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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노무현 정권의 막내 교육장관으로 입각

노무현 정권의 막내 교육장관으로 입각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414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www.eduki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노무현 참여정부 6번째

50대 김신일 교육부장관

 

<2006. 9. 20~ 2008. 2. 5 재임>

 

<전호에서 계속>

김병준 장관이 떠난(2006. 8. 7) 후 43일 만인 2006년 9월 20일 제50대 김신일 장관이 임명되어 취임했다.

이처럼 한달이 넘게 장관자리가 공석으로 비는 동안 이종서 차관이 대행한 것으로 기록을 남겼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이 하루는 예고도 없이 차관실에 찾아와 “너무 오래 장관이 공석이어서 대행하느라 수고가 많다”면서 “미안하고 애쓴 만큼 위로와 격려받아 마땅하므로 들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종서 차관을 장관으로 승진시켜 임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뒷말이 따랐다.


이런 와중에 김신일 장관이 임명되어 취임하자 교육부 안팎의 관심과 반응은 출신성분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김신일 장관은 1941년 2월 27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1959년 청주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사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해서 1963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 1965년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와 같이 서울사대(대학원 포함) 출신으로 도미해서 1978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 이후 1980년 서울사대 교육학과 부교수로 임명되어 정진해서 교육학 교수로 명성을 날렸다.


1993년 서울사대 교육행정연수원장일 때는 전국 초·중·고 교장 등 연수생과 낯을 익혔고 2003년까지 재임하면서 외연을 넓혔다.


1994년부터 98년까지 4년동안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을 역임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초까지 이어졌다.


특히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은 2002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직과 겸직해서 지속했다.

김 장관은 학회활동에도 발길을 넓혀 1999년 한국사회교육학회장과 한국평생교육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2000년엔 과외교습대책위 위원 등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2년부터 2003년 교육부의 대학설립심사위원장을 지냈고 2005년까지 시·도교육청평가위원장이었다. 2004년엔 한국교육학회장으로 선출되어 2006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때 교육인적자원부의 평생교육정책자문단장과 자립형사립고교제도협의회 위원장으로 참여했다.

현행 자사고의 뿌리와 새싹을 키워준 셈이다.


이처럼 교육부 친관변학자로 활동한 역량에 힘입어 노무현 정부의 여섯번째 막내벌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자리에 올랐다는 것으로 평이 따랐다.


김신일 장관은 퇴임 후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MB정부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다.


당시 교육부는 제53대 이주호 장관이었다.


저술한 대표도서는 ‘교육사회학(1985·1993·2000·2009)’ ‘시민사회의 교육학(1995)’ ‘평생교육학(2000·2009)’ ‘학습사회의 교육학(2005)’을 뽑고 있으며 신앙은 기독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5년 단임 임기 중 1년 6개월여 밖에 안남은 정권 말기에 임명된 김신일 교육장관의 나날은 순탄하기 어려웠다.


전국의 중·고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그해(2006) 7월 31일 실시한 시·도교위의 교육위원 선거를 비롯해 교육부장관의 경질에 따른 대학진학제도 변경 우려가 팽배한 것으로 학교마다 계기교육을 실시해서 교사와 학생·학부모간 의식조화가 시급해졌다.


특히 2006년 7월 초의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 뉴스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김신일 장관이 취임한 가을(9월 20일)에는 가까운 일본과 동맹관계인 미국의 민감한 반응에서 중고교생들의 시각도 더욱 깊이를 달리했으며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힐난이 따랐다.


2016년 7월31일 치른 첫 시·도의 교육위원 선거도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것에 교육자가 정년으로 떠난 후 마지막 봉사의 기회로 참여해서 교육자치발전에 공헌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무보수 명예는 말 뿐이었고 유급직인 것에 새삼 논란이 따랐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