택, 박명기, 서성옥)까지 교육부 출신을 비롯해 교육장, 교육청의 초·중등 과장 등 교육전문직 경력자와 전교조 출신이었다.

당시 전교조 출신과 교수 가운데 재야세력권의 구성원 대부분은 김대중 대통령의 수난기에 동지적 관계로 끈끈한 인연이었고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은 교위 의장 출신인데다 임동권 부교육감도 교육부 장학실장에서 임명되어 재임하고 있었다.

 

송영식 기획실장, 이상갑 교육정책국장, 김남일 교육행정국장까지 교육부 출신으로 얼핏 보면 교육부 한쪽이 서울시교육청에 옮겨간 듯 싶게 만만치 않았다. 때문인지 교육부의 돌아가는 사정이나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와 정치권의 여·야수뇌부까지 이들의 연줄은 안테나 역할로 손색이 없었고 가동되었다.

 

그러니 신임 송 장관을 놓고 “오래 못간다”는 ‘유언비어’에 주목하게 되면서 그 것도 ‘3주’라고 기간을 밝혀 장담한 대목은 임명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어 보듯 영험했고 송 장관은 예언처럼 8월29일 경질되어 취임 23일 만에 어이없이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41대 송 자 교육부장관의 발자취는 드러난 것이 없고 어떻게 왔다가 가게 되었는지 기억 조차 할 수 없게 허망했다.

 

취임식 때 밀려든 축하 난분과 화환이 시들기도 전에 이임식을 보게된 당시 교육부직원들의 짐작에도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만큼 짧은 기간 재임하다 퇴임했다.

 

 

延大가 낳은 長官 중 최단명

 

교육부장관 취임 23일 만에 떠난 송 자 장관은 역대 교육부장관 가운데 연세대 출신 7명 중 최단명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해방 초의 제2대 백낙준 문교부장관(1950.5.4~52.10.29)을 비롯해 제8대 오천석 장관(60.8.23~61.5.2) 등 80년대의 신군부 전두환 대통령 집권 때부터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정부까지 재임한 연세대 출신 교육각료는 이규호·윤형섭·박영식·안병영 장관까지 7명이며 안병영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재입각한 것으로 관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때 제25대 이규호 장관은 80년 5월22일 임명되어 83년 10월14일까지 3년이 넘게 장수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의 제31대 윤형섭 장관은 90년 12월27일부터 92년 1월22일까지 2년간 재임했다.

 

윤 장관 때 문교부에서 교육부로 개칭되어 김대중 정부의 이돈희(42대) 장관 때까지 지속되다 한완상 부총리 겸 장관 때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되었으며 이에 앞서 김영삼 정부의 연세대 총장 출신인 제35대 박영식 장관은 95년 5월16일부터 그 해 12월20일까지 7개월 이상 재임한 것으로 1년 미만이었다.

 

같은 정권의 김영삼 대통령이 임명한 제36대 안병영 장관은 95년 12월21일부터 97년 8월5일까지 1년 8개월 재임했다.

안 장관은 그 이후 노무현 정부 때도 제46대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되어 2003년 12월24일부터 2005년 1월4일까지 1년 1개월 이상 재임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때의 권오병(65. 8.27~66. 9.25 및 68. 5.24~69. 4.10)장관에 이어 두 번씩 한 재임한 것으로 기록을 세웠다.

 

이렇듯 장관 재임기간이 짧아도 몇 개월 또는 1년 이상 3년까지 장기간인데 반해 1개월도 안 되는 단명은 송 자 장관과 노무현 정부 때 단 3일(2005.1.5~7)이었던 이기준 장관을 꼽게 된다.

 

한 번도 어려운 것을 두 번씩 역임한 장관이 두 명(권오병·안병영)이었고 이 가운데 안병영 장관은 연대 교수 출신이었으며 3년 이상 장수를 누린 장관(이규호)도 연대 교수 출신이었다.

 

또 연대출신 교육부장관 가운데 고인이 된 경우는 백낙준, 오천석, 이규호, 박영식 장관이며 나머지 3명(윤형섭·안병영·송 자)은 생존했고 정정하다.

 

이들 생존한 장관들에 의해 재임 당시의 주요 교육정책과 그 뒤안길에 얽힌 비화를 듣는 것에서 의미가 새롭고 발자취를 더듬어 볼 기회가 되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

 

특히 안병영 전 장관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숲속에 산장을 짓고 ‘현광제’라고 이름을 붙여 부부가 함께 노후를 신선처럼 해로한 것은 훗날 전설이 될 법하다.

 

이처럼 오복을 타고 태어나서 누리는 것은 흔치않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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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漢字교육 조정 현안 찬·반 맞서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58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게 한다. 〈편집자〉…○

 

5~6학년부터 시작 중학교 상용화

초등800 중학700 고교600자 절충안

고교 선택과목 자수 제한 풀어 필수화

-중국 정부의 簡體字 대비 國民生活用 무제한 요구-

김대중 정부 세번째 임명

40대 문용린 교육부장관

<2000. 1. 14~ 2000. 8. 6 재임>

주제별 발표된 공청회 결과

①2000자 이상, 초등용 제정 등 확대하자는 의견

 

<전호에서 계속>

쪾일(壹), 이(貳) 한자는 제외되어서는 안 됨.(실업계 고등학교)

쪾한자 검정 시험의 활성화가 필요함.

쪾교육과정 조정 없는 한자 선정과 조정은 무의미함.

쪾초등 5~6학년부터 교육을 시작하고, 중학교는 한자교육 위주로 실시해야 함.

쪾초등 800자, 중학 700자, 고교 600자가 바람직함.

쪾한문을 선택과목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함.

쪾한문교육에서는 한자수를 제한할 필요가 없음.

 

② 당시 1,800자를 유지하자는 의견

쪾현재의 1,800자가 적절하다.

쪾한자, 한문 교육은 따로 전문화해야 (대학까지 특별과정을 둠)한다.

쪾한자, 한문 교육은 중·고교에서만 해야 한다.

쪾초등에서는 현재와 같이 재량활동, 특별활동, 자습시간에 지도하는 것이 좋다.

쪾현행 1,800자를 고수하며 첨삭·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③ 1,800자 이하 하향 조정 의견

쪾1,000자 정도 대폭하향 조정해야 한다.

쪾초등 400, 중학 600자, 고교 500자로 조정(모두 1,500자)하자.

쪾지금보다 훨씬 적은 수로 조정해야 한다.

쪾교육용 한자는 500~600자 내외가 좋다.

 

④‘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명칭 변경 요청

쪾‘교육용 한자’이거나 ‘교육용 기초 한자’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

 

⑤기타 의견

쪾한자의 간체자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것.

쪾북한은 남한에서 한자교육을 하니까 하는 것임.

쪾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교육 부담이 너무 많음.

쪾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고통, 시간 낭비, 실용성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게 됨.

쪾‘읽기용 한자’, ‘쓰기용 한자’로 구분했으면 한다.

쪾국어생활에 필요한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쪾한문교육의 내용과 질이 중요하지 글자 수 확대는 문제되지 않음.

쪾한문 교육용과 국어생활용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따로 정하는 것이 좋다.

쪾국민생활용 한자는 자수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쪾1,800자는 대학 한문 교양 한자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쪾학교급별, 학년별 선정에 기준이 없다.

쪾점수별 선정은 올바른 선정 기준이 될 수 없고, 학교급별, 학년별 배당 기준이 되지 못한다.

 

 

당시 조정위원회 구성 운영

 

교육부는 2000년 7월24일, 조정위원회 구성의 원칙, 위원 임무, 조정 목적, 조정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포함한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을 위한 조정위원회 구성·운영(교과 81150-521)에 대한 행정적 절차를 마쳤다.

 

조정위원회는 동북아 문화권의 성립과 지식·정보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사로 구성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① 한자·한문교육과 관련한 교수, 연구원 및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사를 참여시키고 ② 사회 모든 분야계층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우선 선정하며 ③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한자·한문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타진할 수 있는 인사로 구성하고 ④ 한자 조정관련 문화관광부(국립국어연구원) 연구원도 위촉한다는 세부 원칙을 정했다.

 

또한 기초 한자 조정을 실질적으로 완성하고, 조정 공표문 및 지도상의 유의점을 작성하며, 공표 후 한자 조정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다하는 조정위원의 임무도 명시했다.

 

아울러 한자·한문교육에 대한 이론가 보다는 실무에 밝은 인사를 중심으로, 교육계 관련 전문가를 우선 선정하였다.

대학의 한문교육 관련 학과 교수, 한자교육 관련 기관 및 연구소의 연구원, 중·고등학교 교원, 교육부 어문교육 정책 담당관 등으로, 각계의 의견을 고루 수렴할 수 있도록 연구와 실무의 균형을 고려해서 위촉하였다.

 

후보자 20명 중에서 선정된 7명의 조정위원회의 위원은 다음과 같다.

▲김상흥:단국대학교 교수 한문학 전공 한국한문교육학회장

▲진재교:성균과대학교 교수 한문교육 전공

▲이준석 : 국립국어연구원 연구사 한문학 전공 문화관광부 조정 실무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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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되기 전 초중고 漢文敎育 위해 손써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55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도움받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

 

한문학회 연구안 바탕 공청회에 넘겨

관련단체 일선교원 적극 협조 요청

한자 조정의 과정에서 빈틈없이 챙겨

-각계 의견 수렴 후 미래지향 기초한자 합리적 결정-

김대중 정부 세번째 임명

40대 문용린 교육부장관

<2000. 1. 14~ 2000. 8. 6 재임>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조정

 

문용린 장관이 경질(2000.8.6)되기 직전 서두른 업적으로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조정을 꼽게 된다.

 

다음은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가 펴낸 ‘편수의 뒤안길’ 제13집 2015년판 29페이지에 실은 박삼서 회장의 기고내용이다.

 

‘2000년 5월13일 문용린 장관은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의 조정관련 공청회(교과81150-353) 개최에 대한 행정절차를 완료하고 다음 날(14일) 발표자와 토론자를 위촉했으며 6월14일 ‘한국한문학회’연구안을 바탕으로 조정에 관련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특히 이날 공청회는 한자 조정의 중요한 과정임을 감안하고 기본계획에서부터 결과처리까지 미리 준비해야할 사안마다 일정(시작 및 완료일자)과 담당관(김만곤·이병호:총지휘, 박삼서:총괄, 윤기숙·이재환·노희방·최성식·이우용·김승익·박은영·박종은·이화성·임승현·서현미)을 정해 개별 임무를 더욱 세분화 하고 행사에 착오가 없도록 했었다.

 

며칠이 지난 5월25일엔 공청회 참가 협조 공문을 일정표와 함께 각급기관과 단체, 학교에 발송했다.

 

이 때 일반 기관·단체는 문화관광부, 시·도교육청, 국립국어연구원, 한글학회(허웅), 세종대왕기념사업회(박종국), 외솔회(김석득), 한글재단(한갑수, 박우철), 국어순화추진회(주영하), 국어정보학회(서정수, 진용옥), 대한음성학회(이현복),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진태하), 한국어문교육연구회(이응백), 한국한문교육학회(김상홍), 전통문학연구회(이계황)였다.

 

또 대학교 한문교육과·한문학과는 성신여자대학교, 단국대학교, 전주대학교, 원광대학교, 부산대학교, 경성대학교, 동아대학교, 동국대학교, 경북대학교, 경산대학교,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고려대학교, 안동대학교, 경상대학교, 충남대학교, 공주대학교, 청주대학교, 강원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이었다.

 

2000년 6월12일 교육부 실·국장 회의에서 공청회 개최 계획을 최종 점검하고, 공청회 행사 자료집도 인쇄 의뢰했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기반으로 교육용 한자 수 및 학교급별 구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서 한자· 한문교육에 내실을 기하여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합한 패러다임을 구축한다는 공청회 관련 ‘보도자료’까지 냈다.

 

그리고 한국한문교육학회 연구 시안을 바탕으로 각계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수렴하여 기초 한자를 미래 지향적,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공청회 개최 기본 원칙’도 수립했다.

 

이 원칙의 기본 골격은 첫째, 교육용 한자 수를 탄력적으로 모색하기 위하여 기초 한자 1,800자 유지를 근간으로 한자의 범위를 유연하게 결정하고, 세계화 시대를 대비하여 외국의 한자교육 현황을 참고한다.

 

둘째, 한자교육의 학교급별 위계를 합리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한글전용의 기본 틀 유지 내에서 초등학교 교육용 한자를 고려하고, 지적 발달을 감안해서 학교급별 한자 수를 구분 제시한다.

 

셋째, 한자·한문교육의 효율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학교급별로 차별화된 교육 방법을 탐색하고 교육용 한자의 국가적 활용 방안을 제시한다.

 

넷째, 한자·한문교육의 체계적인 질 관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한자 학습 유효도 평가 도입 방법을 구안하고, 한자·한문교육의 효과적인 평가·관리를 강화한다.

 

이와 같이 학습부담에 민감한 여론을 감안하여 1,800자를 유지하되, ‘한글전용’이라는 민족 이상 실현의 계속성을 염두에 두면서 초등학교 교육용 한자를 고려할 필요성을 열어 둔 것은, 당시로서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보려는 미래 지향적 발상이었다.

 

여기에 ① 여론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각계각층의 인사를 포함 시키고, ② 어문정책 관련 부서 인사와 함께 한글전용 측과 국한문병용(혼용) 측 인사를 반드시 참여시키되, ③ 중·고등학교 현장 교사를 다수 포함시켜, 교육 현장의 실질적인 여론 청취를 강화한다는 ‘발표·토론자 선정 원칙’도 마련했다.

 

이는 공청회 여론 수렴의 객관성과 실제성을 높여서 기초 한자 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공청회는 2000년 6월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었던 교원징계재심위원회 대강당에서 관련단체, 학회, 교육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했다.

 

당시 발표 주제와 토론 내용,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는 다음과 같다.

 

▲ 1부 <발제 발표> :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의 기본 방향

사회자 : 최미숙(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발표자 : 김상흥(단국대 교수 , 한국한문교육학회장)

 

▲ 2부 <제1 주제> : 교육용 한자 수의 검토

사회자:김왕규(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발표자 : 박영호(경북대 교수) - 한문 교육용 한자 수의 검토

토론자 : ① 김지영(경향신문 논설위원) -박영호 교수의 교육용 기초 한자 수의 검토를 중심으로 ② 이형재(동마중 교장) -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글자 수는 많을수록 좋은가? ③ 이준석(국립국어연구원 연구사)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문화관광부 재조정 안에 대한 한자 빈도 조사를 통한 자수와 자종의 객관성을 중심으로 ④ 송재욱(여의도고 교사) - 한자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 2부 <제2 주제> : 교육용 한자의 학교급별 구분

발표자 : 진재교(성균관대 교수) - 교육용 한자의 학교급별 구분

토론자 : ① 박붕배(서울교대 교수) - 교육용 한자의 학교급별 구분(한문교육의 학교급별 타당성 문제와 기초 한자 학교급별 문제) ② 남기탁(강원대 교수)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학교급별 구분에 대하여’를 읽고 ③ 이춘성(경북고 교사) -교육용 한자의 학교급별 구분에 대하여 ④ 고성욱(서울교대 부설 초등학교 교사) - 초등학교 교육용 한자의 지정에 대하여

 

▲ 종합 토론

사회자 : 이인제(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발제 발표>인 김상홍(한국한문교육학회장·단국대) 교수는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 조정의 기본 방향으로 기초 한자를 학교급별로 연계성과 위계성을 가지고, 21세기 새로운 문화 창조와 한문 문화권의 이해 등 교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제1 주제>인 ‘교육용 한자 수의 검토’에 대하여 박영호(경북대) 교수는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용어 대신 ‘교육용 기초 한자’ 용어를 사용하고, 평생교육 차원에서 글자 수를 조정하자고 했다.

한자·한문 교육이 공교육 기관에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2,000자를 제정하여, 1800자는 초·중·고교에서, 나머지는 대학에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온 김지영(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한글과 한문교육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고, 남북의 동질성 회복을 위하여 공교육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형재(서울 동마중) 교장은 사회변화에 따라 한자의 수는 학습부담을 고려하여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준석(국립국어연구원) 연구사는 문화관광부의 안은 한자 빈도 조사를 통한 자수와 자종의 객관성을 가지고 선정한 것임을 강조하였고, 송재욱(서울 여의도고) 교사는 어문정책이 ‘한글전용’이라며 한글만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제2 주제>인 ‘교육용 한자의 학교급별 구분’에 대하여 발표자 진재교(성균관대) 교수는 학교급별 구분에서 초등의 경우 더욱 구체적인 제안(한자교육의 시작 학년, 교육 방법 등)이 필요하고,…<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바람타고 왔다 구름처럼 떠나가듯 무상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53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도움받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

 

해왔던 대로 차질없이 잘해보려 애써

현직 황 장관 국회 교육위 야당의원

교육과정정책심의관 신설 편수 보완

-장관 바뀌면 동반입각 차관도 함께 경질 권력 속성-

김대중 정부 두번째 임명

39대 김덕중 교육부장관

<1999. 5. 24~ 2000. 1. 13 재임>

 

대우그룹 아주대 총장 기용

 

1999년 5월 ‘스승의 날’과 연이은 교육주간을 맞으면서 초·중등교육계의 분위기는 얼어붙은 듯이 냉기류였다. 교원들에게 지나치게 청렴을 강조했고 여교사가 학부모들로부터 스승의 날 받은 선물 중 루즈의 숫자까지 밝히면서 사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경직되었다.

 

때문인지 정치권은 집권당에서 조차 “이런 분위기로 교원들의 민심이 돌아오겠느냐”면서 걱정했다.

 

드디어 개각설이 나돌고 5월 마지막 주 초가 되자 교육부 장·차관의 경질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 때 개각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해찬 교육부장관을 경질(5월23일)하고 후임에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 맏형인 김덕중 아주대총장을 임명, 5월24일 취임했다.

 

김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특별히 강조한 것이 없었고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상견례 수준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교육부 간부회의에서 “지금까지 전임 장관님들이 잘 해 오셨고 여러분도 보필 잘하고 충실하게 보좌했기 때문에 지속 가능했다”면서 “해왔던 대로 차질없이 잘 해보자”고 당부했다.

 

취임한 바로 다음날(5월25일) 차관인사가 이어지면서 조선제 차관도 경질되어 청와대 교육수석(조규향) 실의 이원우 교육문화비서관이 후임으로 임명되어 5월26일 취임했다.

 

이와 같이 김덕중·이원우 체제의 교육부는 6월 상반기를 정리하고 후반을 열어갈 준비로 바빠졌다.

 

이는 부내 인사를 의미한 것으로 장관실부터 이원근 비서관이 유선규(현 충청대총장)로, 차관실 비서관은 박표진에서 송지관으로, 감사관은 이기호에서 구관서로, 총무과장은 장기원에서 강병운으로 바뀌었다.

 

또 교육부의 재외동포교육 전담 국제교육협력관은 이종서에서 고용으로, 기획관리실장은 김성동 실장을 유임시켰다.

 

그러나 휘하의 기획예산담당관은 이영찬에서 황인철로, 행정관리담당관은 유상번에서 김용호로, 법무당당관은 신양승에서 김철로 바꿨다.

 

학교정책실장은 박찬구에서 임동권으로, 교육과정정책심의관을 신설해서 이수일 장학관을 임명하고 바로 밑에 교육과정정책과를 두어 이경환 장학관을 앉혔다.

 

이처럼 김덕중 장관의 취임으로 학교정책실의 교육과정·교과서 편수 기능과 역할이 보강되고 교육과정정책심의관 밑에 교육과정정책과와 교육평가팀(팀장 김진규) 교과서발행과(과장 이현묵) 학교정책과(과장 고원영) 유아·특수교육과(과장 이석무)를 둔 것으로 활성화 됐다.

 

교원행정도 보완해서 교원정책과(과장 정연한) 교원양성연수과(과장 한병천) 교원복지담당관(서명범) 업무를 강화했다.

 

평생교육국장은 김용현에서 차현직으로, 그 밑에 평생학습정책과장은 김국현에서 이지헌으로, 산업교육정책과장은 정기호에서 백종면으로, 전문대학지원과장은 이현묵에서 노승회로, 학술연구지원국을 고등교육지원국으로 바꿔 국장을 정상환에서 김용현으로, 대학제도과장을 대학원지원과로 바꾸면서 김화진 과장을 유임시켜 그 밑에 두었다.

 

교육환경개선국은 교육자치지원국으로 바꿔 이기우 국장을 유임 시키고 지방교육재정과장은 정영선에서 변창율로, 지방교육자치과장은 우형식으로, 학교시설환경과장은 김기남을 앉혔다.

 

 

3당 포진 국회교육위 영향

 

당시 국회교육위원회(현행 교문위)는 전임 이해찬 장관 때와 달리 김덕중 장관에게는 넘볼 수 없는 벽이었고 배려를 바라기 어렵게 야당이 된 한나라당에서 위원장(함종한·강원도 원주 갑)을 차지했다.

 

이처럼 ‘여의도 큰 집’이라고 부를 만큼 국회의 영향력은 교육부장관에게 어려운 상대였다.

 

정당별 포진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위원장 외에 6명으로 간사 이원복(인천 남동을)의원, 박승국(대구 북갑)의원, 오양순(전국구)의원, 안상수(인천 계양·강화갑)의원, 이재오(서울 은평을)의원, 황우여(전국구·현 교육부장관)의원이 자리를 지켰다.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6명은 간사 박범진(서울 양천갑)의원, 김봉호(전남 해남·진도)의원, 노무현(서울 종로·후에 대통령)의원, 신영균(전국구)의원, 설훈(서울 도봉을·현 교문위원장)의원, 이영일(광주 동)의원이었다. 여당과 연정체제였던 자유민주연합(총재 김종필)은 3명으로 간사 김일주(경기 안양·만안)의원, 김허남(전국구)의원, 김현욱(충남 당진)의원이 재임했다.

 

 

개편된 교육부의 초기 정무

 

김덕중 장관이 취임한 첫날(99·5.24) 교육부 직제가 일부 개정(대통령 제163435호)되어 교육과정정책심의관이 신설된 것은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교육과정정책분야와 교과서 편찬 및 발행기능을 보강한 것으로 과 단위 역할까지 보완했다.

 

특히 교육과정정책과는 과장(이경환) 밑에 장학관 4명(이동길·정국진·홍진기·박수용)과 교육연구관 8명(이순영·오영석·김정자·윤준영·한창만·고광붕·최성규·유연수) 교육연구사 13명(박정자·조상제·이정규·주수동·김만곤·박삼서·노희방·장영기·박제윤·이승균·박은영·김송미·이우용)을 배치했다.

 

교과서발행과(과장 이현묵)는 교육행정사무관 2명(서광협·강대양)과 교육연구관(정광삼) 연구사 2명(노시백·윤경식)을 배정했다.

 

그러나 2001년 1월29일 김덕중 장관의 후임인 문용린 장관 때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교육부도 변경되면서 교육과정정책심의관을 폐지해 사라졌다.

 

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에 앞서(99.5.24) 재외동포용교과서 업무를 교육부에서 이관 받았다.

 

1999년 7월8일 김덕중 장관은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조정과 미래 한문교육의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조정자문협의회’를 구성하고 2주일이 지난 7월22일 조정 방법 및 절차를 확정했다.

 

김 장관은 이에 근거한 기초연구를 1999년 8월29일 ‘한문교육학회’에 의뢰하고 12월30일까지 마련해 주도록 했다. 이때 연구결과는 김 장관이 떠난 2000년 6월14일 공청회를 열고 여론을 수렴했다.

 

 

7개월 19일 재임 단명장관

 

김덕중 장관은 1999년 5월24일 임명, 취임하여 이듬해인 2000년 1월13일 경질되면서 7개월 19일 재임한 단명이었고 동반 입각한 이원우 차관도 99년 5월26일 임명되어 2000년 1월26일 떠났다. 바람타고 왔다 구름처럼 떠나간 것으로 권력은 무상했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