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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수국

교과서 검정 합격 종수 제한 폐지 문민화 교과서 검정 합격 종수 제한 폐지 문민화 - 교육부 49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32회) - ○… 본고는 지난 5월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9년 째가 된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교과서의 주된 교재와 보완 교재 정비 초등학교 영어도 검정 대상에 포함 보완 교과서 내용 시의적절 개편하기 쉽게 -교사 재량 시사교육 계기수업 족쇄 풀어 자율케- 김영삼 정부 두번째 임명 34대 김숙희 교육부장관 조선의 여인상 장관 어머니 특히 이날 필자의 김 장관.. 더보기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④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④ 교과서 전면 위탁 개방화 편수는 과만 남겨 유명무실 교육과정 수시개정 전환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초·중·고교의 모든 교과서는 편찬·발행·제작·공급에 이르기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게 위탁하면서 정부의 (주)국정교과서 발행사(당시 김정길 사장)도 민영화했다. 이 밖에도 1999년 5월4일 국정교과서의 편찬·위탁기관을 더 늘려 교육과정평가원 외에 8개 기관에 위탁했다. 이 때 넘겨준 국정교과서는 초등학교용 10교과 74책, 중학교용 5교과 29책, 고등학교용 6교과 117책이었다. 당시 이해찬 장관이었다. 김대중 정부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노무현 참여정부는 2007년 8월1일 교육인적자원부 조직개편과 함께 부령(제909호)을 개정하고 편수 조직을 손질해.. 더보기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③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③ 계엄하의 국보위 때 복원 김대중 정부 편찬 위탁 전환 문민에서 폐지 검정 완화 1980년 2월27일 전두환 국보위위원장의 신군부 정권이 태동하면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승계했을 때 문교부 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9788호)하고 편수국을 복원했다. 당시 장관은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출신이었고 그해 5월21일 대학가의 시위를 막는데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계엄사의 눈밖에 나면서 경질되어 떠났다. 후임 이규호 장관은 1981년 11월2일 문교부 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10535호)하여 편수국을 장학실에 흡수해서 폐지하고 실장 밑에 편수총괄관·교육과정담당관·인문·사회·자연과학편수관을 두었다. 이때 ‘장학·편수실’ 명칭을 당시 정태수 차관은 ‘편수·장학실’.. 더보기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②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② 건국 이듬해 첫 편수국 설치 사무관대우 편수시보 등 증원 유신 때 폐지 교과서 국정화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1948년 8월15일까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정부수립 전 미군정 때는 3년간 교과서의 국·검·인정제를 도입했을 뿐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 기간을 교과서의 ‘자유발행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49년 5월9일 문교부 기구가 개편 정비(대통령령 제95호)되면서 편수국에 편수과와 발행과를 두었다. 이 때 교과서는 수시검정 체제였다.(당시 안호상 장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나 전시체제가 되었으며 1954년 4월20일 ‘교과중심 교육과정’을 도입, 시행했다. 그 이듬해인 1955년 2월9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