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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5공 21세기 대비 개혁방향 남기고 떠나

5공 21세기 대비 개혁방향 남기고 떠나

- 교육부 48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268회) -

○… 본고는 오는 5월 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로 활동 48년 째가 될 본지 김병옥(www.edukim.com)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 ○

○… 기고해 실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일본에서 ‘한국고대문화전시회’ 개최 양국 우호 다져

전두환 대통령의 5공 초기인 1983년 8월 2일 일본에서 한국고대문화전시회를 열고 일본의 고대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게 했다. 이날 전시회 기념 리셉선에 많은 저명인사들이 참석해 양국의 친선 우호를 다짐했다.<사진 5공요록에서>

 

글로벌시대 경쟁력 외국어교육 강화

신군부 정권 마지막 문교장관 리드

교육자치 활성화 행재정 지원책 모색

- 교육개혁 해법 제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

28대 서명원 문교장관

<1987. 7. 14~ 88. 2. 24 재임>

 

김영식의 5공교육 최종 증언

 

(1)교수 국제교류 확대

<전호에서 계속>

선진국의 대학 및 과학연구소에 과학교육(수학·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분야 담당교수 11명을 파견하여 연수케 하였으며 86년도에는 미국 9명, 캐나다 2명, 일본 6명, 독일 1명 등 18명에 대해 연구비 및 체재비 등 일체를 지원하였다.

이는 과학담당교수의 자질향상 도모는 물론 교수의 해외연구기회 확대 및 사기진작에 크게 도움됐다.

 

(2)생활외국어 교육의 강화

외국어교육은 읽기·쓰기·듣기·말하기의 네 가지 영역을 균형있게 지도했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의 외국어교육은 독해와 문법 위주로 기울어져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룩해 가는 과정에서 폭넓은 국제적 접촉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러한 접촉과정에서 국민의 외국어 구사능력 신장이 당면한 중요교육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생활외국어에 대한 국가·사회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방안이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책에 반영되어, 문교부는 81년 외국어교육 강화방안을 수립 시행하게 되었다.

 

81년 12월 31일 문교부고시 제442호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외국어 교과서 개편의 기본방향을 ‘문법구조중심에서 생활외국어 활용중심’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82학년도에 개발에 착수하여 83학년도에 개발을 완료하고 84학년도부터 수업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듣기·말하기 중심의 교수·학습활동이 이루어졌으며 교실에서 교사는 외국어로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하도록 권장했다.

어학실습실·녹음기 등 시청각 기자재의 확보와 활용을 필수화 했다.

 

고등학교의 외국어 교과서 내용은 저자들로 하여금 외국인의 녹음테이프와 지도서를 교과서 발행과 함께 공급하도록 하였다.

 

83년도부터 매년 4회씩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라디오방송을 통한 듣기능력 평가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를 성적에 반영했다.

 

그 중에서 2회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하여 KBS-FM 라디오방송을 통하여 실시하고 나머지 2회는 각 시·도별로 지방방송망이나 녹음테이프를 사용해서 실시했다.

 

또한 고등학교 신입생 선발고사에서 83학년도에 전남에서, 84학년도에는 전남·전북·경남·경북·대구·인천의 6개 시·도에서, 85학년도에는 전국 13개 시·도에서 영어 듣기능력 평가를 실시했다.

 

외국어 교육방법을 개선하기 위하여 외국어교육 담당교사의 자질 향상이 필수였다. 문교부는 연차계획을 세워 외국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현직교사의 생활외국어 구사능력 신장을 위한 연수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편, 교사 상호간의 자체연수를 권장하기 위하여 시·도별, 지역별, 학교 급별로 외국어교육연구회를 조직토록 하고 그 활동을 지원하였다.

 

특별활동으로 실시하게 되는 초등학교 영어지도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외국어학습이 용이한 조기에 접하게 함으로써 중학교 영어교과학습의 과정에서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며, 흥미 위주로 아무런 부담을 주는 일 없이 접근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책방향에 따라 각급 학교의 생활외국어 교육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어 가깝게는 86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하였으며 각 분야에서 훌륭하게 외국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져 국가발전의지가 목표하는 방향으로 순항을 하고 있는 것에 자부했다.

 

제5공화국의 생활외국어교육 강화시책은 이런 점에서 국운의 융성을 겨냥한 시의적절한 방안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일이었으며 외국어고교 탄생의 효시였다.

 

9. 21세기의 교육방향 제시

 

교육발전이 국가발전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교육발전을 위한 교육개혁을 시도해 왔다.

 

미국은 ‘국가의 위기’ 보고서 발표 이후 각 주별로 다양한 교육개혁을 실천하고 일본도 ‘임시교육심의회’를 설치하여 21세기를 향한 국가교육의 미래상을 설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계속해서 교육혁신을 위한 다양한 개혁을 시도해왔고 특히 80년 7.30 교육개혁은 교육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5공 정부는 이와 같은 과거의 교육개혁조치를 발전적으로 계속 정책화해 나가며, 아울러 당면한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배가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교육개혁 추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진한국의 기치 아래 그 기초가 되는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교육개혁 작업은 절실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선진조국을 이끌어 갈 국민역량의 바탕이 되는 국가교육의 발전과 주체적 교육이념에 기초한 교육정책 및 교육제도의 종합적인 개혁안 수립 등에 관한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속기구로 85년 3월 ‘교육개혁심의회’를 설치하였다.

 

이 심의회는 87년 12월31일까지의 시한부 기구로서 한국교육을 전면 재검토해보고, 각종 교육개혁을 위한 국민적 요구를 수렴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심의하여 건의하는 기구였다.

 

교육개혁심의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한 것은 제5공화국 정부의 최고 통치권자인 전두환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가 매우 강한 것임을 상징했다.

 

전국민의 관심과 기대속에서 탄생된 ‘교육개혁심의회’는 교육개혁의 기본방향-한국교육의 이념, 초·중등교육의 개혁방안, 고등교육의 개혁방향 등을 설정하고 이를 지침으로 40여개의 개혁안을 개발·검토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 작업을 토대로 여러 교육과제에 대한 개선방안들이 신중하게 검토되어 교육자지체 운영방안, 고교평준화정책의 보완, 과학정책의 발전 방안 등이 심의되었으며, 청소년 육성방안, 대학입학제도의 개선, 대학교육시설기준안 등은 이미 문교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장기성을 요구하는 각종 정책방안들도 정부에서 신중히 검토했었다.

 

그 이후 ‘교육개혁심의회’는 87년 상반기까지 세부심의를 거친 후 하반기부터 한국교육개혁안의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하는 일정을 계획하고 이에 따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상과 같은 ‘교육개혁심의회’의 설치와 그 운영은 결과적으로 제5공화국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고 2000년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한국교육이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교육개혁심의회’회장 출신 서명원 문교장관은 5공의 마지막 장관으로 국민이 교육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필요가 무엇인가를 찾는 노력을 종합적으로 행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이고 국민이 원하는 교육개혁이 되도록 리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