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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처음이자 마지막 남북한 교과서 전시회

처음이자 마지막 남북한 교과서 전시회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52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도움받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 〈편집자〉 …○

 

북측 인민학교용 92종 124책 보내와

교과서 용지 인쇄기 지원 교원교류 추진

남측 민족동질성 회복 평화통일 염원

-정주영 회장 소떼 몰고 입북 고향찾은 해빙무드-

김대중 정부 첫번째 임명

38대 이해찬 교육부장관

<1998. 3. 3~ 99. 5. 23 재임>

교과서 저작 자격조건 폐지

 

<전호에서 계속>

1998년 10월29일 이해찬 장관의 결심과 단안으로 개최 했던 ‘제1회 국내외 초등학교 교과용도서 전시회’는 건국 이래 처음 보게 되었다.

 

이날 행사는 그 해(98년) 7월15일 통일부에서 북한교과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에 뒤를 이은 것으로 북한인민(초등)학교 교과서 92종 124책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남·북한 관계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에 들어갔으며 북한에서 보내온 인민학교(초등) 교과서를 남쪽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등 해빙무드였다.

 

남북이 분단된 이래 이 때처럼 민족의 동질의식을 회복하면서 평화통일을 교육에서 맡아 자임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특히 한국교총은 일본 도쿄에서 북한의 교원단체 대표들과 비공식 접촉을 통해 남북한교육자대회 개최 가능성을 타진했고 불가능하지 않다는 심증과 추진가능성에 고무되었다.

 

당시 이를 주도한 하용도 사무총장의 타계로 지금은 그 때 있었던 비화를 듣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전교조에서도 교과서 용지 보내기 운동 등 인쇄기를 보내는 일까지 추진했고 대표가 북한 측에 전달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도 더 이상 진척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절 그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게 된 현실에서 되돌아 보게 된다.

 

1999년 1월1일 유럽연합(EU)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11개국이 동맹으로 단일 통화인 ‘유로’를 도입, 오늘에 이른다.

 

그해 2월9일엔 문화관광부에서 정부 공문서와 도로 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도록 하고 시범 실시했다.

교육부는 1999년 1월부터 발행되는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한 새 교과서의 지질은 종전 김영삼 정부의 IMF 외환위기 때 재생용지에서 고급서적지로 바꾸었다.

 

이때 초등학교의 교과서부터 표지는 엠보싱240g/㎡, 본문도 고급서적지를 쓰게 했고 중고등학교용 표지는 엠보싱 220g/㎡, 본문 서적지 70~80g/㎡로 고급화 했다.

 

또 중·고교의 1종과 2종 교과서를 새롭게 구분 고시(1998~17호)하고 중학교 1종 23책 2종 33책, 고교 1종 15책, 2종 66책, 전문교과 1종 338책, 2종9책을 편찬토록 했다.

 

당시 이해찬 장관이 단안을 내린 것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에서 돋보었다.

 

제16차 개정을(대통령령 제16040호) 통해 동 규정 제15조의 저작자 자격조건을 삭제했고 2종(검정)도서 유효기간(제22조)도 폐지했다.

 

아울러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한 중등 2종 교과용도서 검정 실시를 공고했다.

 

이때 중학교 65종, 고등학교 125종으로 출원 자격은 2년간 20종 이상 발간한 실적이면 가능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18조에 명시한 검정정수수료를 인상하고 1학년 한 차례 심사에만 적용했는데 영어 192만 원, 수학 156만 원, 사회 192만1천 원이었다.

 

 

교육부 세출예산 감액 타격

 

세계인구가 60억 명을 돌파한 1999년의 교육부 상황은 이에 대처할 수준의 새로운 교육발전 계획이 시급했다.

이에 이해찬 장관이 서둘러 그 해 3월까지 “5개년 계획(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고 간부회의에서 다그치며 촉구했다.

그러나 교육부 밖에서는 개각설과 함께 교육부장·차관도 경질 가능성에 점을 치고 있었다.

 

특히 1999년도 정부예산에 반영된 교육부소관 세출예산은 이해찬 장관팀(차관 조선제)이 추동력을 갖기 어렵게 전년(98년) 대비 편성에서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다.

 

99년도 교육부 예산의 세출은 일반회계 11조1천3백92만7천4백만 원, 특별회계 6조4천2백10만2천 원으로 총계 17조5천5937천6백만 원이었고 전년보다 겨우 0.4% 증액(732억7천3백만 원)했다.

 

이는 세입이 2.1% 증액한 것과 대조적으로 일반회계에서 7.6%(9.171억1천400만 원) 삭감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세출의 경상사업비가 1765억7백만 원으로 전년도의 2천1백3억2천7백만 원 보다 338억2천만 원 줄어 16.1% 감액됐다.

 

이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까지 99년은 8조3천63억5천200만 원으로 98년의 9조3240억4천800만 원 보다 1조176억9600만 원 줄어든 10.9% 감액이었다.

 

IMF 환란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이 줄어든 것은 세수결함에 원인이 있었다고 해도 부처 단위의 세출예산확보가 증액으로 돌아서기 어려운 상황은 장관의 정치적 입지에서 타격이 되는 소지였다.

 

다행이 특별회계의 지방교육양여금이 전년보다 1천148억4천100만 원 증액되면서 4조6917억3200만 원으로 (2.5%) 늘었고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도 7천억 원으로 전년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이처럼 교육부 예산과 시·도교육청의 지방재정에서 경상교부금이 전년도 보다 10.7% 줄었고 증액교부금은 42.3% 감액된 상황으로 1999년초반은 이해찬 장관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대통령 비전과 리더십 영향

 

이해찬 장관의 임명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과 리더십이 끼친 영향은 충분한 재량권 행사의 허용으로 역량평가에서는 결정적이었다.

 

이는 최근 발간되어 알려진 김하중 전 통일부장관의 회고록에서 잘 드러난 대목이다.

 

정통 외교 관리인이었던 김 전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관찰한 기록이었고 대통령 취임 후 첫 비서실장은 노태우 정부의 정무수석이었던 김중권씨를 임명한 것에서 특이하다고 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이 달랐을 뿐 아니라 경북 울진 출신으로 전남 신안군 하의도 출신인 김 대통령과 태생도 달랐음에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기에 앞서 의중을 물었을 때 두 번씩이나 고사한 것을 삼고초려해서 중용한 것은 동서(영호남) 화합차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이해찬 장관의 교육부 인사와 대조해 보는 사항으로 민감했고 견해에 따라 평가도 달랐을 것이 감안되었더라면 장관 재임이 더 길어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되지 못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전 정권의 김하중 외무부장관 특보를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임명하고 대통령 면담은 부속실이 아닌 의전비서관을 통해서만 신청이 가능하도록 일원화 했다(증언76~77쪽)고 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의전비서관이 자신의 심중과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면담에 차질을 빚은 경우에도 오히려 “지금 누가 나한테 와서 내가 지시한 것을 몇 번이나 반대하겠느냐?”면서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으면 꼭 그렇게 해줘요. 아니면 아니라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그래야 내가 알 거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무엇이 잘 못됐는지를 알고 하는 게 중요하니까, 말하기 좀 어렵더라도 꼭 이야기 해 주기 바라오(증언 114쪽)”하면서 간곡하게 당부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은 15년 전의 일이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었던 국민의 정부 시기 교육부장관에게도 미쳤을 가능성은 짐작해 보기 어렵지 않다.

 

냉엄하고 직선적인 이미지였던 이해찬 장관의 스타일은 직접 겪어본 사람이면 누구나“그렇지 않다”고 서슴없이 말했고 연극 ‘어머니’를 관람할 때는 손수건을 꺼내 몰래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것으로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칠갑산(충남 청양)인걸”로 평판이 따랐다.

 

이 곳은 이 장관의 태생지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