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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속칭 「교원정보부」 이렇게 찾아냈다”

“속칭 「교원정보부」 이렇게 찾아냈다”

- 교육부 48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281회) -

○… 본고는 지난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8년 째가 된 본지 김병옥(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 ○

○…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문교부 국정감사 전날 밤 늦게 전화제보

1988년 10월 5일 정권의 치부 드러나

팻말도 없는 밀실 교육민주화 교사 탄압

- 李哲의원 당시 상황 “훗날 교훈되게” 소상히 밝혀 -

29대 김영식 문교장관

 

<전호에서 계속>

당시 서울교육감 증언

 

6공 노태우 정부의 초기에 있었던 전교조 가담 교사에 대한 징계 당시를 전한 김상준 전 서울교육감의 증언은 “아까운 인물(교사)들이 있었다”면서 “건져 보려고 유도심문까지 했었다”는 징계위원들의 후일담에서 여러 정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조직의 힘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참으로 두렵다”고 했다.

 

최후 진술에서 어떤 교사는 “제가 여기 징계위원회에 들어설 때까지는 징계위원 여러분들을 우리의 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여러분은 긴 시간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제가 오해 했었다. 그러나 저는 저의 갈 길을 갈 수밖에 없다하고 나갈 때는 힘이 쭉 빠지더라”고 말했다면서 “순진한 젊은 교사들이 마술에 넘어가 헤어나지 못했고 그러니까 나는 그들에게 미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이 근래 전교조는 특별히 이상 징후가 없다. 그래서 우리 교육계는 대체로 평온하다”고 그날의 일들과 비교했다.

 

 

장관 단명 부른 국감폭로

 

1988년 10월 5일 실시한 당시 국회 문공위원회의 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철(무소속)의원이 폭로한 속칭 ‘교원정보부’사건은 그해 12월4일 개각에서 김영식 문교부장관을 경질시킨데 결정적인 것으로 장관의 단명을 불러왔다.

이철 전 의원은 당시의 폭로에 대해 “감사 전날밤 전화제보로 문교부에 밀실이 있다고 알려왔고 속칭 교원정보부는 이렇게 찾아냈다”고 밝혔다.

 

또 “아부를 서슴지 않던 문교부 공무원들은 막상 문제의 팻말도 없는 조그만 방을 지키면서 서류함 열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1988년 10월 5일 문교부 국정감사 때 이철 의원은 자신이 폭로했던 장면을 “훗날 교훈이 되도록 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밝혔다.

 

 

▲문교부 직원도 잘 모르는 ‘교원동태파악 전담실’

 

1988년 10월 5일 낮 문교부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아, 잠깐만요!”하고 교육민주화운동에 대한 의원들의 열기에 가득찬 질문에 가까스로 답변을 마치고 김영식 문교부 장관이 다음 사항으로 말문을 돌리려는 순간, 말을 멈추게 했다.

미처 고개를 들 틈조차 없이 모두 숨가쁘게 질의 응답을 메모하고 있던 기자들과 문교부 관계자들은 일순 시선을 나에게로 집중시켰다.

 

물론 장관도 나에게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문교부는 이 종합청사의 몇 층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16, 17, 18층을 문교부가 쓰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그날 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으로 쓰고 있던 곳이 바로 16층의 대강당 상황실임을 상기시키면서 장관에게 연속된 질문을 던졌다.

 

이 말이 나오자 긴장의 연속이었던 국정감사장의 분위기는 직전과는 달리 약간 누그러지는 듯이 보였다.

내가 갑자기 핵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문교부 청사 얘기를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 멍해 있던 장관도 친절히 대답했다.

“예, 저희 문교부는 이 종합청사의 16, 17, 18층까지 3개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말을 받았다.

“그런데 15층에도 문교부 소관 사무실이 하나 더 있지요?”

 

장관은 곧장 답을 하지 못한 채 옆자리의 張병규 차관에게 자문을 구하는 몸짓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張차관은 역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다.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재차 다그쳤다.

 

“이 청사 15층에 문교부 업무와 관련된 사무실이 있을 텐데요”

나의 확신에 찬 거듭되는 질문에장관은 급기야 뒷줄에 배석해 있던 국장과 실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제서야 묵묵부답으로 쳐다보고 있던 국·실장 가운데 한 사람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朴용진 장학편수실장이었다.

“예, 자료실로 사용하는 방이 있습니다마는…”

 

그도 마치 자신의 소관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말로 꼬리를 흐렸다.

일련의 뚱딴지 같은 사무실 사용문제가 제기되자 방청석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질문하는 목소리에 강한 힘을 넣었다.

 

“자료실 말고는 분명히 15층에 다른 업무를 맡아 보는 방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여전히 張차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얼굴만 붉히고 있었고 朴 장학편수실장은 답변인지 혼잣소리인지 모를 말로 “그 외 특이한 사항은 없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마이크를 잡아당기며 정색을 하고 마지막 포문을 열었다.

“15층에 朴찬봉장학관이 책임자로 있는 문교부 소관의 사무실이 하나 있지요?”

 

이제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朴 장학편수실장은 몇 차례 판에 박힌 답변을 늘어놓았다.

문교부의 직제와 듣기좋은 업무분장을 얘기하며 어떻게든 의원들을 설득해서 적당히 넘겨보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문교부관계자들의 솔직한 답변을 듣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쉽게 내려졌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추궁해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방의 구체적인 담당업무는 무엇이며 박찬봉 장학관 외에 직원은 모두 몇 명인가요? 그런 식의 우물쭈물한 대답을 할 바에는 차라리 업무일지를 제출하시오.“

 

그 방의 성격과 구체적인 업무까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朴장학관이 책임자로 있는 그 방은 여기 있는 장관도 모르고 있을 뿐더러 문교부 직원 대다수도 그런 방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특수한 곳으로서 이른바 교육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탄압하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