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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스승의 날’ 교육방송 순직교원 추모 방영

‘스승의 날’ 교육방송 순직교원 추모 방영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41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도움받고 있으며 널리 읽혀지고 있다. 〈편집자〉…○

고창 김상신 교사 순직 사도비에 새겨

 

추모탑에 담은 辛夕汀님 추모시 아려

누나 소원대로 학교옆에 묻고 잠들어

-울릉도 교사 풍랑에 침몰한 배 주민 구한 뒤 지쳐 숨져-

김영삼 정부 네번째 임명

3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1995. 12. 21~ 97. 8. 5 재임>

학생 웃음소리 묻혀 잠들게

 

<전호에서 계속>

이때 순직한 고창초등학교 김상신 교사 누나의 부탁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부양할 가족도 없고 단신으로 자취하면서 교직을 지켜온 미혼이므로 상여 뒤를 따라줄 배우자도 없었다.

하나 뿐인 누나도 정읍에서 잘 살고 있어 “동생이 그립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다 천천히 잊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사람의 정(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순직했으니 얼마라도 돈이 나오거든 그것으로 학교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묘를 써서 죽어서도 학생들 웃음소리에 묻혀 잠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누나의 소원대로 학교장을 치렀고 묘지는 학생들이 지나는 길목의 양지언덕에 잡아 등·하교 때 절하며 그 앞을 지나갈 수 있게 했다.

 

그래서인지 이 무덤에는 사시사철 꽃송이가 놓여있고 김상신 교사의 사도비(師道碑)에 새겨 기리고 있다.

 

이는 1996년 ‘스승의 날’기념 EBS-TV에 현지 로케로 방영되었다.

 

당시의 실정으로는 파격적이었고 울릉도 순직교사는 계획만 세운 채 방영하지 못했다.

 

울릉중학교의 순직 교사는 오래된 일이어서 필자의 기억에도 가물가물하지만 울릉군지원교육청 홈페이지에 자세한 내용이 탑재되어 누구라도 확인하기 쉽도록 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는 초여름 구름낀 날씨에 바람이 불고 바다에 나간 사람들을 걱정하던 날 수업을 하다 우연히 교실 창문밖 포구 앞바다를 내다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동에서 한배 가득 동네 사람들을 싣고 오던 통통배가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을 이기지 못해 뒤집혀 침몰하면서 순식간에 바다에 빠진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본 교사는 그대로 교실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신발만 벗은 채 헤엄쳐 물에 빠진 사람들을 정신없이 구조했다.

 

그러나 노인들 가운데 허약한 할머니 몇 사람은 떠오르지 않아 구하지 못했고 학생들은 거의 다 구한 것이 확인되자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가라앉은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렇듯 살신성인한 교사는 대구 출신으로 부인과 자녀들은 비보에 놀라 그날 낮에 포항으로 나와 경비정을 타고 도착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해 떠오르기만 기다린 채 학교장으로 영결식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시신을 수습해서 고향 선산에 안장했다.

 

수업하다 말고 선생님을 잃은 학생들의 슬픔이 사무쳐 교실 한쪽에 사진과 촛불을 밝혀 흰 국화송이를 묶음으로 헌화해서 추모했다.

 

미망인은 “새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슬퍼할 학생들을 위해 빈자리를 빨리 메꿔 후임을 맞게해달라”고 교육청에 부탁하고 대구로 떠났다.

 

이를 알게된 당시의 이성조 경북도교육감과 경북도교총은 급히 서둘러 교정에 사도비를 세워 제막식을 갖고 “낙도교육의 무지개가 이 바닷가 학교안에 떠 있다”면서 기리게 한 것이 지금도 남아 있어 그날 일들을 증언한다.

 

 

전주 순직교원추모탑 참배

 

이처럼 고창초등학교와 울릉중학교의 두 순직교사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안병영 장관은 전주 공설운동장에 있는 ‘순직교원추모탑’참배를 계획했다.

 

이를 위해 97년 5월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전남·북교육청 순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추모탑 참배는 여유가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서 광주에 있는 전남교육청으로 바로 내려가 돌아본 다음 귀경길에 전주에 들러 전북교육청 순시와 함께 참배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 때 필자는 안 장관의 전북 일정에 맞춰 따로 내려가서 전주에서 합류했다.

 

예정대로 추모탑을 참배한 기회에 탑신에 새긴 추모시를 읽어 본 다음 이를 쓴 전원 시인 신석정(辛夕汀)님(전북대 교수)의 스승칭송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동료문인과 후진들이 문학상을 제정하여 올해 첫 수상자로 도종환 시인을 선정, 지난 11월에 시상했다.

 

도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교문위에 배정되었으며 동료의원인 정진후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과 함께 같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답게 의정활동을 충실하게 펼치고 있다.

 

안 장관은 추모탑에 새긴 ‘스승님 감으신 눈망울에/눈망울이 남기신 광망속에/트이어 온 역사여 길이 빛나라’를 몇 번이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병상에서 신음하다 이름도 없고 욕심도 없이 숨진 무명의 순직교원들을 새삼 애도하고 추모했다.

 

이 추모탑에 새긴 순직교원의 사혼(師魂)들은 이름있고 지위가 높았던 교육자도 아니었고 외딴섬과 두메산골 초·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숨진 평교사가 대부분이었다.

 

 

교육감 된 뒤 추모탑 알게 돼

 

안병영 장관이 ‘순직교원추모탑’을 참배할 때 전북도교육청에서 윤한철 부교육감이 나와 안내하며 도왔다.

 

안 장관은 경내의 조경 등에 관심을 보이고 당부한 뒤 도교육청에 들러 업무보고를 받았다.

 

당시 문용주 교육감은 군산전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군산시의회 추천을 거쳐 도의회 선출에서 당선되어 재임하고 있었다.

 

업무보고가 끝난 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문 교육감은 “교육감이 된뒤 전국에서 하나 뿐인 ‘순직교원추모탑’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강경상고 여학생들이 앞장서서” ‘스승의 날’을 제정하게 했고 추모탑을 세우는 일까지 주도한 것에 초대 전북교육감이었던 김용환 선생님이 유치해서 건립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여학생은 수녀가 되었으며 강경은 전북도 소속이었으나 뒤에 충남도에 편입되었다.

 

또 “역대 교육부장관 중 전북을 순시한 길에 추모탑에 참배한 것은 정원식 장관(30대)에 이어 안병영 장관이 두 번째 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이후 전북은 도지사와 교육감 주재로 해마다 ‘스승의 날’기념을 범도민행사로 추모탑에 모여 치르고 있으며 ‘스승 존중의 고장’임을 자부하고 있다.

 

특히 전북은 교권침해 제로지대인 것이 알려지면서 학생인권도 손색이 없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병영 장관은 퇴임한 이후에도 전주의 ‘순직교원추모탑’얘기를 자주했고 지금은 더욱 이를 강조하면서 “전주에 가거든 반드시 추모탑을 찾아봐 달라”고 당부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