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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토론장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③

[시사해설] 교육부 편수국 존폐사③

 

계엄하의 국보위 때 복원

김대중 정부 편찬 위탁 전환

문민에서 폐지 검정 완화

 

< 전호에서 계속> 1980년 2월27일 전두환 국보위위원장의 신군부 정권이 태동하면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승계했을 때 문교부 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9788호)하고 편수국을 복원했다.

 

당시 장관은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출신이었고 그해 5월21일 대학가의 시위를 막는데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계엄사의 눈밖에 나면서 경질되어 떠났다.

 

후임 이규호 장관은 1981년 11월2일 문교부 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10535호)하여 편수국을 장학실에 흡수해서 폐지하고 실장 밑에 편수총괄관·교육과정담당관·인문·사회·자연과학편수관을 두었다.

 

이때 ‘장학·편수실’ 명칭을 당시 정태수 차관은 ‘편수·장학실’로 하자고 진언 했으나 계엄사 쪽에서 “대학 시위만 갖고 모자라 고교생까지 장학부진으로 요인을 만들 작정이냐”고 거부해 ‘장학·편수실’이 되었던 일화가 전해진다.

 

그 만큼 고교생 시위가 걱정된 것을 드러낸 셈이다.

 

이처럼 교육부 편수국 폐지는 5공 전두환 대통령과 6공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 이르러 김숙희 장관에 의해 1994년 5월16일 교육부 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14264호)하고 장학편수실에서 편수를 분리해 국으로 복원해서 국장 밑에 편수관리·교육과정 담당관을 두고 이에 인문·사회·자연과학 편수관을 배치했다.

우연이지만 역대 교육장관 중 이대출신 김옥길·김숙희 두 여성장관은 폐지된 편수국을 되살려 교과서 편찬기능과 편수의 본령을 부활시킨 것이 공통점이다.

 

그로부터 2년 2개월 21일이 지난 1996년 7월5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는 교육에서 앞장서고 교과서부터 국정체제를 벗고 검·인정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편수의 목적이 검정 강화일 수 없다”는 취지에서 교육부직제를 개정(대통령령 제15113호)하고 편수국을 폐지했다.

 

이때 편수국 업무를 장학실에 이관하고 교육과정심의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에 교육과정·교육평가·편수관리 담당관을 두어 관장하게 했다. 당시 안병영 장관 이었다.

 

그 이후 편수국은 부활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다.

 

국민의 정부를 이끈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8월11일 이해찬 장관으로 하여금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5864호)’을 제정케 하고 교육부장관 소관 교과용도서의 검·인정 업무와 제외국민용 교과용 도서를 포함한 교과서 편찬·발행·제작·공급 등을 교육과정평가원장에게 위탁했다.<다음 호에 계속·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