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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정부 발표 ‘교육개혁안 수정 요구’에 곤혹

정부 발표 ‘교육개혁안 수정 요구’에 곤혹

- 교육부 49년 출입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35회) -

○… 본고는 지난 5월16일로 교육부 출입기자 49년 째가 된 본지 김병옥(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단독 연재한다 〈편집자〉 … ○

 

학교자치 핵심 학운위에 의결권 없고

간선 초기 시·도교육위원 전교조 진출

대통령이 강조한 담대한 개혁서 후퇴

-기초단위 시·군·구의회 추천 첫 시·도교육위원 간선-

김영삼 정부 세번째 임명

35대 박영식 교육부장관

<1995. 5. 16~ 95. 12. 20 재임>

5·31교육개혁안 후유증

<전호에서 계속>

 

전임 김숙희 장관이 떠나고 이틀 동안 후임 장관 물망에 오른 사람은 박영식 장관을 비롯해 3~4명이었다.

특히 한국교총은 당시 윤형원 충남대 교수가 회장으로 재임한 때였고 김영삼 대통령과 동향인 거제도 출신이어서 영순위처럼 점쳐졌다.

 

또 청와대 박관용 비서실장의 비선라인에서 거명된 후보군도 적잖은 터라 학계에서 기용이 어려우면 김정남 교육수석비서관의 낙하산 가능성도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임 김숙희 장관이 이화여대 교수인 것에 비추어 가까운 연세대학교에서 발탁될 가능성으로 박영식 전 총장의 등용에 무게를 두는 추측이 무르익었다.

 

이는 교육부장관의 공석이 이틀 만에 마무리될 가망으로 적중력을 키웠고 대항마가 없다는 것으로 낙점되어 임명되면서 제35대 교육부장관 자리가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취임식장은 연대출신 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붐비고 축하 화분이 수십 개 들어온 장관실은 복도까지 화환이 줄을 서고 화원을 방불케 하면서 꽃향기가 넘쳤다.

 

이날 취임식을 지켜본 출입기자들은 취임사 첫 마디가 궁금했고 귀를 모았으나 예상했던 대로 “열심히 잘 해보자”는 당부 이상 강조된 것이 없었다.

 

전임자(김숙희 장관)의 경질이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빚어진 구설을 익히 알고 있던 때라 후임인 박영식 장관의 취임사는 짧고 간결할수록 알맞고 무난할 만큼 세상인심까지 장단을 맞춘 셈이었다.

 

이처럼 박영식 장관의 입각은 전임자가 잘 되어서 나간 자리가 아니었고 벌려놓은 일들이 진행 상황으로 자칫 풀리기 어렵거나 매듭이 쉽지 않은 현안이 대부분이어서 재임기간 7개월 4일은 순탄하지 못했다.

 

특히 취임하고 2주일 만에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하게 되었고 전임자가 거의 완성한 것에 장관 이름만 바꾼 발표인 셈이어서 후속 처리가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더 어려운 것은 ‘5·31교육개혁안’에 대한 반응과 평이 전문가 집단이나 교원단체에서 예상외로 비판적이고 혹평한 것에 대응하기 힘들었다.

 

또 그해(95년) 교육개혁안은 정부에서만 발표한 것이 아니고 민간인 차원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까지 얽히고 설켰다.

 

특히 교사단체인 전교조는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수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간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행복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서 교육부가 발표한 개혁안의 수정을 요구했다.

 

전교조는 또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이른바 ‘5·31교육개혁대안’을 발표하면서 연초 대통령이 강조한 ‘담대한 개혁’에서 크게 후퇴했다”고 수정을 요구한 이유의 핵심사항으로 내세웠다.

 

당시 박영식 장관이 발표한 ‘5·31교육개혁안’에 담은 방향은 크게 나누어 다섯 갈래였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린 교육사회, 평생학습사회 건설을 교육개혁의 비젼으로 제시하고 질 높은 교육실현과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추구하면서 교육 다원성 신장, 교육운영의 자율성 및 책무성 제고, 교육발전을 위한 지원 체제 구축 등 다섯 가지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같이 교육개혁의 주체가 될 교사단체에서 “담대한 개혁이 아닌, 후퇴”라면서 “교육소비자론을 바탕으로 도입한 소비자 선택권 부여와 학교 운영의 자율과 경쟁체제는 오히려 입시 경쟁 교육을 심화시켜 공교육을 황폐화시킨 채 학교장의 권한만 강화해서 교육주체(교사)의 자율재량을 억압할 역작용이 우려된다”고 거부했다.

 

이 밖에도 박영식 장관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교육을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해 서비스 상품화하는 교육철학과 교사·학생간의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관계로만 바라보는 인식 및 정책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수정을 요구한다”고 맞선 것이다.

 

교육시민단체에서 요구했던 학교자치의 핵심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를 의결기구화 하도록 바란 것도 교장단과 사학재단, 교육관료들의 반발로 자문기구가 되었고 1995년 2학기(9월)부터 시범운영했다.

 

박영식 장관이 취임하고 3개월이 지난 8월21~23일까지 시·도교육위원회 위원의 간선(間選)제 선거를 실시했다.

그 이전까지는 시·도지사의 추천으로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청, 무보수 명예직(회의 참석 때 왕복여비 실비 지급)으로 임명했던 것과 달리 각 시·군·구 기초단위 의회에서 두 명씩 추천받아 광역시·도의회에서 한 명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때 전교조 해직교사 중 상당수가 시·도교육위원으로 진출, 위원장 등 요직을 차지했다.

서울에서는 이수호·고승중 두 전교조 해직교사가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이 컸다.

이에 야당인 민주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새정치국민회의’ 지원과 성원이 컸다.

 

당시 국회에서도 지역구 출신 야당 의원인 조순형 국회문공위원장과 후에 국회의장이 되었던 임채정 의원의 성원에 힘입어 교총 출신 교육위원과 쌍벽을 이룬 것으로 지방교육자치를 교육감 교육의원 직선제로 바꾸는데 단초가 되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