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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강원도 산골짜기 찾아 현광재 짓고 은거

강원도 산골짜기 찾아 현광재 짓고 은거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94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

 

 

하늘과 별을 이고 교육 걱정에 밤새워

5·30교육개혁 ‘2008대입시 개선’ 주도

때가 되면 누군가 떠맡아 이어 받을 듯

 

-후임 장관 10명 매달렸어도 당시 난제 현안 못풀어-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그 이후 11년이 흘러도 난제

 

 

<전호에서 계속>

안병영 장관이 교육부에서 떠난 것이 올해 11년 9개월이다.

 

지난 2005년 1월4일 경질되어 대학(연세대)에 돌아갔다. 그날 밤 교육부 김영식 차관과 실·국장들이 만찬을 함께 나누고 송별했다.

 

그 자리에서 “여러분과 헤어지는 것은 서운한 일이지만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대학의) 연구실이 있어 지금 내 가슴은 무척 벅차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그날 말한대로 대학 강단으로 돌아가 정년을 마치고 퇴임해서 지금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골짜기에 산장(현광재)을 짓고 머물면서 부부가 함께한 것으로 노후를 맞았다.

 

고성군에 가기 전 잠간동안 속초시내 아파트에 살다가 여기까지 와서 도심에 묻힐바에야 서울의 아파트 숲과 뭐가 다르겠는가 생각하고 옮겨간 곳이 원암리 산장이다.

 

역대 교육장관 가운데 서울을 떠나 산골로 간 것은 제24대 김옥길 여성장관에 이어 두 번째이다.

 

김옥길 장관은 1979년 12월14일 취임하여 80년 5월21일 떠나면서 “문경새재의 산막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임식 때 “오늘 이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새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만 듣겠다”고 했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쏟은 것으로 의미가 있었다.

 

지금 안병영 전 장관의 경우도 하늘과 바람과 새들의 노래와 다르지 않을 것에 의미가 있다.

 

안병영 장관 이후 들어온 교육부장관은 모두 10명이다.

이들 중 노무현 정부에서 4명(이기준, 김진표, 김병준, 김신일)이며 이명박 정부의 3명(김도연, 안병만, 이주호)과 박근혜 정부의 3명(서남수, 황우여, 이준식)째이다.

 

이처럼 10년이 넘은 세월에서 10명의 장관이 대학입시 정책과 씨름을 했으나 해결보다 난맥상은 현안이 되고 있다.

 

안병영 장관은 이미 김영삼 정부의 ‘5·30교육개혁’때 기틀을 잡아 주었던 노하우가 있었고 두 번째 입각한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총리 때 ‘2008 대입시 개선’을 주도한 것으로 차별화 된다.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대입시 정책의 핵심 가운데 기업의 사내 대학은 눈길을 끌었다.

 

이는 고교교육의 정상화가 뼈대였던 ‘2008대입시 개선’과 맥락이 같다.

 

더러는 유수한 기업에서 특성화 고교의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졸업 후 채용과 사내대학 입학을 보장한 것으로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현실은 사내대학과 같은 입시 대책마저 증발된 듯 행방이 묘연하다.

그래서 우수한 고교 졸업생의 진로가 막히고 암담해지면서 누가 명문대학에 가느냐가 현안으로 교육 불평등의 해법 찾기에 애를 태우고 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길거리에서 국화빵을 구워 팔아서 학비를 마련했던 고학생이었던 것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한다.

 

 

미국 학제에서 유럽식 관심

 

우리나라의 현행 ‘6·3·3·4제 학제’는 미국식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이 학제로 해방 이래 70여 년을 이어왔고 지속되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정착이 된 또 다른 학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식 학제의 시행과 정착은 미국에 유학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교육학자들의 기여와 의존에 힘입었다.

 

반면, 미국의 대학입시가 우리의 고교생들이 겪고 있는 만큼 난제이거나 현안이 아닌 것에서 아쉬움을 갖게 된다.

 

더러는 더 관심을 돌려 유럽의 학제에서 해법을 찾기도 한다.

 

이 와중에서 안병영 장관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1970년 강소부국인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유학했으며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주목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총리 발탁과 입각에서도 미국 박사가 아닌 것에 후문이 따랐다.

이에 앞서 1995년 12월 어느날 선배 K교수가 전화를 걸어와 사주를 물었다.

 

K교수는 그날 “명리학에 정통한 분과 약속이 있어 운세를 알아보려 한다”면서 “생년월일은 음력으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뒷날 “관운이 왕성, 곧 좋은 일이 있을 사주”라며 “기다려 보라”고 하기에 웃어 넘겼는데 12월 21일 김영삼 정부의 제36대 교육부장관이 되었다. 이를 두고 안 장관은 “운명이라는 어휘 자체가 이미 초월성과 신빙성을 내포하고 거기에는 얼마간 신만이 지배하는 영역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안 장관은 두번째 교육부장관 퇴임 이후 몇 년 전에는 “오스트리아에 답이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고 이를 담은 저서도 출판했다. 그러나 당시의 집권여당과 정부의 실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했다.

 

오스트리아가 강소부국인 것은 부인하지 않으면서 왜 이에 답이 있다고 하는지, 간곡한 소망과 염원에 호응하는 것은 인색했다.

 

반면, 언젠가는 심산유곡에 산장(현광재)을 짓고 하늘과 별을 이고 교육을 걱정하고 있는 원로 학자에게 누군가 다가가서 떠 맡을 것에 기대하게 된다.

 

이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 망치는 학교장은 혼쭐

 

대학입시의 숱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지 못한 고교가 상존하고 있음은 문제이다.

 

정책과 행정은 이를 짚어낼 수 있어야 제격이고 본무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고교들은 입시 정보에 어둡고 내신이 아무리 좋아도 스펙이 약해 불합격의 고배를 안긴다.

때문에 학교마다 교사의 인식변화가 긴요하고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가 철저해야 학생들도 믿고 따르고 신뢰하게 마련이다.

 

특히 사립의 경우 설립자의 육영의지가 실종된 채 시설과 지원이 열악하고 교사와 학생의 활동까지 사비로 감당하는 실정이다. 이에 지방교육자치의 본령이 재확인 되어야 하고 교육감이 직선이면 선거 때 공약한 것을 시행해서 실천할 수 있어야 옳다.

 

학교자치가 교육자치의 풀뿌리로 정착되는 지역이면 학생을 망치는 학교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안병영 장관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실·국장회의를 공개해서 준비 없이 참석하는 것을 막았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지혜를 모으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보관이 정리해서 보고한 교육관련 보도 가운데 초·중·고교의 운영 비리와 대학입시에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는 불합리는 혼쭐나게 닦달했다.

 

공교육의 성패는 대학입시로 가름되지 않는 것을 경고한 셈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에 매달리는 혼돈은 여전히 약도 없고 명의가 없어 되돌아 보게 된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