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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교육소식

[잠망경] 3분의 1만 부른 독일 愛國歌

[잠망경] 3분의 1만 부른 독일 愛國歌


1~2절 나치 때문


1922년 바이마르공화국에 의해 채택된 독일 애국가는 3절까지 다 부를 수 없는 한 맺힌 사연으로 가슴앓이.

1절은 본래 ‘독일의 노래’였고 가사에서 ‘모든 것에 우선한 독일’이라고 자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제막식 때 히틀러가 스타디움에 들어서자 관중이 열창한 것은 1절이었고 ‘모든 것에 우선한 독일’이란 대목에 더욱 힘주어 열창.


2절은 독일여성의 충직함과 와인 등을 칭송한 내용으로 이를 높이 평가한 긍지에서 애국가가 되었음에 2차 대전 종전 후 연합국은 나치의 상징으로 여겨 금지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


공식행사 때 3절만


패전 후 동·서독으로 분리되었을 무렵 콘라트아데나워 서독 총리가 당시 테어도어 호이스 대통령에게 애국가 부활을 요청 “지정해 달라고”고 하면서 우파가 중심되어 1절부터 3절까지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으나 당초 ‘공식 석상에서 3절만 부르는 조건’을 제시한 것에 따라 처음 ‘독일의 노래’로 다시 애국가가 된 것.


헌소 결정 회복 좌절


3절에 담은 가사의 내용은 단결과 정의 자유를 함축한 것으로 1797년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이 황제 생일에 곡을 붙여 바친 것에다 1841년 독일의 시인 아우구스트 하인지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이 가사에 자유 평등 박애를 보태 채택.


이에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1990년 “3절 만이 국가로 지정해 부를 수 있다”고 결정, 선포.

이에 따라 가사 중 1~2절은 부를 수 없고 3절만 부르게 된 나치의 인과 응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