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교육부 오래 출입한 기자에게 첫 기념패

교육부 오래 출입한 기자에게 첫 기념패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42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도움받고 있으며 널리 읽혀지고 있다. 〈편집자〉…○

 

30년이면 “연금 수급할 햇수” 질문 받고

정진으로 알아듣는 친화력에 공감

벌레가 “한밤에 10리 사흘 기었다”대답

-외고폐지 압력 “이혼은 결혼보다 어렵다” 해법 조언-

김영삼 정부 네번째 임명

3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1995. 12. 21~ 97. 8. 5 재임>

30년 출입한 세월 고무 격려

 

<전호에서 계속>

1996년 1월4일 교육부 시무식 후 안병영 장관은 이영탁 차관과 찻잔을 놓고 새해를 여는 마음을 교감하면서 “올해는 스승상에 걸맞게 사도를 진작해보자”고 의논했다.

 

그리고 “교육부에 오래 출입한 기자도 찾아서 기념해주자”고 했다.

 

이를 위해 당시 이기호 공보관을 불러 “누가 가장 오래 출입했느냐?”고 물었다.

 

공보관은 윗 주머니에서 ‘95년판 교육수첩’을 꺼내더니 164페이지에 수록된 ‘언론기관’을 펼쳐 보이고 일간신문(17)과 영자지(2) TV방송(5)과 라디오 방송(3) 교육주간신문(5) 등 출입기자 32명의 명단과 출입일자를 차례로 짚어 보였다.

그 때만 해도 정부 각 부처에서는 출입기자 명단 뿐만 아니라 출입일자와 언론사의 창립일까지 수록했을 정도였다.

 

교육부도 예외 없이 출입기자의 출입일자를 밝혔고 이에 92년 2월부터 95년에 이어 96년으로 접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1965년 5월15일부터 출입한 기자(필자)가 있었고 한사람 뿐이었다.

이 기록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때까지 계속되었으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부터 없애버렸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정부 각 부처의 기자실을 폐지했고 정부청사 별관에 종합브리핑실을 설치해서 이곳까지만 출입을 허용했다.

 

안병영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제46대 교육부장관으로 임명(2003. 12. 24)되어 두번 장관직을 역임하게 되었으며 경질(2005. 1. 4)되어 떠나기까지 필자와 격의 없이 소통했다.

 

대화 중에 김영삼 정부의 네번째 교육부장관시절 얘기가 섞이고 1996년 1월 시무식 후 공보관을 불러 가장 오래 교육부에 출입한 기자를 찾았던 것을 회고했다.

 

그때 30년째 교육부에 출입한 필자에게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30년 출입기자 기념패’를 주었다.

장관실에서 기념패가 수여되고 실·국장이 배석해서 차를 나눈 기 회에 이영탁 차관이 필자에게 “30년이면 연금을 수급할 햇수에서 2년이 모자란 장기간인데 어떻게 이처럼 오래 출입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건 저도 모를 일”이라면서 “벌레가 한밤에 십리를 기어간다는데 저는 이제 겨우 사흘을 기어온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안병영 장관은 “정진한 것으로 알아듣겠다”면서 웃음으로 받아 넘겨 좌중이 공감했다.

 

 

40~45년 출입 기념 사연

 

그 이후 10년이 지난 2006년 6월25일 노무현 정부의 제48대 김진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교육부 40년 출입기자 기념패’를 받았고 2010년 6월15일 이명박 정부의 안병만 제52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부터 “44년은 넘었으니까 45년 출입기념패를 주고 싶어 드린다”면서 주니까 받았는데 안병만 장관은 2개월 후인 8월29일 경질되어 떠났다.

 

이처럼 안병만 장관이 필자에게 45년 출입기념패를 주기 전의 3월 중순께 대변인을 통해 “장관실에서 차 한잔 나누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고 독대했다.

 

이때 안병만 장관은 “어제 밤 몇 사람이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외국어고교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자 교육부에 40년 넘게 출입한 기자가 동아일보사에서 낸 신동아잡지 2006년 6월호 특집에서 기고한 ‘교육부 장관론’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어 찾았다”고 했다.

 

그래서 “장관은 지금 외고를 없앨 작정이냐?”고 묻자 “국회에서 MB맨인 정두언 의원이 앞장서서 폐지론으로 밀어부치고 여론도 사교육의 진원처럼 몰아세운 상황이라 결단해야 하는데 난감하다”고 대답했다.

 

이에 필자는 “학교를 세우기는 쉬워도 없애는 것은 더 어렵다”면서 “지금의 3부요인 가운데 외고출신이 태반인데 그것만 봐도 고교정책에서 외고에 대한 결정은 가볍지 않을 테니 조심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처럼 질문과 반문이 계속되는 대화에서 잠깐 생각끝에 적절한 비유가 해법일 듯 싶어 “이혼은 결혼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어린 자녀의 불행이 막아지는 경우와 비교해 보라”고 했더니 안 장관은 금새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것 참 묘안”이라며 “올해 교육부 출입(기자)이 몇 년째냐?”고 물었다.

 

“아직 45년은 안되었고 44년은 넘는다‘고 했더니 “그럼 45년 기념패는 내가 드리겠다”면서 ‘지금 쓰고 있는 역대 교육부장관 발자취에서 내 얘기는 언제 나오느냐?’고 묻기에 “연재물이라 빨라도 3~4년 후가 될 것 같다”고 하니까 “궁금해서 물었다”면서 웃었다.

 

그리고 안병만 장관의 출입기념패 수여가 있기 5일 전에 대변인실의 이대영 공보관(후에 대변인 서울부교육감 지금 서울 서초고교장)이 “장관님 지시는 없지만 직접 말씀하셨으니까 기념패를 제작해서 드리도록 하겠다”고 알려 왔었다.

 

이렇듯 교육부의 역대 3 안씨 장관(초대 안호상, 36·46대 안병영, 52대 안병만) 중 두 안 장관으로부터 교육부출입기자 기념패를 받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사연이 깊었다.

 

 

교육부 직원 연일 야근 채찍

 

역대 교육부 장관 가운데 안병영 장관 때 만큼 실·국·과장과 사무관 이하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야근에 이골이 나고 밤

을 낮삼았던 적이 없었다.

 

이는 안 장관의 취임 초가 아닌 중반의 199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안 장관은 현황파악 등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전임 김숙희(34대) 장관이 국회문공위(위원장 조순형)에서 의원들로부터 교육부의 안일무사를 질책받고 “이런 간부들과 어떻게 교육을 쇄신하고 개혁해 나갈 것인지 암담하다”고 했던 답변을 실감하게 된 후부터 단호했다.

 

그 첫 번째 일이 실·국장회의를 전면 공개해서 교육부내 방송을 통해 전직원들에게 장관이 묻고 대답한 목소리를 그대로 듣고 짐작할 수 있도록 공개했고 날마다 업무처리의 부진 사항을 체크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 수립, 내일 아침 출근해서 보고하라”고 엄명했다.

 

때문에 직원들은 소관 업무의 파악에 소홀할 수 없었고 처리능력이 주어진 기능과 역할에 미치지 못할 경우 질책을 면할 수 없게 되자 퇴근하는 시간에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잔무에 매달리는 야근으로 채찍을 삼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