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한해 8개월 동안 長官 4명 바뀐 악순환

한해 8개월 동안 長官 4명 바뀐 악순환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62회) -

○… 본고는 50년 넘게 교육정책 산실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자료제공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게 한다. 〈편집자〉…○

 

오면 가는 날 점쳐보기 일쑤 권위 퇴색

1~8월 일손 안잡히다 9월부터 안정

次官까지 3명 잦은 이취임식에 실소

-남북 ‘6·15선언’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정부 5번째 임명

42대 이돈희 교육부장관

<2000. 8. 31~ 2001. 1. 28 재임>

長官자리 延大서 서울大로

 

<전호에서 계속>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 2000년은 1월부터 8월까지 여덟달 동안 교육부장관이 4명 바뀐 것으로 교육사상 전무후무했다.

 

그 해 8월29일 송 자 장관이 재임 23일 만에 경질되어 떠나면서 후임으로 서울사대 이돈희(교육과정)교수가 제42대 장관으로 임명되어 8월31일 취임했다.

 

이처럼 2000년 한해 동안에 교육부 장관은 ▲첫 번째 1월13일 김덕중 장관(39대)이 떠났고 ▲두 번째 문용린 장관(40대)이 1월14일 취임하여 8월6일 경질되었으며 ▲세 번째 송 자 장관(41대)이 8월7일 들어왔다. 8월29일 바뀌어 나갔다.

 

▲네 번째 이돈희(42대) 장관은 8월31일 취임했다.

뿐만 아니라 2000년의 교육부는 장관만 네 차례 경질되지 않고 차관도 세 번 바뀌었다.

 

▲2000년 1월26일 이원우 차관(41대)이 떠나면서 ▲두 번째 김상권 차관(42대)이 1월27일 임명되어 5월31일 4개월 만에 바뀌었으며 ▲세 번째 최희선 차관(43대)이 6월1일 취임하여 재임하면서 송 자 장관의 이임에 이어 신임 이돈희 장관을 맞이 하게 되었다.

 

최 차관은 2002년 3월 말까지 머물렀다.

이와 같이 교육부는 2000년 후반(9월)에 들어서면서 서울사대 교수 출신 장관과 인천교대 교수 출신을 차관으로 발탁, 기용해서 재임하게 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이 때 교체된 4명의 장관 가운데 두 번째인 문용린 전 장관은 서울사대 교수(교육심리학)로 돌아가 65세 정년까지 재직하였으며 그 이후 2012년 12월20일 치른 대통령선거 때 서울시교육감 보선에 출마해서 당선하고 직선 제1기의 첫 공정택 전 교육감의 1차 보선 당선자인 곽노현 전 교육감의 당선 무효에 따른 2차 보선의 잔여임기인 2013년 6월30일까지 6개월10일 동안 재임했다.

 

그리고 2013년 6월4일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된 제2기 직선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해서 고승덕·조희연(당선자)후보와 겨루며 선전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들게 되었다.

 

문 전 교육감은 낙선했어도 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을 보전 받았지만 선거운동기간 중 ‘보수단일후보’임을 내건 것이 검찰에서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불구속 기소 후 재판에 회부하고 지난 4월30일 서울형사지법 1심 판결에서 200만 원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것에 항소해서 계류중이다. 이는 장관 경력 교육감의 첫 사례이다.

 

 

교육과정 교과서 제도 점검

 

이돈희 장관은 취임하기 바쁘게 초·중등교육과정 및 교과서 발행 상황과 교과서 제도의 문제점을 점검, 확인하고 개선토록 정상화하는 일부터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남·북한 정상(김대중 김정일)이 만나 ‘6·15선언’으로 평화무드를 조성했고 9월22일 재일조총련동포의 첫 고향방문단 입국을 위한 대비가 한창이었다.

 

이 장관의 취임 1개월 13일째인 10월13일 노벨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확정, 발표하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이돈희 장관은 그 해 3월22일 전임 문용린(서울사대 교수출신) 장관이 공고한(교육부 제2000~23호) 재외국민을 위한 국내 교육과정 운영규칙 중 개정령 공고에 이어 10월1일 ‘제7차 교육과정지원장학협의단’구성(교육부 훈령 제610호)과 ‘제7차 교육과정의 성공적 정착 목적 및 운영 규정’을 고시했다.

 

특히 교과서 발행 이면에서 파생된 문제점은 2000년 1월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한 2종 교과용 도서의 검정 일정표를 발표할 때 투명성을 제고한 정황에 비추어 소홀히 할 수 없었고 2000년 3월2일 교육부가 교과서 편찬제도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드러난 학교현장의 편찬 가능도서(지역 교육청별 조사)와 학교별 조사로 알게 된 단위학교 편찬 자유발행 도서의 가능 대상까지 매듭지어야 할 단계였으므로 신중히 처리했다.

 

또 2000년 5월13일 확정했던 교육부의 교과용도서 편찬을 위한 정보통신기술(ICT)활용 내용이 반영된 지침(교과 81160-302)을 보완했다.

 

2000년 9월14일 ‘한국교과서연구원’ 명칭을 ‘한국교과서연구재단’으로 개칭했고 10월1일부터 재단으로 하여금 교과용도서의 공급 대행업무까지 맡아 개시하도록 조치했다.

 

이어서 2001년 1월18일 교육부가 초·중·고교용 교과서를 집계한 결과 2,199종이었고 총 생산 부수는 1억270만부였다.

이는 막대한 이윤이 걸려 있는 것으로 학년도별 교과용도서의 국검정 발행은 2000년 2,565책, 2001년 2,460책 계획하고 있었다.

 

2000학년도의 경우 국·검정 교과용도서는 초등 501책, 중학교 488책, 고등학교 1,099책, 유치원 12책, 특수학교 465책으로 합계 2,565책이었으며 2001학년도는 초등 363책, 중학교 540책, 고등학교 1,214책, 유치원 12책, 특수학교 331책으로 합계 2,460책이었다.

 

이 밖에도 2000학년도 제7차 교육과정기의 검정교과서 개편과정은 그 해 1월24일부터 31일까지 제1차심사본을 접수해서 9월20일 최종 합격본을 공개했으며 검정 일정을 투명하게 공고한 것은 교과서 편찬사상 처음이었다.

 

2000년 3월14일 전임 문용린 장관 때도 중학교 1학년용 검정 교과서 1차 심사결과를 발표했으므로 이에 뒤를 이어 다음(2001.19)해의 중학교 2학년용과 고등학교용 검정교과서 심사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당시에도 필자는 교육부 출입기자였기 때문에 발표된 자료를 전량 확보해서 당시, 장관의 발자취 추적에서 인용하고 내용을 가감 없이 밝힐 수 있어 자부하게 된다.

 

2000년 3월14일 중학교 1학년용 2종 도서의 검정교과서 1차 심사 결과 합격본은 총 105책으로 사회6, 사회과 부도6, 수학가·나 26, 과학7, 기술·가정12, 체육8, 음악7, 미술7, 영어13, 한문7, 컴퓨터3, 환경3책으로 34개 출판사가 출원했다.

 

2001년 1월19일 중학교 2학년용 검정교과서 1차 심사 결과 발표는 29개 출판사에서 출원한 115책 중 90책으로 합격률은 78%였다.

 

또 이날 발표된 고등학교용 검정교과서 1차 심사 결과는 79개 출판사에서 출원하여 44개사만 합격하고 35개사는 탈락해서 합격률 약 50%였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