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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옥컬럼

[사설] 정의는 가르치기 쉽다.

[사설] 정의는 가르치기 쉽다.

불합리에 언행일치 맞서라

 

9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중·고등학교에서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교사들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정답을 일러주기 어렵고 거듭될 질문이 난제인 것도 고충이라고 하소연이다.

 

교육현장은 벌써 그 동안 가르친 교육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으며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닌, 지적성장에 흐뭇하다.

이로 미루어 교육현장은 정의를 가르치기 쉽고 언행이 일치하도록 불합리에 맞서는 것을 수범하면 가능하다.

 

때문에 현장교육의 진수는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장전으로 삼게 된다.

 

지난 시절의 우리 교육은 광복이후 지켜온 정의감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퇴색하고 진작하기 어려워져 개인주의 팽창에 매몰된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교육은 학력관이 오도되고 가치관의 왜곡으로 영향받은 해악에서 신음하게 된 것이다.

진로지도에서 대학이 종국학교로 고3교실은 교과서를 팽개친 채 수능과 대학의 수시 입학 등 전형방법을 쫓아 기출문제 해답에 매달리거나 과외와 기숙학원으로 줄달음치는 사태를 빚고 있다.

 

단위학교의 교실과 운동장은 지역사회의 축소판인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시국이 교실밖의 세상사로 비쳐질 만큼 학생들의 관심과 멀다고 보는 것도 착각이다.

지난 날의 4·19세대가 이미 노령이고 6·3사태를 치른 세대까지 노인정의 극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에 의해 쟁취된 민주화가 고전처럼 벽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이 이에 접목되는 작업은 현직 교원의 몫이며 그 앞자리에 교사가 서 있다.

동시에 교사에게 쏟아진 중·고생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서 당당해지기 위한 노력이 곧 스승된 도리이며 사도를 진작할 첩경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대로 밑줄쳐서 가르치는 교사보다 교과서처럼 행동으로 보여줄 교사와 만나고 싶다.

이것은 80년대의 교사운동에서 전교조의 초심이 거울이었고 지금은 그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갈망한 것이야말로 교과서적이다.

 

이에 우리는 학생을 과외나 학원에 맡기는 교사와 학교를 바라지 않으면서 왜 정의를 묻는지 자성하고 언행을 일치해서 불합리의 퇴치에 앞장서도록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