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사회문제 현안 중 교육과제 최우선 강조

사회문제 현안 중 교육과제 최우선 강조
- 교육부 48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271회) -
○… 본고는 오는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로 활동 48년 째가 될 본지 김병옥(
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 ○
○… 기고해 실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학교주변 정화 청소년 교육환경 개선
대통령취임준비위의 국정 방향에 무게
교육통해 여성 지위향상 등 과제 소화

- 4대 국정지표에 담았던 ‘교육창달’ 쉽지않아 -

29대 김영식 문교장관
<1988. 2. 25~ 88. 12. 4 재임>

사회문제 중 교육과제 개선

<전호에서 계속>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영세상인을 보호한다고 명시했다.
세번째, 주요 사회문제의 개선은  국민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하고 당면한 교육과제를 개선한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의 교육과제 개선은 취임 2년차 문교부장관의 연두 업무보고회를 한국교총 강당에서 갖고 청와대 요리사를 동원, 교총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달랐다.

김영식 장관이 떠난 이듬해 정원식 장관의 첫 업무보고를 받았을 때 일이었다.
6공 노태우 정부의 사회문제 중 교육과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청소년 정책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앞서 노 대통령의 취임 전 ‘민화위’에서 채택, 건의했던 것으로 문교부의 주요 현안이었다.
청소년 교육환경을 적극 개선하고 여성 차별을 철폐하는 등 여성의 지위향상은 교육을 통해 펼쳐 심어가도록 했었다.
이는 곧 교원의 성비균형을 깨고 교사양성정책에서부터 남·여 비율없이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것에 무게를 담았다.

그 이전까지 전국의 국립사대와 교대입학에서 3대 2의 비율로 남학생 우위였고 교사 임용이나 현직 초·중등교원의 교감·교장승진 및 교육전문직 선발에까지 남성위주로 여교원을 차별했다.

또 체육교과의 경우 여교사 보다 남교사 우선으로 성비적용을 구실로 삼았고 숙직업무 때문에 남 교사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했다.

한편, 청소년의 교육환경개선은 학교 주변의 유해업소 정비 등 기존의 조치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대신 행정의 구호나 정책에서 역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개선될 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교직의 성비 때문에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는 데 저해가 된 것으로 교대와 사범대학의 신입생 선발을 성적순으로 강화해서 전국이 공통으로 여학생 수가 급증했다.

제주도는 교대 입학에서 남학생이 한사람도 합격하지 못한 때가 있었고 교감·교장 승진에서 여교원이 한사람도 없게 되면서 교대는 남학생이 없고 학교는 여교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교대 입학은 성적순에 의한 결과였고 여 교장은 교감 자격강습부터 차출에서 차별된 것이 원인으로 3다도 중 여다의 고장답지 않았다.
 

노대통령 취임 준비위 얼굴들
제13대 노태우 6공 대통령의 취임 준비위원회는 1988년 1월 18일 삼청동 금융연수원 건물에 사무실을 낸 것으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인수위와 다르지 않았다.

위원장은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이춘구 민정당 의원이 맡았고 준비위원으로 최병렬, 현홍주, 이진, 김종인, 김중위 민정당 의원을 임명했다.

이에 강용식, 김학준 의원이 추가되었다.
노 당선인은 준비위원회에 “늦어도 2월 중순까지 정부 조각 및 국정운영 기본 계획을 수립해서 내 놓으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새 대통령상 정립을 위한 보고서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과 내각·정당·국회·국민과의 관계설정과 6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 및 국정운영 방향도 마련토록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황해도 출신 홍성철씨가 낙점되었다.

지역편중 우려없고 인맥형성을 하지 않을 것이란 평에 따랐다.
조각을 위한 인선은 정부 부처와 각 기관의 협력을 얻어 광범위인사자료를 수집했다.
노 대통령은 후에 “이를 바탕으로 총리와 각료 후보를 인물별로 분류해서 각종 참고자료와 대조하면서 정리해 나갔다”고 밝혔다.

총리는 3~4명으로 압축된 후보 중 자신의 고향인 대구·경북출신은 배제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이현재 서울대 전 총장을 내정하고 홍성철 비서실장을 집으로 보내 승낙을 받아왔다.
그리고 내각 인선도 매듭짓고 문교장관은 김영식 한국교육개발원장을 확정했던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힌 대통령취임준비위의 역할은 6공의 국정방향을 잡는 데 기본이 되도록 미리 지침을 내린 것에 근거했다고 한다.

그 때 지침은 6개항에 달한 것으로 첫째가 일체의 권위주의 요소 제거였다.

이를 위해 ①청와대 기구개편 고려 ②대통령 의전과 언행개선 ③모든 행사의 형식과 경직요소 제거 ④언론관계 개선(부드러운 접촉) ⑤청와대 개방이다.
두번째는 민주·통일, 균형발전, 교육창달 등을 중점으로 하는 국정지표의 확정이었다.
이는 4대 지표로 집약했다. 1988년 5월 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지시된 것은 이의 압축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