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정책토론장

[시사해설] 서울 역대 敎育監 조명

[시사해설] 서울 역대 敎育監 조명

 

민선 임명직 거쳐 직선까지

정권의 일몰따라 얼룩 반세기

20대에 이른 59년 우여곡절

 

서울특별시 교육감자리 만큼 특별한 것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에 화제가 되고 있다.

 

교육자치제가 처음 실시된 5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아홉명이 거쳐갔고 스무명 째 앉아 있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으로 좌불안석이다. 명암이 엇갈린 역대 교육감 20명의 59년을 차례로 되돌아 본다.

 

▲초대 김영훈 1956년 10월2일 교육자치제 도입으로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그해 11월24일 초대 교육감으로 선출되어 취임하고 1960년 4월까지 4년 임기동안 재임했다.

 

최근 비리의 입길에 오른 영훈국제중학교 등 설립자였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후계의 잘못으로 오명이 된 것에 뜻 있는 원로교육자들이 실망하고 있다.

 

▲2대 정의택 1960년 5월13일 취임해서 이듬해 5·16쿠데타로 교육위원회의 기능 정지 및 해산에 도중 하차했다.

이 때 헌정이 중단된 것이다.

 

▲3대 박현식 61년 6월3일 박정희 군사정부의 임명직으로 취임, 64년 1월까지 재임했다.

군부출신이었다.

 

▲4대 김원규 64년 1월1일 군정을 민정으로 이양하면서 교육자치제 부활로 2월4일 임명, 취임했으나 65년 7월 임기에 관계없이 밀려나가듯 떠났다.

 

▲5대 최복현 65년 8월4일 박정희 정권의 임명직으로 취임한 뒤 4년 재임했다.

당시 임명절차는 시·도교육위원회 천거로 시·도지사의 복수추천자를 문교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이 과정에 중앙정보부의 시·도지부가 신원조사 형식으로 개입한 것은 관행이었다.

 

▲6대 오경인 69년 8월4일 문교부 장학실장에서 임명되어 1년 3개월 머물다 떠났다.

 

▲7~8대 하점생 1970년 11월4일 문교부 장학관 출신으로 충남도교육청 학무국장서 임명, 4년 임기 후 73년 9월29일 8대 교육감으로 연임되었으나 77년 여름 초등학교에 급식한 삼립빵 식중독 사건으로 인책, 사임했다.

 

▲9대 이창갑 77년 9월29일 임명되어 4년 재임했고 중부교육청 증설 및 시교육청의 현 청사를 81년 8월24일 준공하여 여의도 임시 청사에서 이전했다.

 

▲10대 구본석 81년 9월29일 전두환 신군부정권 때 임명되어 4년째 재임 중 ‘경기여고생 성희롱사건’에 인책되어 창덕여고 교장으로 좌천되었으나 당시 대통령 딸이 재학중이어서 청와대 초청 등 표창받은 것에 “전화위복”이라는 후문이 따랐다.

 

특히 구 교육감은 전형적인 교육관료 출신이었고 정치권의 민관식 문교부장관 재임시에는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다.<계속·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