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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글

우수절의 시조 - 박 재 두 우수절의 시조 - 박 재 두 한 장 창호지 밖에 나직이 듣는 음성 어린 날 그 언덕에 흘리고 온 꿈의 씨앗 향 맑은 귀가 열리어 이젠 움이 돋는가. 돌아온 산모롱이 구비 구비 짓다 둔 인연 원수도 손끝이 저려 맺힌 허물 고를 풀고 한 떨기 민들레처럼 떨고 일어나는가. 죄 없이도 가슴 닳던 그리움도 벗어두고 묵밭된 마음의 이랑 새로 닦은 보습을 대어 묵혔던 길이 열리어 기적처럼 오실 손님. 비 그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이 밤 옥색 치맛자락을 끄는 꿈길도 결이 맑고 청매화, 새 피가 돌아 숨소리도 고르겠다. 더보기
나이가 몇 살? 나이가 몇 살? - 오 세 영 나이 일흔은 귀신도 눈에 보이는 나이라는데 실은 70년 산 것이 아니라 70년 죽어온 것. 그러므로 생은 죽음의 이면일지니 가쁜 일 있다 해서 너무 기뻐하지 마라. 기쁨 끝엔 항상 슬픔 있나니 슬픈 일이 있다 해서 너무 슬퍼하지도 마라. 슬픔 끝에 항상 기쁨 있나니. 더보기
산 그림자 - 이 순 희 산 그림자 - 이 순 희 그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다 자신의 비밀과 허물을 뱀처럼 벗어 놓고서 다행히 그에겐 모든 걸 숨겨 줄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런 그가 깊고 조용한 그녀를 보는 순간 그동안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다 풀어놓고 싶어졌다 어머니의 고요한 품을 더듬어 찾듯이 그 응달에 다 풀어내고 싶어졌다 더보기
국수가 먹고 싶다 - 이 상 국 국수가 먹고 싶다 - 이 상 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 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치고 어둠이 허기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더보기
시간은 가끔 내릴 역을 지나쳤다 - 이 민 아 시간은 가끔 내릴 역을 지나쳤다 - 이 민 아 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소실된 변명을 삼킨 미로 같은 터널 너머 우리는 때로 무수히 내릴 역을 지나쳤다 폐선이 되었다는 영동선 미로(未老)역에선 홀로움을 견뎌오던 침목의 침묵이 더러는 다음 생 지평(砥平)역에 당도할 화석 같은 사연이 되듯 산다는 건 지난 생에 폐역 하나 남기는 일 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불현듯, 생의 변곡점 돌아 그대라는 역에 닿는 일 더보기
수선화에게 - 정 호 승 수선화에게 - 정 호 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은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더보기
풀 꽃 - 나 태 주 풀 꽃 - 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더보기
하 루 - 박 주 택 하 루 - 박 주 택 옷아, 너도 힘드니까 쉬어라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날 구두야, 너도 애썼다 네가 찍은 무수한 발자국으로 오늘을 이루었다 별이 꽃으로 돋는 밤 거친 파도를 헤치며 먼 곳으로 가는 배를 떠올린다 아침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리라 더보기
바다가 보이는 교실 - 정 일 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 - 정 일 근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너머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수평선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더보기
서 편 제 - 김 영 윤 서 편 제 - 김 영 윤 (서울강동송파교육장 전 교육부 학교정책관 ) ‘극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고향집 뒷마당 같은 분위기가/허세(虛勢)로 가린/내알몸을 휘감더니만/솔바람에 실려 나오는/곰삭여진 한(恨) 가락은 / 나로 하여금/유년의 기억 속을 헤매게 했다. 뜨내기 사랑은 비운의 씨알을 잉태하고 그 인연 구천을 돌아 오누이로 태어나다. 일생을 소리 가락에 삭여 이고 황토 먼지 옷자락 삼아 떠도는 소리꾼 아비는 창(唱)을 뽑고 꽃다운 딸 춤을 덩실 모처럼 흥이 오른 아들놈은 장단치고 어화 어화 어화 어화 어화 둥둥 내 사랑 허허벌판에 신명나는 사랑가여! 어미 잃고 멍든 가슴 오라비도 떠나 가고 열여섯 물기 오른 순정 이만 한(恨)도 부족하랴. 눈 뜨고 못 뵈올 임 차라리 감을 수밖에 아비가 선창하면 눈먼 .. 더보기