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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대입시 개선 대통령 속내 알 수 없어 애타

대입시 개선 대통령 속내 알 수 없어 애타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83회) -

혁신위 안부터 들은 다음 토론회 주재

교육부 직원들 속도 모르고 승리 자축

반대한 장관의 주장에 무게감 아리송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견해 작용-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특별 전재한다. 또한 생존한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청와대 조율 혁신위안 후퇴

 

<전호에서 계속>

이와 같이 2004년 3월30일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혁신위(위원장 전성은) 산하에 두게된 ‘대입제도 특위’는 명지대 이인호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출범하여 그해 7월23일 교육혁신위 제9차 회의에서 안병영 장관과 혁신위 주도세력의 불꽃튀는 격돌이 있었고 6일 후인 7월29일 청와대 사회문화수석비서관실에서 이원덕 수석의 주재로 대입제도개혁특위에 참여한 혁신위 관계자들과 교육부 관계자 및 일반참여자 가운데 선정된 일부가 모여 청와대 국정과제회의에 내놓을 개선안에 대한 의견조율에 착수했다.

 

이 자리에서도 쌍방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조정은 쉽지않았고 논란 끝에 교육부안에 비중을 두어 방향을 정하되 특위에서 다시 논의해서 최종안을 도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날(2004. 7. 29) 청와대 조정회의 이후 2004년 8월12일 대입제도개혁특위는 마지막 회의를 열고 ‘2008대입제도’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교육이력철과 새로운 학력고사안 및 경로별 선발안에 대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격론이 다시 벌어지고 수능등급(수)과 교사별 교과별 평가, 이력철 명칭 등에 관해서는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청와대의 국정과제 토론으로 넘기자고 유보했다.

 

이 때 대입제도개혁특위 전체회의 흐름과 분위기는 교육혁신위의 당초 개혁안이 크게 후퇴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고 2004년 8월18일 청와대 국정과제 토론회의 바로 전날 교육혁신위 본회의가 열려 교육부가 마련한 보고서 원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를 두고 후일 안병영 전 장관은 2004년 7월에서 8월 중순까지 교육혁신위와 교육부의 치열한 기선잡기 싸움에서 우군 확보에 정성을 들인 비화를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이때 당시 청와대의 이원덕 교문수석비서관과 “잦은 의사소통을 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함께 전략을 논의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2004년 7월29일 청와대 조정회의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중 김병준(후에 제49대 교육부장관) 정책실장에게 “만약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이 혁신위 안으로 굳혀지는 경우, 나는 사표(장관직)를 낼 수밖에 없다”고 간청하면서 협조를 구했고 이에 김 정책실장도 “돕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지근 거리에 있는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김병준 정책실장의 길이 갈라진 셈이었고 이정우 위원장은 이미 혁신위의 수뇌인 전성은 위원장 등을 강력하게 지원한 것에 반해 김병준 실장은 안병영 교육부장관과 보다 내밀적으로 공감하면서 측면지원에 나선 것이 두드러지게 달랐다.

 

특히 안 장간은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안’ 마련에서 산파역을 맡아 주도했었고 장관직에 올라 역임한 전력에 힘입어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접근한 것도 수월했다.

 

이에 이해찬 총리도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장관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안병영 장관이 주장한 교육부의 ‘2008대입개선안’방향에 공감하면서 후임 장관(안병영)이 고심하고 있는 부분을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청와대 국정과제회의 비화

 

2004년 8월19일 교육혁신위 주관으로 개최된 제53회 청와대 국정과제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담당비서관 등 정부와 대학관계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대통령의 방향 정리가 예정되었던 것으로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통치권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 등 대입제도가 갖는 비중과 중요성이 시사된 것에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와 같이 중요한 회의에 그동안 혁신위의 개혁방안을 주도해온 김민남 선임 위원이 불참한 것에서 안병영 장관은 대통령이 교육부의 방안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을 미리 예감했기에 비켜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회의는 극도의 긴장속에 진행되었고 혁신위의 개혁안을 보고 받은 다음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의 주된 내용은 수능등급화, 교육이력철 도입, 교사별 혹은 학교단위별 교과평가, 수능과 학생부 교과성적의 변별력, 학생부에 대한 쟁점을 망라했다.

 

이 자리에서 안병영 장관은 수능시험 9등급과 1등급 4%를 강력 변호하고 아울러 교사평가는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학생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교과평가가 합당하며, 교육이력철 및 경로별 입학의 개념도입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등급화의 경우, 수능과 내신 모두 9등급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천지개벽”이라며 9등급을 받아 들일 뜻을 비쳤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등급을 나누는 방법은 추후 논의과제로 남겼다.

 

교과평가의 주체에 관해서는 “교사평가가 옳다고 생각하나 교육부가 난색을 표하니 이것도 추후 재론하자”고 유보했다.

 

특히 교육이력철은 “개념 자체가 생소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이름보다는 제도의 내용만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는 교육부안에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었고 “교육부는 오늘(2004.8.19)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대입제도 개선안을 마무리해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008대입개선’은 혁신위와 교육부가 갈등을 빚으면서 치열하게 논의했던 것에서 주도권이 교육부로 넘어온 듯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방향조정이 주효한 것으로 혁신위의 급진적 개혁안과 핵심 개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아직도 실제로 1등급을 몇 %로 할 것인지? 핵심적 쟁졈은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어 “후폭풍을 몰고온 셈”이라고 안병영 장관은 회고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그날(2004.8.19)논의과정에서 “9등급 균등 배분이 어떨지…”라고 여운을 남기는 등 1등급의 %를 가능한 크게 늘리고 싶어하는 내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을 보게된 안병영 장관은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는 7등급 정도였고 9등급제를 도입할 경우에도 그 중 1등급 비율을 스테나인식의 4%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에 의한 7%였으면 하는 것이었다”면서 “이는 당시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문재인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혁신위의 박도순 선임위원의 견해인 것 같아 교육부장관으로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안병영 장관은 또 대입시제도의 개선안을 둘러싼 갈등의 축이 혁신위와 교육부에서 청와대와 교육부로 바뀐 것에 불과한 것을 직감하게 되었고 그날 청와대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 극도의 긴장 때문에 입안에 침이 완전히 말라 있었고 몸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빠져있었다.

 

그런데도 교육부 직원들은 속도 모르고 “장관님 드디어 이겼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고 핵심 중 핵심 쟁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를 알 수 없이 애타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