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정책토론장

[시사해설] 일본의 고독한 기자

[시사해설] 일본의 고독한 기자

 

24년 전 위안부 첫 보도 후 고초

날조 주장 세력과 맞서 싸워

진실 밝히기 위해 쓴 기사 때문

 

지난 8월13일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降·57세·남)씨는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의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묘지 앞에서 저널리스트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착실하게 마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4년 전인 19991년 아사히신문 한국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김학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받아 처음으로 보도했던 일본인 기자였다.

 

그 후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일본의 극우세력으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았고 기자를 그만 두게 되는 것은 물론, 대학의 교수직에 옮겨가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딸까지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가 쓴 아사히신문 1991년 8월11일자 보도 기사는 ‘전쟁 반세기 무거운 입 열리다’ 제하에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으로 상세히 전했다.

 

그 후 사흘 만에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을 밝히면서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200여 명의 피해를 전세계에 알리게 되면서 우에무라 기자는 일본 극우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이들 극우세력은 “기사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정신대라는 용어를 썼다”고 트집을 잡아 “날조 기자”라며 매도했다.

 

이에 “위안부를 지칭하는 용어가 일반화 되지 않았던 탓에 일본의 다른 언론사들도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용했다”고 해명했으나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2월에는 일본의 한 주간지가 그를 겨냥해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여대 교수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뒤 테러협박까지 받았고 전임교수로 임용할 예정이던 고베 쇼인여자대학에 “취소하라”는 항의 메일과 협박 전화가 몰리면서 교수로 전직하는 것까지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 비상근 강사로 출강한 홋가이도 호쿠세이대학에도 협박장이 날아들고 “나가라, 매국노! 일본에서 돈 벌지 말고 좋아하는 한국으로 가라”는 등 그의 딸까지 극우세력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들은 딸에게 “어디로 도망가든 죽이겠다. 반드시 죽이겠다”고 쓴 엽서까지 보내왔다.

 

우에무라씨는 “다시 기자가 되어도 똑같은 기사를 쓰겠다”고 굽히지 않고 있다.

 

그 기사 덕분에 수많은 응원자를 만났고 세상에 위안부 문제를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지난 8월13일 기자회견 때도 “나는 한국을 위해 위안부 기사를 쓴 것이 아니었다”고 밝히면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썼을 뿐”이라고 단호했다.

 

이것이 기자의 진수이며 언론의 사명임을 재확인 시켰다. <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