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 김 시 습
온종일 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갔더니
산 하나 넘고 나면 또 산 하나 푸르네
마음에 집착 없거늘 어찌 몸의 종이 되며
도는 본래 이름이 없거늘 어찌 이름을 붙이리
간 밤 안개 촉촉한데 산새는 지저귀고
봄바람 살랑이니 들꽃이 환하네
지팡이 짚고 돌아가는 길 일천 봉우리 고요하고
이끼 낀 벼랑에 어지러운 안개 느지막이 개이네
※김시습은 수양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빼앗아 오르자 사흘을 통곡한 뒤 산천을 떠돌며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시대와 불화했던 것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한양에서 가까운 수락산에 들어가 10여 년을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