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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얽히고 설킨 ‘2008 대입시’ 시행방안 비화

얽히고 설킨 ‘2008 대입시’ 시행방안 비화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87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학생부 신뢰도 보완 반영비중 더 높여

사회통합 유도할 수 있게 전형도 활성화

수능 등급화로 개선 선발 특성 전문화

-성공 필수조건으로 ‘교발협·입학사정관’ 제도화-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두 번 장관다운 투지와 면모


<전호에서 계속>

김영삼 문민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안병영 장관은 누가 봐도 ‘두 번 장관다운 의지와 면모’가 돋보인 것에 화제가 되었고 일화를 남겼다.


특히 김영삼 정부의 수월성과 노무현 정부의 형평성에서 교육부장관의 입지는 말처럼 수월치 않았다.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교육장관이 되어 취임하던 날 출입기자 간담회 때 “절실히 필요한 정책임에도 이념이나 정치적 이유로 추진이 미뤄지는 경우 그것을 찾아 과감히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취임 후 추진에서 ‘교원평가’는 대표적 사례였다.


2004년 초 당·정·청은 물론 교육부 고위 관리와도 사전 조율없이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교원평가’에 대한 시행의지를 표명했다.


이때 “우리나라 교원의 질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원평가의 범위와 대상에 예외를 두지 않은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전교조의 저항이 가장 치열했고 이는 교사평가에서 민감하게 반발했던 것은 기억에 새롭다.


교감, 교장, 전문직 등은 숨을 죽이고 관망했고 대학에서는 “설마 우리까지…” 반응한 것으로 주목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것이 안 장관에게 미친 영향에서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 1월부터 시작된 교원평가에 대한 정책연구가 크게 진척되어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 안 장관은 경질되어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 교원평가 논의는 오랜 동면기에 접어들었다.


이어서 수능은 1등급 4%와 함께 시행에서 난제였다.


안 장관은 “당연히 4%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 최소한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사표 제출로 배수진을 치고 맞섰기 때문에 관철할 수 있었다.


2004년 10월 26일 국회에서 이에 대한 마지막 당정회의가 열렸다.


회의 직전, 당측의 유력한 인사가 안 장관에게 다가와 “어제(2004. 10. 25) 있었던 얘기(사직원) 잘 들었습니다. 실제(대통령 재가)로 이미 결론이 난 셈이니 더 이상 격론을 벌이지 맙시다. 그리고 오늘 당정협의도 쌍방이 당초의 입장만 피력하는 수준에서 모양새만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종용했다.

이날 당정회의는 말 그대로 형식만 갖추고 곧 끝났다.


‘2008 대입제도 개선안 ’확정

2004년 10월 27일, ‘2008 대입시안’ 발표 전날, 안 장관은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물밀듯이 감회가 밀려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동안 교육부와 함께 짊어져야 했던 짐이 너무 무거웠고 힘겨웠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나마 1등급 4%가 관철된 것은 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노무현 참여정부를 위해서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에게 말했던지 기억이 분명치 않았으나, 청와대인가 당의 핵심인사 한 사람에게 안 장관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정작 이 (노무현)정권을 지키려는 사람이 당신인지, 나인지 알 수 없군요. 왜 이렇게 묘혈을 파지 못해 야단들 입니까?”


교육의 전문성과 민심의 저변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념과 좌파적 클리쉐에 집착하는 그들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한심했던 기억으로 전하고 있다.


그날 밤 안 장관은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머리는 명경처럼 맑았다고 한다.


따져보니 2004년 8월 26일 개선안 시안을 발표한 후 이미 2개월이 넘었을 때였다.

그 기간이 천 날처럼 길었고 마음은 지울 수 없게 멍이 들었다.


무엇보다 안 장관을 끝까지 믿고 따라준 교육부 직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치솟았다.

이렇듯 안 장관은 2004년 10월 28일 마침내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게 되었다.

안 장관은 이 방안에서 새 대입제도의 개선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의 핵심은 i) 학생부의 신뢰도와 그 반영비중을 높이고, ii) 수능시험제도를 개선하고 이를 등급화하며, iii) 학생선발의 특성화 전문화를 더욱 강화하고, iv) 사회통합을 유도할 수 있는 전형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고 했다.


안 장관은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이제부터 필요한 것은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이므로, 각 교육주체나 이해 당사자들도 거시적이고 대승적인 자세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적극 동참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안병영 장관이 이와 같은 핵심내용을 발표하면서, ‘2008 대입시안’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강조했던 것은 바로 “교육발전협의회”와 “입학사정관”의 제도화였다.


전자는 입시를 비롯한 주요 교육현안에 대한 주요 교육주체들 간의 협의적 해결을 겨냥한 사회적 파트너십과 사회협약 시스템이었고, 후자는 입학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입학사정관을 통해 대학입학전형 업무의 전문성과 자율성, 그리고 입시와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강화하려는 제도이다.


당시 밝힌 양자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발전협의회

원래 대학입시라는 제도가 전국민의 관심사이고 각종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기 때문에 그것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주요 교육주체들 간의 불신과 갈등해소, 그리고 상호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대학과 고교를 주축으로 학부모, 언론, 시민사회, 그리고 정부인사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의 구성이 필수적이었다.


우선은 입시제도의 연착륙에 주안점을 둔 것이지만, 이 협의체는 입시 이외의 주요한 교육쟁점에 관한 갈등조정과 문제해결에 큰 기여를 하리라 믿었다.


대입시와 연관하여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그 중요 당사자인 대학과 고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는 기구가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유능한 인재의 공정선발과 고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주요 이해당사자 간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은 더할 나위없이 시급하고 긴요했다.


이 문제를 종전처럼 교육부가 일일이 규제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대학자율에 맡겨도 안 된다는 것이 평소 안 장관의 생각이고 소신이었다.


더욱이 ‘2008 대학입시제’는 입시의 큰 방향만 정한 것이지 실제로 내신, 수능, 논술 등의 구체적 관계를 설정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후에 예견되는 주요 쟁점들과 더불어 ‘학생부의 신뢰성 제고’, ‘고교와 대학 간의 상호 협력’ 등과 연관하여 풀어야할 과제가 너무 많았다.


이 밖에도 ‘교육격차 해소’와 같은 중·장기적 현안들도 여기서 논의하기로 예정되었다.


안 장관은 이 사회적 파트너십과 사회협약을 바탕으로 하는 이 협의체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교육갈등 해소와 교육문제 해결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했다.



입학사정관제는 그간 종종 논의가 있었다.


교육혁신위원회와 교육부도 대입제도 개선을 위해 이 방안의 유용성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