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전임 교육장관 중 유일하게 쓴소리 반기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7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역대 장관들의 실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사료가 되고 있다. 〈편집자〉○

 

공대 교수출신 첫 교과부장관 청사진

문재인 정부 첫 대입시개편안 거부 비토

재임 5개월에 경질된 것으로 빈말 돼

 

- 대학 특성맞는 “다양한 전형방법 개발 시급” 호소 -

 

이명박 MB정부의 처음

51대 김도연 교과부장관

 

<2008. 2. 29~ 2008. 8. 5 재임>

 

작심하고 밝힌 취임사 핵심

<전호에서 계속>


이처럼 김도연 장관은 취임사에서 “밝은 미래를 위하여 우리 사회는 좀 더 많은 측면에서 개방되어야 하고 개방은 밝고 폐쇄는 어둡다는 뜻으로 개방이 다양성을 가져온 데 반해 폐쇄는 획일성을 초래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교육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창의성은 우리사회를 더욱 생동감 있게 움직일 것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을 연결 짓는 대학입시는 새(MB)정부가 이미 공약한대로 획일적인 입시 제도를 벗어나는 일에 진력할 것이며 각 대학들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전형 방법의 개발에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제도의 변경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초·중등교육의 지방이양은 학생들이 한층 더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면서 창의력이 길러지는 교육이 되어야 하므로 시급하고 이를 위해 초·중등교육에 관한 중앙정부의 여러 권한도 이양하여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다양한 인재가 육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학교현장의 자율성과 창의성 구현은 “모든 선생님 한분 한분의 역량과 헌신으로 가능하며 그 역량과 소명의식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동시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연구개발지원을 더욱 확대하면서 투자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기획·조정체계를 새롭게 정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과학 기술인들이 마음껏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전적인 분위기를 조성할테니 연구자 여러분들도 이제는 더욱 개방적인 자세로 세계와의 경쟁에 나서 주도록 부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학기술연구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좀 더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젠 학교교육에 기대가 크다”고 고무, 격려했다.

 


장관 떠난 후 10년 만의 반격


김도연 전 장관은 10년 전인 2008년 8월5일 교육부에서 떠난 후 대학에 돌아가 울산대 총장을 거쳐 포스텍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발전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면서 침묵했고 교육부 정책에도 전임 장관의 도리에서 협력하고 어렵지 않도록 거들었다.


그러나 2018년 8월에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정시 선발인원을 30% 이상 늘리도록 하는 개편 방안은 “따를 수 없다”고 반격했다.


이는 교육부장관 자리에서 떠난 후 10년 동안 대학 총장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힘들었던 것 같다.


교과부장관 후 대학에 되돌아간 첫 울산대총장과 2015년부터 포스텍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것이 대학입시의 보완, 개선이었다.


이런 와중에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앞둔 시기의 대입시 개편방안에서 핵심은 수시억제였고 정시 선발 인원을 그만큼 늘리도록 하려는 것에 참을 수 없어 폭발한 듯싶다.


지난 8월19일 언론(조선일보 8월20일자 보도) 인터뷰에서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30% 수치를 주고 그만큼 정시를 늘리라고 하는 정부 방침에 동의(따를 수)할 수 없다”면서 반기를 든 것이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정시 비중이 크게 저조한 서울대(20.4%) 고려대(16.2%) 경희대(23%) 이화여대(20.6%) 포스텍(0%)의 사례를 들어 2019학년도 입시에서 큰 폭으로 확대될 것에 기대했다.


김도연 총장은 “대학 입장에선 거부하면 매년 8~9억원 받던 재정지원이 끊길 경우, 타격이 크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따르느니 지원을 못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면서 더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단호했다.

 


포스텍 신입생 2단계 선발


김도연 전 장관의 대학입시 개편방안에 대한 수시 축소, 정시 확대 비토가 있은 뒤 교육계 안팎의 반응은 “교육자다운 소신”이라고 반응하면서 “정시 0%의 포스텍은 신입생을 어떻게 뽑느냐?”고 문의가 쇄도했다.


이에 포스텍은 주저 없이 신입생 선발과정을 전면 공개했다.


포스텍은 정시 모집이 없고 신입생 330명 모두 옛 입학사정관제도인 학생부종합전형의 수시로 뽑는다.

이는 지난 2010년 처음 실시했고 1~2단계로 나눠 1단계는 학생부·자기소개서·추천서를 평가해서 3배수 뽑았다.


2단계는 면접으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 즉 1단계는 100% 서류평가다. 제출한 서류는 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이며 평가 기준은 내신 성적(국·영·수·과학 중심)과 잠재력·학업능력을 종합적으로 심사했다. 면접 대상은 3배수 선정한다.


이 밖에도 수능점수의 등급은 모든 단계에서 적용하지 않을 뿐더러 최저학력 기준도 없다.


2단계인 면접은 100%이며 개인면접(출신지역 고교블라인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인성·자질·태도·사고력 등 종합적으로 묻고 평가한다.


이것이 2019학년도 포스텍의 입시요강이며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해 입학사정관 10명이 1년 내내 전국의 고

교를 돌아다니며 우수한 학생을 찾는다.


대학 입장에선 돈과 시간, 노력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일이지만 우수한 신입생을 뽑기위해 정성을 다해 제도를 보완, 시행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쌓은 것에 자부하고 있다.

 


정부 대입시 개편 권고 맞서


김도연 전 장관은 포스텍총장 입장에서 정부의 대입시 개편안에 쓴소리로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언론인터뷰 때도 이번 대입시 개편안에 대한 논란에 “정부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반성할 일”이라며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중 운 좋게 몇 개 더 맞으면 대박 나고 운이 나빠 몇 개 더 틀려 쪽박이 나는 제도가 정말 공정한 것이냐?” 묻고 있다.


또 “학생부 기재 동아리·수상·개수를 제한하고 자기소개서 분량을 줄이는 등 추천서를 폐지하면 ‘깜깜이 전형’이란 오명이 없어지는 것인지 제대로 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이어서 “정부가 정시모집 비중과 자소서 분량 간소화 등에 매달리면 사교육은 이에 맞춰 모습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전 장관의 이와 같은 예언은 2020년 전에 드러날 것으로 두고 볼 일이다.


본래 교육정책은 교육과정의 개편 시수에 따라 유치원부터 초·중둥·대학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이었고 차기 교육과정의 시행은 이를 주도하게 마련이다.


다음 교육과정 개편은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예측 불가능 미래 어떻게 가르치나 걱정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6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사료가 되고 있다. 〈편집자〉○

 

이명박 MB정부의 처음

51대 김도연 교과부장관

 

<2008. 2. 29~ 2008. 8. 5 재임>

 

손으로 경험 과학교육 심화

 

<전호에서 계속>

김도연 전 장관이 교육부에서 떠난 뒤에도 4차산업혁명 시대가 열린 것에 고민이 따른 것은 전세계의 교육계가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할 것인지 공통의 책무이며 이공계 교육을 중심에 세우는 것은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이 지배할 미래에는 이공계 인재가 사회 변화를 이끌 주역이 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이공계열 학생들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며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걱정이고 인공지능(AI)시대에 주입식 교육에 매달리는 것보다 문제발견력과 융합사고력, 협업력 등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현장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과 대학은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인큐베이터”라며 “이공계 중심 대학이 연구를 활용해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를 창출하는 기술력은 국력이며 미국의 스탠퍼드, MIT 등은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활발한 산학협력과 기술 기반 창업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고 20여 년간 기업과 정신을 가르친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경우, 학생들이 1,600여개 기업을 세우거나 운영하면서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이공계 중심 대학들도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가치에 진력할 때라고 당부했다.


이는 대학의 문제만 아니어서 우리나라 초·중·고교육과 대학입시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공계 대학의 교육이 바뀌려면 초·중·고교 교육부터 달라져야 하고 객관식 문제로 학습 내용을 평가하게 되면 교육과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대가 요청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훨씬 섬세하고 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주관식 서술형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하며 손으로 경험하는 과학교육이 심화되어야 한다고 예거했다.


지금처럼 주입식으로 이론을 배우다가 그 중 한두 가지만 실험해 보는 식의 교육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없으며 학생 스스로 생활에서 문제를 찾아 실험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식의 체험 중심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초·중·고교에서 수학과 물리, 화학, 생물 등 이공계 기초 교과목 실력과 글쓰기 등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최근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능 때 수학 가형 출제 범위에서 ‘기하'를 제외한 것은 강한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며 ‘기하’는 공간지각력과 창의력 개발에 꼭 필요한 기초학문으로 3D 프린팅이나 AI, 자율주행차, 로봇문션 인식 등 다양한 신기술에 응용되고 있어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만 익히는 현행 교육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기초를 전혀 배우지 않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또한 이에 대한 재논의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되돌아 본 교과부의 재조명


MB정부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로 개칭하고 새로운 조직과 기구를 갖춰 출범했다.


이에 첫 장관으로 2008년 2월29일 제51대 김도연(56)장관을 임명, 취임했으며 이 때 교과부 정원은 8백12명으로 3백92명 감축하고 4실5국13담당관 5개 추진단 72과 10개 팀으로 개편했다(대통령령 제20740호)

이에 따라 장관은 서울공대 교수 중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했고 차관은 복수로 제1차관(교육담당)에 우형식(53) 전 교육부 대학지원국장과 제2차관(과학담당)에 박종구(50) 전 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기용해 장차관 모두 50대였다.


이 때 우형식 제1차관은 대전고교와 서울사대 사회교육과를 나온 뒤 행시24회 합격으로 교육계에 투신, 인천·충남부교육감과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장을 역임했다.


박종구 제2차관은 서울충암고교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시러큐스대 경제학 석·박사학위 취득 후 아주대 경제학 교수를 거쳐 재경부의 기획예산공공관리단장을 역임했었다.


이와 같이 MB정부의 교과부 기능과 역할은 교육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국제협력, 대학의 정보 분석 등 전문대학 육성 및 교과서 선진화에 목표를 두고 소속기관의 하부 조직을 정비하면서 인력과 기능을 조정했다.

특히 초중등교육과정 운영과 교원정책의 혁신 등 학력증진 방안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밝혔다.


또 2008년 2월 말에 고등학교 과정의 각종학교인 고등기술학교 교육과정을 개정해서 당시 제7차 과정을 개선 보완한 수준으로 2009학년도부터 적용했다.


이 때 전공은 전문대학 또는 표준과정을 준용하고 보통 전문교과별 필수와 선택과목으로 학교실정 등 학생 특성에 알맞게 운영토록 했다.


특히 단위(학점)배당 기준에서 보통교과 1년제는 8단위 이상, 전공2년은 12학점 이상이었다.

전문교과의 1년제는 22단위 이상, 전공2년제는 24학점 이상으로 총 이수단위(학점)를 1년제 66단위 이상, 2년제 80학점 이상이었다.


단 1년제 과정에서 1단위는 매주 50분 수업을 기준으로 하여 1학기 17주 기준 동안 이수하는 수업량이었고 전공과정에서 1학점은 50분 수업(실험·실습은 100분)을 1단위로 하여 2~4주 이상 지속되는 15단위의 학습과정이었다.

 


저소득층 전문대생 장학금


김도연 장관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전국 148개 전문대학의 저소득층 학생 5,000명에게 학교별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근로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국가근로장학제도(Work-Studt Program)를 도입했다.


이때 교내시설 근로시급은 5,000원 지급하고 교외 전공산업체 시급은 7,000원 기준으로 시행하되 국가로부터 등록금 전액을 무상으로 지원받은 경우는 제외했다.


근로시간은 당해 대학의 교육과정 운영과 연계하여 주20시간 이내로 결정하고 야간교육과정의 학생 및 방학기간 중의 근로는 주40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


지원금액은 교내시설 근로의 경우 5,000원으로 국고 4,000원, 대학의 대응투자 1,000원이었으며 교외시설 및 전공산업체는 창업교육센터 등 교내 입주업체와 학교기업을 포함해서 시급 7,000원으로 국고 5,600원, 대학의 대응투자 1,400원이었다.


이는 당시 노동부의 최저임금 고시액(시급 3,770원)보다 많았고 월 단위로 산정해서 시간급 임금과 실제 근로시간을 곱한 금액으로 매월 지원금을 정했다.

 


교과부 첫 장관 취임사 핵심


2008년 2월29일 김도연 장관의 취임사 가운데 핵심사항은 “개방은 밝고 다양화에 반해 폐쇄는 획일성을 초래하므로 지양하고 초중등교육 권한은 대폭 지방에 이양할 것이며 과학기술인들이 연구에 전념토록 하겠다"는 것으로 획기적이었다.


또 “이는 단위학교의 교육력 강화를 뜻한 것이며 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으나 장관 취임 후 5개월 6일 재임한 것으로 이루기 어려웠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낙엽도 가을에 지면 단풍대접을 받는다”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4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사료가 되고 있다. 〈편집자〉○

 

남북화해 일몰로 민주화 개혁 눈보라

통일교육 새 과제 현직 교육장관 몫

4·27회담 선언에 새로운 기운 뻗쳐

 

- 성하의 잎철에 보게될 남북한 국화도 새 모습 개화 -

 

노무현 참여정부 마지막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남북 화해 잔영 오래 기억

 

<전호에서 계속>

 

김신일 장관의 말년이 된 2008년 2월은 노무현 정부의 임기여서 저문 해 노을처럼 사라져갈 일몰이 닥쳤다.

이미 전년도의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MB정부의 출범이 임박했고 대북정책의 새로운 장이 준비되었다.


이때 남북관계의 상황과 흐름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퍼주기 지탄’으로 성토되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평화를 염원한 통일교육의 잔영도 빛이 바랜 시기였다.


정치권은 박근혜 새누리당 총재가 이끈 염창동 천막당사의 기세로 당차게 대선을 치렀고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노무현 정권의 진보와 대북화해 무드가 새로운 보수 정권의 기세에 눌리는 것으로 역전된 것이다.


박근혜 총재도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위원장과 독대하고 뒷날 휴전선으로 내려와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돌아왔던 전력에 관계없이 진보진영에 서릿발처럼 위협적이었다.


이에 앞서 북한에 들어갔다 돌아온 사람들은 문익환 목사를 비롯해 청년 학생 대표인 임수경 대학생의 평양통일행사 참석과 황석영 작가의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등 줄을 잇고 계속되었다.


이처럼 세상은 정권교체가 보인 위력으로 남북이 얼어붙은 동토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친화력에 의지한 민주 개혁 세력도 매서운 눈보라를 피하기 어려웠다.


이와 같이 2008년 2월부터 2017년 중반까지 10년 가까운 세월로 남북이 얼어붙었다가 2018년 4월 27일 두 정상이 만나 화해가 된 것은 꺼진 불씨를 되살린 역사의 순환이다.


때문에 2008년 2얼 5일 퇴임한 김신일 전 교육부장관의 발자취는 “낙엽도 가을에 지면 단풍대접을 받는다”고 전한 옛 사람들의 말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4·27 정상회담 합의 조명


지난 4월 27알 판문점에서 보게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언장의 남북 두 정상회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3천여 명의 외신 기자가 몰려와 실황을 보도한 것으로 획기적이었다.


이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봄은 새로운 기운으로 뻗치면서 북미회담 결과에서 매듭짓는 것을 예고했다.


또한 제50대 김신일 교육장관의 통일교육이 움트다 말았던 10년의 세월을 되짚어 현직 제57대 김상곤 교육장관의 정책에 접목될 차례가 된 것이다.


동시에 4·27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이 이행되는데 김대중 정부의 교육장관 7명과 노무현 정부의 6명을 포함한 총 13명 전임 교육장관이 남긴 발자취가 4·27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할 통일교육에서 발판이 되는 것은 거부할 이유가 없는 안성맞춤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교육의 몫은 현직 제57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며 이를 직접 보좌할 제59대 박춘란 최초 여성 교육차관의 역량에 기대를 모은다.

 


무궁화와 목난화 함께 피어


지금 계절은 5월에서 6월로 넘어갈 시기이며 남한의 국화인 ‘무궁화’와 북한의 국화인 ‘목난화’가 함께 피게 되는 것을 앞둔 한여름 잎철이다.


본래 저들의 국화는 진달래였으나 김정일 위원장 재임 때 목련과의 산목련으로 바뀌었다.


목난화는 고산지대 울창한 숲에서 자생한 것으로 목련을 닮은 백색 바탕의 다섯 꽃잎과 함께 짙은 분홍색의 꽃술이 함께 피어나면서 짙은 향기를 뿜는 것으로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온정리 ‘김정숙호텔’의 입구 마당에 기념수로 심어져 꽃송이가 피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김정숙 여사는 김정일 위원장의 친모이며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친할머니다.


그 시기의 서울 광화문 지하철역 8번 출구 녹지에 두 그루를 심어 꽃송이가 피었을 때 당시 문화일보에서 촬영, 보도한 것으로 남측은 처음 알게 되었으나 그 뒤 볼 수 없었다.


이처럼 남북한의 국화가 함께 피어날 시기에 앞서 4·27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에서 교육의 몫은 더욱 무게를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감회가 새롭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디지털시대 교육자치의 홍보전략 민낯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3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사료가 되고 있다. 〈편집자〉○

 

직선교육감 나름의 독립된 매체 이용

아날로그시대 종언 뒤이어 진입 8년째

보도요청 55% 폐기 언론제공 45%뿐

 

- 공직선거법 86조5항 어기면 당선무효 등 낭패-

 

노무현 참여정부 마지막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인터넷 홍수 영향 매체 변화

 

<전호에서 계속>

 

아날로그 세대의 변화와 적응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진취력에 따라가기 힘든 것을 실감하고 있으며 교육에서도 행정과 현장이 극명하게 조우하고 있는 것으로 입증된다.


정책과 행정의 경우 교육부 장관, 실·국장 세대와 과장급 서기관 및 이하 사무관, 주무관 세대가 판이한 것은 자타가 공인한 현상이다.


이것이 행정에서 물정의 차이가 되고 있다. 이 와중의 언론은 아날로그형일 수 없다. 기자 등 모두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활용하고 있으며 종이매체와 인터넷으로 공존한다. 때문에 종이신문의 정보 전달과 인터넷의 파급 효과는 비교될 수 없게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스마트폰을 갖게 되고 가정의 집전화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러니 초·중등학교의 교육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중앙정부(교육부)의 국가교육과정 주도와 지방교육자치(시·도교육청)의 학교교육과정 운영은 맥락을 맞추기 어렵다.


교육과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가 학교장임에도 시·도교육청이 목적 사업을 따로 벌이는 것은 직선교육감제의 오류이면서 개선할 대상이다.


결국 교육감이 직선이다 보니 표밭 관리가 우선이고 정작 학교를 도와야 할 현장지원의 본무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정상화가 우선인 것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교육감마다 나름의 독립된 매체를 마련해서 이용하고 인터넷 홍수에 대처한 것으로 본무가 되고 있다.

이에 비추어 제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의 언론관은 지금에 와서 되돌아 봐도 거울로 삼기에 충분했으며 교육감 직선시대와 비교하게 된다.

 


10년 후인 오늘의 모습 조망


다음은 올해 3월26일 어느 교육청의 대변인실에서 주도한 2018년 교육 홍보력 강화를 위한 상반기 홍보연수 자료이다.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계속된 대변인 ‘언론응대 자세’와 대변인실 각 팀의 공보관 등 주무부서별 협의사항을 놓고 진행되었다.


이는 10년 전(2008년)과 비교해서 그 이후인 오늘의 모습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의미가 있으며 때문인지 10년이 흐른 지금의 홍보담당자협의에서 첫 손에 꼽는 것이 보도 자료의 적기 제공이었다. 그리고 보도자료 배포과정의 효과를 돕기 위하여 다섯 단계를 예시했다.


▲ 첫째, 보도 자료의 제출이다.

각 부서, 기관(교육지원청 및 직속기관)에서 할 일로 보도희망은 전 주의 수요일까지다.

이때 대변인 공식 보도자료 E메일로 제출케 했다.


▲ 두 번째, 보도계획 결정이다.

매주 전주의 금요일 오전이며 출입기자단과 협의 후 결정한다.


▲ 세 번째, 보도자료 보완·보강이다. 제출된 보도 자료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중요사항이 보강된다. 이 때 제출부서와 최종 협의한다.


▲ 네 번째, 보도 자료의 기자단 배포이다.

보도희망일 전날의 오전 8시(조간)와 전일의 오후 3시(석간)에 맞춰 이뤄진다.


▲ 다섯 번째, 보도이다.

이는 언론사의 몫으로 각 언론별 신문 방송 등에 보도되도록 한다.

이와 같이 다섯 단계의 무난한 진행을 위하여 보도자료 제출기한을 준수하도록 했다.

기자단에 요청할 자료 부존재로 보도계획 반영에 어려움이 따랐고 사회적 긴급 이슈가 된 내용의 경우, 기자단과 숙의해서 즉시 자료로 제공하게 된다.

보도자료 제공 직후 취재 기자의 질문과 통계자료 요청, 추가 취재, 취재협조기관 사전 의논 등에 적극 응대해서 호응도를 증대하고 부정적 보도를 예방한다.


이는 보도자료 제공 후 모니터링, 오보·왜곡보도의 적극 대응이다.

동시에 고품질 보도자료 제공은 시급한 현안이다.


지난해(2017) 모 교육청 각 기관(부서)의 보도요청 자료 중 45% 정도가 언론에 제공되었을 뿐 55%는 폐기되었다.


내부직원 대상 단순행사와 1회성에 그치는 행사가 많고 희소성이 부족하여 기관의 보도요청에 비해 언론매체 제공률은 낮은 편이다.


보도요청 자료의 언론 미제공 주요 사유는 사후보도 요청 23건(3.5%) 단순행사 1회성 258건(39.3%) 내용부실 6건(1%) 희소성 부족 225건(34.4%) 참여인원 소수 143건(21.8%)으로 모두 655건이었다.

 



우수보도자료의 선정 기준


2018년 현재 모 교육청의 대변인실에서 마련한 우수보도자료 선정 기준은 5개 항이다.


① 보도 자료의 충실성을 첫 손에 꼽았다.

핵심 내용이 단순간결하면서 충실한 내용으로 이해하기 쉽게 작성한 것을 우선했다.


② 특색 있는 주제 선정이다.

교육정책이 잘 드러난 주제, 참신한 주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 사회적 여론·시기적 적정성(타이밍)·언론 관심사항 등이다.


③ 제목 선정의 탁월성이다.

핵심 내용을 잘 표현한 제목, 숫자, 희소성 등의 강조점 표현이다.


④ 다각적 홍보 노력이다.

서면자료, 인터뷰, 방송자료 등 제공이다.


⑤ 언론 응대 및 전파력이다.

기사 반영률(건수)이 높고 취재협조기관의 사전 섭외 등 보도편의 제공과 인터뷰 등 적극 응대이다.

 



공직선거법 86조 5항은 덫


선거직인 시·도교육감의 홍보 전략에서 덫이 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86조 5항이다.

이를 어기면 당선무효 등 제재에 이길 수 없다.


제5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소속 공무원을 포함한다)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계획·추진실적 그 밖에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상황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홍보지·소식지·간행물·시설물·녹음물·녹화물 그 밖의 홍보물 및 신문·방송을 이용하여 행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분기별로 1종 1회를 초과하여 발행·배부 또는 방송하여서는 아니되며 당해 지방자치단체 장의 선거일 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 이하 제6항에서 같다)부터 선거일까지는 홍보물을 발행·배부 또는 방송할 수 없다(신설 1998.4.30, 2000.2.16, 2004.3.12, 2006.3.02, 2010.1.25.)


1, 법령에 의하여 발행·배부 또는 방송하도록 규정된 홍보물과 달리 발행·배부 또는 방송하는 행위.


2, 특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그 사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자나 관계주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행위.


3, 집단민원 또는 긴급한 민원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위.


4, 기타 위 각호의 1에 준하는 행위로서 중앙선관위의 규칙이 정하는 행위 등이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독서량 부족에 장학의 오류 빚어 망신살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1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素女經을 ‘少女의 祈禱’로 착각해 권장

홍보의뢰 지뢰밭 보도자료 방심은 금물

共感따르지 않았으면 ‘冷談’초래는 당연

 

-보도 후에 미칠 파장과 영향 신중고려 직감할 일 -

 

노무현 참여정부 마지막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소녀경 한글로 표기해 혼란

 

<전호에서 계속>

 

이렇듯 교사들이 알고 있는 소녀경 조차 교육청, 문교부 장학진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독서량 부족으로 장학의 오류를 빚었고 교육계 망신살로 뻗친 것이다.


최초 지역교육청의 장학사가 자신의 모자란 것을 알았던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었고 때문에 한자로 표기된 책 이름의 첫 글자인 소(素)자에 주의조차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다른 교사들이 추천한 세계 명작과 함께 「소녀경」을 포함시켜 도교육청에 주천했다.


이 때부터 「소녀경」은 한글로 표기되어 문교부까지 올라와 권장도서 목록에 섞인 채 한 신문의 1면 머리기사가 된 것이다.


문제는 교육청, 문교부 관계자 중 「소녀경」을 읽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므로 「소녀경」을 <소녀의 기도>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채택한 데 있었다.


관계자 중 누구라도 이를 검증할 능력을 갖추었더라면 가볍게 넘긴 보도자료 한건이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흔들어 댄 사건으로 변질 될 수 없었다.


이밖에도 비슷한 사례는 숱하게 많았다.


다시 말해서 보도자료 작성은 6하 원칙에 앞서 제공하는 입장에서 보다 그것을 수용하는 언론의 입장에서 되짚어 보는 것이 체질화 되어야 한다.


기관마다 홍보전담 부서를 두고 있지만 부서에 소속된 담당자의 노하우에 비중을 두거나 이를 고려하지 않는 인사 관행부터 재고해 볼 여지가 아쉽다.


특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대변인 등 공보관실 인사에서 더욱 그러했다.


편집(편성)의 전위 활동과 역능이 취재라면 취재를 통해 얻어진 정보는 크게 세가지 원칙에 따라 분류하고 처리된다.


첫째는 정보로서 전달할 가치에서 점검하게 된다.


정보는 선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알아야 전달가치를 발휘한다.

다른 사람보다 지득이 늦거나 같으면 이미 정보라기보다 소문 수준으로 내려가 “그 애기라면 나도 알고 있다”는 것으로 소멸된다.


두 번째는 활용할 가치다.


자료로서 안심하고 인용 또는 사용할 수 있어야 선택 받는다.

그냥 재미삼아 알아둘 상식 수준에 머물거나 한 판 웃음거리가 될 정도면 자료가치에서 멀어진다. 이 가치보전을 위하여 보도자료는 그 내용의 전달 목적에 따라 부속자료가 충분할수록 활용할 욕구를 충족시킨다.


세 번째는 기록가치다.


기록으로 보존되어 훗날 역사적 자료가치가 있는 것이면 방대한 보도자료라도 원문 그대로 전재할 만큼 채택한다.

요약하면 정보가치, 활용가치, 기록가치에 따라 지면이나 시청대의 방송이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보도 자료의 작성에는 교육홍보일수록 교육계의 주기적 현상을 유념해야 한다.


3월 학년 초, 9월 학기 초, 수능실시, 대학입시철 등 학제와 학기제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매년 같은 시기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사안을 달리하면서 홍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해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 작성한 보도 자료는 작업에 앞서 작년 같은 시기와 재작년 그 때는 어떤 것이었고 언론의 집중타가 어디에 핵심을 두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순서다.


별로 힘들지 않으면서 효과적일 수 있어 권장해 본다.


간혹 타 기관이나 관련기관 또는 단체의 홍보의뢰에 따라 별도 자료를 작성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주의를 요하는 사항은 그것이 보도된 후 미칠 파장이나 영향을 직감해야 한다.

신중한 고려를 요하는 것 중 빠질 수 없는 것이기에 두 번째 권고사항으로 감히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보도결과 효과 측정


홍보의 성패는 보도결과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효과 측정은 여론 선도층의 반응에서 절반은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음은 전문가의 반론이나 주장 등 후속이 따른다.

대신, 급소를 찌른 지적이 강도 있게 논평될 것에 대비한 준비가 홍보조성의 전단계 작업에서 충분했으면 대응하기 어렵지 않다.


행정 수요층의 반응은 이보다 더욱 민감한 사항이다.


정책과 행정 모두 수요에 따라 공급이 홍보를 통해 이룩되는 것은 상식이며 이는 정도이다.

목적한 대로 성취했는지 여부가 곧 효과 측정이다.


언론 스스로 향도기능을 노린 점과 일치하면 아무리 우연이라 해도 공익에 이바지한 셈이다.

이런 저런 효과의 측정은 여론조사 기구의 다양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결과가 도출 될 수 있다.


가장 신빙성 있고 공정한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다기보다 그 주체의 자발적 참여가 유인될 수 있으면 훨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론조사의 효과는 확률이 생명이고 정통이다.


확률에서 보여준 것이 곧 일반의 공감성이다. 공감이 따르지 않는 보도자료나 홍보는 여론조사에서도 냉담하게 나타난다.


반대로 그것이 성공적이면 언론은 후속 보도에 바빠지고 이에 필수인 해설자료를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해설과 논평, 반론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에 둔감하면 안 된다.

계속된 관련 자료의 요구가 있을 때 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홍보의 베테랑이다.


자료를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더라도 그것이 요청인지 간청인지 알아차리는 센스가 홍보요원에게 기대된 이유를 몰라도 곤란하다.


효과 미지수의 홍보활동에 확실성을 담보로 삼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심증 하나로 홍보결과를 예측하는 따위의 불성실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중요한 것은 홍보의 기획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요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

매체활용에서 전담자와 결정권자의 정신연령대가 다를 때도 대응방안은 달리될 수 있다.

이것은 효과측정에 잣대가 되고 있다.


언론매체를 이용하려드는 홍보의 시작은 되레 이용당한 결과로 드러난 사례를 상기해야 한다. 빗나간 화살은 과녁을 맞히기 어렵다.


더구나 홍보의 대상이 이해관계를 달리했을 때 드러난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이 경우 홍보를 주관한 쪽은 맷집좋게 이해당사자간의 싸움으로 떠넘겨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모색이 시치미를 뗀 침묵이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다음 사태에 대비하면 기왕의 홍보에 대한 효과는 거저 측정된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사심발동 과잉홍보 화만 자초하기 십상”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20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보도자료 작성하기 전 점검할 필수 사항

80년대 소녀경 파동으로 대표적 사례 남겨

언론 본래 역능작용 대처못해 후회 불러

 

-참여정부 교육정책 뿌리내릴 방안 찾는데 부심 -

 

노무현 참여정부 마지막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교육현장과 먼 홍보에 염증

 

<전호에서 계속>

김신일 장관은 밤잠을 설쳐가며 고뇌하고 노무현 정권의 일몰에서 석양이 곱도록 교육정책이 신선하게 뿌리내릴 방안을 찾는데 부심했다.


도대체 교육현장에서 바라는 정책과 행정의 맥락은 무엇이며 시·도교육감의 지방교육자치에서라도 여물 수 있도록 소망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교원단체조차 교총과 전교조 선생님들이 보·혁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으로 안타깝고 애가 탔다.


특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홍보기능은 역할의 진수가 어느 쪽에서 굴절되고 동맥경화현상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교육부 출입기자가 국가전문행정연수원에서 행한 특강은 또 어떤 것인지 궁금했고 수강자의 반응과 공감여부에 관심을 보였다.


이에 교육부 대변인 쪽에서 필자가 2002년 5월31일 국가전문행정연수원에서 강의한 ‘교육홍보의 효율화 방안’ 주제 내용에 담았던 것을 확인할 목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리고 수강자 대부분이 “교육계 여론을 집약한 창구역할이었다”는 소감에 궁금한 것을 재확인했다.


다음은 필자의 당시 강의 교재 원문이었다.


이에 “썩 좋은 것도,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니라”는 뒷말이 따랐고 이후 16년의 세월이 흐른 것을 감안하면서 재음미해 볼 일로 옮겨 본다.

 


보도자료 작성요령


홍보는 행정의 치료사다.

견제수준 이상의 장해를 극복하는데 보호벽이 될 수 있다.

행정에 약이 되거나 독이 되는 것은 홍보의 성패에서 가름된다.

때문에 과잉은 금물이다. 아울러 홍보의 특성을 노리는 것은 과욕 중 에서 으뜸이다.

홍보에 앞서 가치에 담을 공공성 여부를 점검해 보는 것부터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보도자료 작성 이전에 스스로 다짐해 볼 사항이다.

공익성에 충실한 것이면 족하고 그 이상의 사심이 발동하는 것은 보도 이후에 화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특히 인사동정 제공은 홍보의 사유화로 그릇되고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과는 다음 홍보활동에 장애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약이 되지 않고 독이 되는 것은 물론, 이와 같은 통설을 뒤집을 묘책도 없다.

대체적으로 홍보담당의 역할과 기능에서 보도 자료의 작성은 6하원칙을 준수하는 것 못지않게 그의 양식과 소양에서 결과가 드러난다.


먼저 언론 본래의 역능작용에 대처해야 한다.


다음은 홍보의뢰에 무작정 따르는 것으로 창구역할이 된다는 생각이나 와집은 금물이다.


의뢰된 홍보핵심에 과감히 접근하여 독자(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얼음장보다 차거운 검증을 서슴치 말아야 한다.


이 때 보도자료 작성 실무자나 책임자는 해박한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는 여유와 용단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홍보의뢰자의 요청을 받으면 충분한 자체검증 시간이 허용될 때 접수하되 처리기간에 여유를 주도록 인식시켜야 한다.


성급한 요청이나 속전 속결처리를 강요할 경우라도 사안에 매달려 우를 범하는 경솔은 피할 수 있어야 탈이 없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홍보의뢰에 호응해서 보도자료에 안도한 것으로 엄청난 화근이 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80년대 신군부의 이규호 문교장관 때 교육계 중대뉴스 중 「소녀경」 파동은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당시 문교부 공보관실에 홍보를 의뢰한 장학실장은 초·중·고등학생용 권장도서 목록을 작성하면서 이에 문제가 된 「소녀경」을 포함시킨 것으로 화근이 되었다.


공보관조차도 장학실에서 작성해온 보도 자료를 밝은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가감없이 기자실에 배포했다. 출입기자들도 대부분이 사회면 보다 문화면에 알맞은 보도 자료라고 생각하고 이를 재정리하여 기사로 작성하는 일조차 서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육부 출입기자는 문화부소속이 아닌 사회부기자가 거의 대다수이다.


이 와중에서 한 신문의 기자는 자사의 문화부에 소속된 입사동기에게 넘겨주고 싶어 배포된 자료를 그대로 가져간 다음 문화부에 있는 동료에게 “기사거리 하나 가져왔는데 쓸 만한 것인지 훑어보고 결정하라”면서 건넸다.


이를 받아든 문화부 기자는 방대한 분량의 권장도서 목록을 빠짐없이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한 대목에 이르러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럴수가…”하는 탄식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바로 「소녀경」 때문이었다.


그 길로 달려 나가서 서점을 뒤져 어렵지 않게 「소녀경」을 사들고 와서 기사를 작성했다.

중국 황실의 고대 성 경전을 나이 어린 초등학생에게까지 권장하는 문교부의 처사가 옳은 것이냐면서 단칼에 내리치는 서릿발 기사를 작성, 데스크에 넘겼다.


순식간에 편집국 분위기가 열기에 차오르면서 문화부에서 작성된 기사가 1면의 정치부 기사를 밀어내고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되어 가판으로 길거리에 깔렸다.


문교부가 이를 발견하고 놀라기 앞서 청와대에서 먼저 제보를 받고 확인되어 불벼락 추궁과 함께 “해명보고하라”고 지시가 떨어졌다.


진상 규명 등 발등에 불을 맞게된 문교부는 서점에서 「소녀경」을 모아 수집했고 여론의 매질을 감수했다.

동시에 홍보를 의뢰한 문교부는 장학실에서부터 검증이 소홀했던 것에 더욱 뼈아픈 후회로 가슴을 쳤다.


그 검증 과정을 역으로 더듬어 추적한 결과 권장도서 목록 결정은 일선 초·중·고 교사 1인당 1권씩 추천하여 지역교육청에서 1차 취합하고 선별한 다음 우량도서로 당해 시·도교육청에 보고하도록 했다.


시·도교육청은 2차 검증을 거쳐 선정된 도서를 문교부에 최종 보고한 것으로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소녀경」(素女經)을 추천한 지방고교의 기혼 여교사는 중국의 성(性經典)경전으로 자신이 판단하기에 고교생용 수준에서 크게 해롭지 않다고 여겨 선택했었다.


당시만 해도 행정기관이 아니면 한글전용 타자기를 갖지 못한 때라 펜으로 「소녀경(素女經)」을 써냈고 한글이 아닌 한자로 책이름 그대로 표기해서 제출한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교사의 「소녀경」 추천을 접수한 지역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소녀의 기도’로 잘못 알았었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지역 학교간 격차 심화 붕어빵교육 난제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19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교육자치 국감지적 시정요구 누적 여전

교육행정연수원 특강 기자 대안 제시

평통자문회의 고교평준화 후유증 질타

 

-노무현 대통령 부처 기자실 폐쇄 따른 우여곡절 -

 

노무현 참여정부 마지막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되돌아 본 국감지적 그 때 뿐

 

대전시교육청

 

<전호에서 계속>

②지방채 발행액은 증가한 반면 지자체의 지원이 감소되고 있어 지방교육재정이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라.


③여교원 관리직(교장) 진출이 여교사 증가비율과 달리 저조한데 따른 시정대책을 수립, 시행하라.


④도서관 활성화사업과 장서구비가 교육부 권장기준보다 낮고 사서교사 비율이 전국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대책을 강구하라.


⑤영어교육활성화 방안 중 원어민 교사 확보율과 영어교사 연수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데도 개선대책을 서두르지 않은 것에 질책이 따라야 하므로 경고한다..


⑥실업계고교의 대학진학율은 높아지고 있으나 취업률이 낮아지고 있으며 현장 실습교육마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므로 맞춤형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⑦방과 후 교실 등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학부모 DB구축 방안을 서둘러 강구하라.


⑧교원성과 상여금 지급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⑨특수학교에 입학할 때 서약서를 받는 등 제출강요는 비인권적 요소로 없어져야 할 것이므로 이를 적극 검토해서 특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⑩특수교육담당 장학사의 증원대책을 서두르라.


⑪신설학교의 오염물질이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므로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라.

 


울산시교육청


①교육전문직이 부족한 실정이므로 확보방안을 강구하라.


②지자체의 교육경비 보조금 확보방안이 시급하다.


③학교정화위원회의 심의 운영을 보다 철저히하여 학교 교육환경이 적정수준 유지되도록 하라.


④학교체육 정상화와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육감배 체육대회의 평일 개최는 지양되도록 하여 원성을 사지 않도록 자숙하라.


⑤방과 후 학교 성과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


⑥학생 교복 공동구매제 도입방안을 검토하라.


이와 같이 12년 전의 2006년도 제17대 국회 교육위의 국정감사 결과 지적 및 시정요구사항이 지난해(2017) 국감 때 지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야말로 교육자치의 본질 회복이 시급한 것을 더욱 실감케 한다.

 

 

정책 개선없이 그대로 유지


김신일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자문기관인 평통자문회의에서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질타가 잇따른 것에 긴장했다.


당시 평통회의 오근진 상임위원은 “사회 갈등 작용 요인이면서 붕어빵 교육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오 위원이 지적한 주요 사항은 입시 위주의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이기적인 교육풍토를 조성하였고 지역 간 학교 간 교육수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음에 경계했다.


특히 평준화 정책 이후 벌써 해소되었어야 할 문제들이 오히려 더 심화되어 사설학원이 흥성하고 사교육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으며 ‘기러기 아빠로 비유되는 조기유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등 “국부의 유출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듯 그칠 줄 모른다”고 통탄했다.


이러는 사이에 공교육은 붕괴 직전에 와 있고 책임을 져야할 교육감들은 자리 유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교육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과중한 과외교습비의 지출로 가정과 국가의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부동산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일류학교를 선망한 학부모의 집착은 도덕적 문제와 사회적 부조리를 낳고 해마다 입시제도가 바뀌어야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적 복합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교육언론에서 본 교육문제


노무현 정부의 특징은 집권하기 무섭게 정부중앙청사의 각 부처 기자실을 폐쇄하고 별관에 브리핑실을 설치해서 출입기자는 누구나 이 곳에만 출입을 허용한 것으로 제한했다.


이에 각 부처 출입기자단은 브리핑실 허용을 전면 거부했으며 “유례가 없는 언론탄압”이라고 항의하면서 맞서 대결했다.


특히 청와대 기자실을 비롯해서 서울시청과 시교육청 등 기자실은 변동이 없는 것에 “이변을 넘어선 괴이한 일”이라며 성토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오래 가지 못했고 시작부터 언론인 출신 청와대 비서진에서 발상이 된 것으로 후문이 따랐다.


그리고 부처 기자실이 부활되어 정상화 되면서 공무원 연수가 활성화 되는 계기로 전환했다.


그 이전부터 부처단위 연수는 경기도 수원시 외곽에 국가전문행정연수원을 설립하고 각부처 공무원 연수를 통합, 운영했다.


이 때 교육부도 ‘교육행정연수부’로 통합되어 2000년 6월14일 사무관 후보자 과정 제1기 연수로 시작했다.


교육목표는 초급관리자로서 필요한 기본 소양 및 지도력을 함양하고 사무관의 기본적 직무와 역할을 인식시켜 교육행정의 관리능력을 기르는 등 21세기 행정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서 교육정책의 진수가 될 기획능력을 제고하도록 했다.


교육대상은 지방직 5급 승진대상으로 결정된 자이며 직무교육 시간의 40% 이상은 참여식 교육으로 책임관리자의 기능을 익혀 교육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연수내용을 편성했다.


그 때 1기생 교육인원은 전국(시·도교육청)에서 차출된 35명으로 2000년 6월14~27일까지 2주간 비합숙 연수로 72시간 실시했다.


총 교육시간(72) 중 강의 24시간(33.3%) 참여식교육 44시간(61.2%) 기타 행정 4시간(5.5%)으로 진행했다. 참여식교육의 내용은 실습실기 6시간(8.3%) 워크숍 11시간(15.6%) 대담·토의 22시간(30.5%) 사례(연구)발표 2시간(2.7%) 현장연수 3시간(4.1%)이었다.


이에 필자도 강사로 초청되어 2000년 6월23(금)일 ‘교육언론에서 본 교육문제’를 주제로 오전 11시부터 12시50분까지 3~4교시 특강을 맡게 된 기회에 대안을 제시했다.


필자의 강사 자격은 교육부 출입기자였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2002년 5월31일, 2004년 12월10일 등 세차례 출강했으며 김신일 장관이 서울사대 부설 교육연수원장 겸직시에 교장반 연수에서 필자의 강의를 직접 들은 것이 기억되었는지 교육부직원 연수 때도 부르게 되었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참여정부 3년 반 교육장관 다섯명 바꿔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06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

 

 

 

국회 청문회 부적격이라더니 임명 동의

재임 18일 만에 떠난 단명예감 적중

중3 진로 고3은 수능 대입시 변경 걱정

 

 

-취임 10일 만에 학운위 7·31교육위원 선거 치러-

 

 

 

노무현 참여정부 5번째

49대 김병준 교육부장관

 

<2006. 7. 21~ 2006. 8. 7 재임>

 

임명 전 찬반 얽힌 청와대 출신

 

<전호에서 계속>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7월3일 개각에서 김진표 교육부총리 겸 장관을 경질하고 김병준(당시 52세) 청와대 정책실장을 후임으로 내정, 발표해서 국회 교육위원회 청문회에 넘겼다.


이 때 교육부 차관은 그해 6월20일 경질한 이종서 차관의 후임인 서남수 차관이 6월21일 임명되어 취임한 뒤 1개월째 재임하고 있었다.


김병준 장관은 영남대 출신으로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고 국민대학교 교수를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에 있었다. 이처럼 김 장관의 내정 발표가 있기 무섭게 교총과 전교조, 대학교수협의회는 “교육철학의 부재 의문을 떨쳐버리기 어렵다”고 거부반응이었고 “부적격하다”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에 김 장관은 “교수협의회 회장을 비롯하여 보직교수도 여러 번 맡았으며 교육자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대응했다. 2006년 7월18일 국회 교육위원회 청문회를 앞두고 내정 발표 뒷날(2006.7.4.) 일부 언론에서 교육위 의원 18명의 의중을 떠보았고, 16명이 속내를 드러낸 것이 보도됐다. 내용은 찬성 3, 반대 9, 유보 4명으로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청문회 결과는 결격사유가 없는 것으로 임명에 동의했고 7월21일 취임했다.


이때 노무현 정부는 5년 임기 중 1년8개월 남은 상태에서 교육부장관이 다섯 번째 경질된 것으로 교육계의 우려를 자초했고 김병준 장관도 단명이 예감되는 악순환이었다. 그래서인지 7월21일 취임 후 18일 만인 8월7일 경질되어 떠났다.

 


대통령 공약 식언 대입시 불안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때 후보 공약에서 “교육문제는 전국민의 관심사이고 학생을 유능한 인재로 길러 국가 장래를 대비하는 것이므로 장관 임명에 신중하고 한 번 맡겼으면 나의 임기(5년)와 같이 하도록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천명했었다.


그래 놓고 다섯 번 바꾸니까 뒷말이 따르고 교육계 안팎에서 “환영받지 못할 사람들을 임명해 놓고 경질로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냐?”면서 “마땅치 않다”고 했다.


특히 중학생들은 “고교진학을 다시 생각하고 진로를 결정해야겠다”면서 “불안하다”고 초조감을 털어놨다. 이는 중학교 졸업반의 경우, 외고와 특목고 진학에 기우가 따르고 고교졸업반은 재수할 경우를 내다봐야 하기 때문에 착잡했다.


뿐만 아니라 교원단체와 언론에서까지 역대 교육부장관과 새로 들어올 내정자까지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반응한 것으로 집약했다.


이와 같은 복합작용에 영향받은 학생과 교원들은 국회 교육위원회의 청문회를 주시했고 결과는 부적격이 아닌 무난한 것으로 임명에 동의한 것을 보고 “믿기지 않고 난감하다”고 난색을 보였다.


언론 보도에서 드러냈던 ‘부적격’ 등 반응과 논평 자체가 말 다르고 결과가 다른 것으로 빗나간 현실에 개탄을 금치 못한 것이다.


김병준 장관은 청와대 정책실장 재임 시기에 안병영 전임 교육부장관의 ‘2008 대입시 개혁안’에 긍정적이었고 안 장관을 고무 격려했던 것에 비추어 2006년 대입시를 마음놓게 되었으나 18일 재임하고 떠난 것으로 더욱 허탈했고 의외의 일이 되고 말았다.

 


취임 첫 7·31교육위원선거


김병준 장관은 2006년 7월3일 장관 내정자로 발표되었을 때 일부 부정적인 반응에 반박하면서 “교육자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주목되었다.


이는 취임 후 10일 만에 치른 ‘7·31교육위원선거’를 내다보고 심중을 드러낸 것으로 알아차리게 했다. 시·도교육위원에 대한 이미지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의 너울을 쓴 것에 실망이 컸다. 중고생들까지도 그 때 이미 무보수 명예직이 아닌 것에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토록 존경했던 마음은 2006년 7월31일 선거를 앞두고 무보수가 아닌데다 명예직도 아닌, 유급직인 것에 놀라 깨졌다.


서울은 연봉 5천40만 원으로 기존의 출석 수당 기준액 보다 2배 이상 더 받는 것이 드러났고 이를 알게 되면서 교육위원 선거의 후보가 늘어나는 등 노령 교원의 인생 후반전으로 2모작이 되는 것에 실소했다.


때문에 교육을 위해서 교육위원 선거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 않고 평소 바른 소리를 해댄 목적이 딴 데 있었다고 불신하게 된 것으로 위상이 훼손되었다.


이처럼 그렇게도 존경스럽던 선생님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달라 보이는 것은 이변이면서 새삼 세상물정을 알게 되었다. 교장, 교감, 교사, 교수까지 교육위원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모습은 선망적이기 보다 의외의 스승상으로 비쳐지게 마련이었다. 더 기가 막힐 일은 교육위원이 교수, 교사, 교감, 교장보다 낫다고 생각되면 아예 사표를 내고 나설 일이지 사직서는 쓰지 않고 후보로 등록한 뒤 낙선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침 떼고 눌러앉은 모습에 안타깝다 못해 처량하게 보였다.


이를 두고 학생들은 “저분들의 평가는 끝난 셈”이라면서 “제자를 버리고 학교에서 떠나 분필을 쥐던 손에 권력을 잡고 싶은 것이면 스승자리에도 미련을 버린 셈”으로 빈축을 샀다. 김병준 장관은 그해(2006.7.31) 교육위원 선거에서 이를 실감했고 이에 대처하는 것도 수월치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선관위 공정관리가 뜻하는 것


2006년 7월11일 선관위의 시·도교육위원 선거일 공고와 함께 공정관리 안내는 제한과 금지사항을 구체화한 것으로 의미가 주는 뜻도 가볍지 않았다.


7월21일 후보등록 전까지 사전운동이 금지되고 사조직과 학운위원 접촉 등 기부행위를 엄단했다.


또 지위를 이용한 매수와 이해유도행위, 허위사실 공표와 비방은 중형으로 처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 이전과 이후에도 계속된 것이지만 학운위 선거의 교육위원 선출당시에 겪었던 일들로 되돌아보게 된다. 당시 금지사항은 1,후보(예정)자 선전과 반대 2,사조직을 이용한 선거운동 3,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4,매수 및 이해유도행위 5,허위사실 공표와 비방행위 6,선거운동의 제한 및 중지 등이었다.


제1항(후보자 선전과 반대)의 경우 학교운영위(학운위)위원 등 접촉활동과 관련해서 회의 등 각종 모임에서 자기 또는 특정인의 입후보예정사실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거나 선전하는 행위를 금지했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바꾸는 교육정책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03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

 

장관 수명 1년 평균 잦은 경질에서 초래

교육감 직선화로 대학에 자리 내준 셈

지자체와 교육자치 협력관 두면서 협치

 

-정책은 “여유가 추진력” 행정은 “예산이 명령”조언-

 

노무현 참여정부 네번째

48대 김진표 교육부장관

 

<2005. 1. 28~ 2006. 7. 20 재임>

마지막 간선교육감 현실 비교

 

<전호에서 계속>

 

인천광역시는 나근형 교육감의 임기가 2005년 7월15일로 대구시와 같은 시기에 선출했다.


울산광역시는 최만규 교육감의 임기가 8월20일로 7월17일~8월7일 사이에 선출했다. 전남은 김장환 교육감의 임기가 10월24일로 9월25일~10월15일 사이에 선출했다.


이밖에 16개 시·도 중 3개 시·도교육감은 2006년에 임기가 끝나게 되었으며 강원 2월28일, 경북 8월17일, 광주 11월6일이었다.


2007년 임기 말 교육감은 부산 7월28일, 충북 12월3일, 경남 12월27일이었으나 시·도지사와 똑같은 직선제로 바뀌면서 학운위 선거는 마지막이 되어 교육자치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간선제 때보다 낫다고 할 수 없게 직선교육감의 선출은 교육계 여망에 관계없이 정치권과 연대하고 시·도지사, 기초단위 지자체장인 시장·군수 등 시·도의회 의원과 시·군·구의회 선거와 연계되었다.


이는 선거구의 유권자가 선거인 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그대로 광역 또는 지역구 상주자인 것에 얽혀있었으므로 정당인의 선거조직과 견줄 수 없게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은 연줄이 허약했고 인맥형성도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초·중등교육계 출신 후보는 출신학교의 동창회와 직접 가르쳤던 제자들 중심으로 반창회 외에 가동할 여지가 없어 불리했다.


때문에 대학교수 교육감 후보 가운데 운동권 출신들은 지방의회와 지자체장 후보 중 야당권에 줄을 대거나 그 조직에 의지해서 연대한 것으로 당선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초·중등교육계의 여망은 시·도교육감의 교육자치에서 초·중등학교 대상이 아닌 대학교수출신 교육감을 맞게 되는 것으로 간선제 교육감 때보다 나아졌다고 하기 어렵게 소외감을 겪었고 직선교육감 3기인 현실에서도 교육현장의 요청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교육감 선거는 특별한 상황변화와 유권자의 정치의식 등 성숙도에 변화가 없는 한 초·중등교원 출신 후보는 입지가 달라질 수 없게 불리한 것은 현안이다.


문제의 소지는 초·중등교원 경력이 없는 대학교수에게 교육감 자리가 돌아가고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현장에서 바라는 교육자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난제가 간과된 데 있다.


이는 교육의 전문성과 독립화 및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을 부른 제도의 병폐이므로 대학에서 배려해주거나 초·중등교육계가 자성, 분발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 갖추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40년 출입기자 독대 고언 들어


김진표 장관은 2006년 5월15일 동아일보를 보면서 한면에 전면광고로 실은 ‘신동아’ 6월호의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 제하의 특집에 놀랐다.


이를 기고한 老 기자는 필자였고 20페이지에 걸친 역대 교육부 장관의 발자취가 한눈에 잡힌 때문이다.


특히 48인론의 마지막 장관이 자신이었고 “재임 1년 반이 되도록 교육현장의 실상 파악과 확인을 못해 등불 없이 밤길에 나선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대목에 충격을 받았다.


대변인을 불러 “어째 이렇도록 나만 몰랐느냐?”면서 “당장 40년 출입기념패를 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독대해서 여기(신동아)에 쓰지 않은 얘기도 들을 기회가 되도록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6월10일 장관실에서 40년 출입 老 기자와 독대가 이루어졌고 기념패와 하늘색 넥타이를 선물로 주기에 받았다.


이때 김진표 장관은 “날더러 등불 없이 밤길에 나섰다고 썼는데 내가 그토록 교육실정에 어둡냐?”고 물었다.

이에 老 기자는 “장관님께서 교육정책과 행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했는데 지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역습하자 “오히려 내가 현답을 듣고 싶으니 말해달라”면서 되받았다.


이처럼 老 기자에게 되돌아온 질문의 결과는 난감한 것이었지만 40년 출입기자의 노하우로 “정책은 여유가 추진력이고 행정은 예산이 명령”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러면서 “제가 너무 짧다”고 덧부쳐 말꼬리를 잇자 “아! 좋아요. 좋습니다. 정말 老記者답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서 “우리 교육부에 40년 출입하면서 보신 역대 장관님들의 총체적인 평가가 궁금한데 말해 주겠느냐?”고 묻기에 “할 만하니까 장관으로 임명했으면서 평균 1년도 못돼 경질된 것으로 건국이래 교육부 장관은 48대가 되었고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모습이 너무 허무해보였는데 장관(김진표)님은 그렇게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덕담으로 대신했더니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교육장관이 이처럼 자주 바뀌다보니까 정책은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바꾸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장관님은 오래 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진표 장관은 그로부터 1개월 10일 만에 경질되어 2006년 7월20일 떠났다.

 


지자체에 교육청 협력관 파견


김진표 장관이 취임한 2005년 1월부터 서울특별시를 비롯해 전국 광역시·도와 교육청의 일반자치 및 교육자치 협력망이 결성되고 교육감이 보낸 파견관을 시장·지사가 임명하는 형식의 협력관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전임 안병영 장관 재임시에 수립한 것을 시행하게 된 것으로 후임 김진표 장관에 의해 전면 실시했으며 서울의 경우, 공정택 교육감의 요청 형식으로 이명박 시장이 받아들여 파견관의 사무실을 시에서 제공하는 등 교육감은 교육청의 박장화 지방서기관을 파견했고 시장은 시청 상근 교육협력관으로 임명, 발령했다.


교육청은 협력관 외에 이를 보좌할 사무관(5급) 1명과 6~8급 일반직 2명 등 3명을 추가 파견해서 시청사 안의 사무실에서 상근할 수 있게 조치했다.


이 방안은 전국에 확대, 적용한 것으로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협치를 이룬 것이었음에도 교육감에 따라 협력관제의 운영이 부실하다 못해 유명무실해져 끝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처럼 제도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운영에서 파멸을 자초한 것이 지자체와 교육자치가 협치로 연계될 수 없는 패인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

“지속 가능 발전위해 대안학교 대안 모색”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97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

 

 

대안교육 연구센터 설립해서 정책 창출

강소부국 오스트리아 빈 대학 유학 신념

교육과정 관련 현안 공동해법찾는 계기

 

 

-장관 후 TV출연 자제 가을 은행나무 정취 만끽-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대안학교 법제화의 장본인

 

<전호에서 계속>

‘정부가 직접 나서 교사양성을 어떻게 하고 콘텐츠를 어떻게 하겠다기보다는 대안학교 스스로가 하는데 측면 지원해 드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저는 대안학교를 법제화한 장본인으로서 결자해지의 각오로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1997년도 당시 대안학교 운동을 이끌어 오셨던 분들은 어찌 보면 1세대 대안학교 운동가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 선구자들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대안교육에 관한 새로운 철학과 지식, 이론, 필요하면 정책대안까지도 창출하는 소위 ‘대안교육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우수 교사 확보라든가, 교육과정과 관련한 현안을 파악하고 공동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안학교들의 대안’을 모색해 보십시다.


이러한 혁신의 자세만이 우리 대안교육의 안정적 정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그동안 저에게 대안교육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시고 영감을 던져주신 연세대 조한혜정 선생님, 박청수 원불교 교무님, 들꽃피는 마을의 김현수 목사님을 비롯한 대안교육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드립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대안교육을 향해 정진하고 계시는 원광대 이강래 선생님께는 이 자리를 빌려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04년 12월 23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안병영 드림

 

 

미국 아닌 오스트리아 유학


안병영 전 장관은 올해 5월15일 펴낸 ‘기억 속의 보좌 신부님’ 저서에서 1960년대 한국에서 ‘외국유학’하면 누구나 당연히 미국을 연상했으나 오스트리아를 택한 신념을 서슴없이 밝혔다.


미국은 역사가 짧아 제도 실험의 경험이나 정책사례의 다양성이 떨어져 자연과학도라면 몰라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굳이 그 곳으로 유학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제국에서 인구 7백만 명의 약소국가로 전락했지만 나치의 먹구름이 밀려들기 시작한 1930년대 중반까지 의학 및 자연과학과 더불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논리학과 철학, 경제학, 법학 등 학문마다 고유한 학파를 형성했고 특히 프로이드, 후설, 비트겐슈타인, 노이라트, 슘페터, 포버, 켈렌 등 20세기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가장 독창적 학자들의 이론이 같은 시기, 같은 도시에서 싹트고 영글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실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다고 한다.


또한 학문과 문화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앞서가던 빈 대학의 전통도 크게 사로잡았다는 것이며 그 곳에는 무언가 학문적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신비의 샘이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 밖에도 당시 이 작은 나라가 자신을 전율케 했던 또 하나는 동서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4대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던 나라가 10년간의 끈질긴 정치협상 끝에 기적처럼 쟁취한 ‘중립화 통일’이었다고 꼽았다.

그것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분단국가의 젊은이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어서 1965년 10월4일 오스트리아 빈 대학으로 가는 유학길에 올랐다.

 


두 번 장관직 때 일화 털어놔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 번씩 두 번 교육부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 있었던 일화도 대충 털어놨다.

장관을 하다 보면 일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외부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적잖은데 그런 날이면 아침부터 마음이 불편하고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정·재계의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는 리셉션 때는 더 그랬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더러 분위기도 익숙하지 않아 잠시 머물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했다.


장관을 그만둔 후에는 TV출연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금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계절 따라 변하는 집 앞의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옛 연구실(연세대학교) 앞 은행나무가 오버랩되어 정겹게 다가온다고 했다.<다음 호에 계속>


Posted by 아빠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