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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직을 걸고 長官의 所信과 信念지켜 관철

직을 걸고 長官의 所信과 信念지켜 관철

- 교육언론 반세기 현역 백발기자의 역대 교육장관 발자취 추적(제386회) -

○… 본고는 50년 동안 교육정책 산실(교육부 출입)을 지켜본 본지 김병옥(edukim.com·010-5509-6320) 편집국장이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신동아’ 2006년 6월호 특집에 기고했던 것으로 당시 ‘교육부 40년 출입 老기자의 대한민국 교육장관 48인론(20페이지 수록)’을 독자여러분의 요청에 의해 보완, 전재한다. 이는 전임 장관들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내일을 위한 거울이 되고 있다.〈편집자〉…○

 

총리공관회의 때 고성오간 끝에 퇴장

노무현 대통령 ‘교육부안 확정’ 사태수습

청와대 수석 불러내 사직원 제출 결단

-개선안 발표 2개월 후 개각에서 경질 예감 적중-

노무현 참여정부 두번째

46대 안병영 교육부장관

<2003. 12. 24~ 2005. 1. 4 재임>

수능 1등급 4% 안에 곡절

 

<전호에서 계속>

…그래서 안병영 장관은 청와대와당에 그러한 정황을 누누이 설명하고 ‘청와대-대통령’의 수능 1등급 7% 안에 대해 분명한 거부 의지를 천명했으나 그들의 공세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안 장관은 교육부 실국장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수능 1등급의 4%선을 고수하겠다”는 결의를 수차례 천명했다.

 

이와 같이 수능 1등급을 몇 %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청와대 및 당과 교육인적자원부 간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첨예화 되었다.

 

특히 청와대의 압력은 그 만큼 가열차고 조직적이었다.

 

한 예를 들어보면 2004년 10월 24일 지방의 큰 국립대학교 총장 한 사람이 안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모 수석이 몇 몇 국립대 총장들에게 수능 1등급 7%가 되면 유수한 지방 국립대들은 1등급 우수학생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니 협력해 달라”며 “교육부의 4%안을 연대해서 반대해 줄 것을 강력하게 종용하고 있다”고 알려 왔다.

 

그에 따르면 “총장 몇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안 장관은 급히 이들 총장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실제로 7%가 되는 경우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하고, 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한다.

 

이 때 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하여 교육부에 압력을 구사했으며 교육부 내에서 폭발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한 긴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교착상태에 빠져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04년 10월 25일 총리공관에서 청와대, 당, 교육부 간의 마지막 절충을 해 보기로 합의했다.

 

그날 안 장관은 교육부에 출근하자 마자 사직원을 준비했다.

1등급 4%가 성사가 안 될 경우, 사표를 제출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제자이자 연세대 동료 교수출신 하연섭 정책보좌관에게만 알렸다.

 

안 장관이 “자네 정말 오늘 내가 하는 이야기는 자네만 알고 있어야 돼”하면서 “오늘 여차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이 때 하 보좌관은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목이 매고 눈이 매워져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있다가 “선생님, 오늘 사표를 내십시오. 더 이상 이런 사람들하고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안 장관은 “정부가 이렇게 어려운데 나만 살자고 나가는 것 같아, 미안해서…”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하 보좌관은 “어떤 제도이건 완벽한 것은 없고 ‘2008 대입안도’ 마찬가지인데, 모든 문제를 선생님한테 뒤집어씌우고 계속 브레이크를 걸고 하다가, 연말 전후의 개각 때는 자를(경질)겁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예감은 ‘2008 대입개선안’발표 2개월 후(2005.1.4) 개각에서 적중되었다.

 

총리 자리 뜬 후 쌍방의 격돌

 

2014년 10월25일 총리공관에서 오후 5시 10분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마지막 결판장이었다.

 

이해찬 총리가 회의를 주재하고, 청와대 이정우 위원장, 문재인 수석, 이원덕 수석, 정봉주 의원(당), 전성은 교개혁위원장, 박도순 고대교수(혁신위 상임위원) 그리고 교육부장, 차관(김영식)과 인적자원총괄국장(정봉근)이 참석했다.

회의는 시작되기 무섭게 격론이 벌어졌다.

 

작심한 듯 이정우, 문재인, 정봉주, 전성은, 박도순 다섯 사람은 대단히 공세적으로 나왔다.

안 장관도 언성을 꽤나 높였다.

 

이해찬 총리가 청와대 회의 때문에 중간에 자리를 뜬 이후, 쌍방간의 공박은 격렬해졌고, 분위기는 더욱 가열되었다.

회의 시작 2시간이 지난 7시 20분경, 안병영 장관은 “이제 내 체력도, 이성도, 인내도 한계에 왔다”고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회의는 그대로 중단되었다.

 

안 장관은 일어서 나간 즉시 이원덕 청와대 총무수석을 회의실 뒤편으로 불러 대통령께 드릴 사직원을 건넸다.

이 수석은 “절더러 이걸 받아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면서 한사코 받지 않았으나, 억지로 이 수석의 윗저고리 주머니에 꾸겨 넣고 도망치듯 총리공관에서 뛰쳐 나왔다.

 

그 순간 안 장관은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일이 거기서 끝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간까지 이해찬 총리 및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과 전화가 오갔고 사직원 철회를 종용하는 그들의 간청과 “이제 어떤 경우에도 돌이킬 수 없다”는 안 장관의 흥분된 응답이 끝없이 어어졌다.

 

4% 주장 재가 사표도 반려

 

다음날(2004.10.26) 이른 아침 이해찬 총리가 안 장관을 불러 만났다.

총리는 “대통령이 수능 1등급 4%를 받아 들여 재가했다”고 전하며, 사직원을 다시 돌려주었다.

아마도 밤새 이해찬 총리와 김병준 실장이 거중 조정을 해서 그렇게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사실 그날 ‘2004년10월25일’ 총리공관회의는 비공식 회의였다.

 

따라서 역사적인 공식 문서에는 이 모임이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나, 별도의 다른 기록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회의는 ‘2008 대입’과 연관된 최대의 쟁점인 수능 1등급 %를 결정하는 회의였고, 양측이 모든 것을 걸고 격돌했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이는 장관이 직을 걸고 소신과 신념을 지켜 관철시킨 희귀 사례였으며 건국이래 지금까지 역대 교육장관 56명 가운데 처음이었다.

 

안 장관의 비화는 계속 되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